군대에 가 초코파이를 먹으러 종교행사에 간 군인처럼 타국생활을 하다 보면 고향사람과 음식이 그리워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영국에 온 지 두 달 여가 지났을 시점 한국말이 갑자기 너무 하고 싶어 병이라도 날 것 같았다. 평소 무심하게 지나치던 교내 게시판 앞에 서서 바쁘게 눈을 움직이다가 한글로 써진 한인학생모임 전단을 찾았다. 모임장소와 시간을 수첩에 받아 적는데 설렘과 조심스러움이 한데 엉켜 손끝이 살짝 떨렸다.
친구의 모임을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서 가는 것도 아니어서 모임의 분위기도 구성원도 몰라 갈까 말까 망설였다... 가 아니라 나는 이미 팬트리에 얹혀살고 있는 몇 벌 안 되는 옷 중에 제일 화사하다고 생각되는 핑크와 보라색 프린팅이 들어간 하얀색 후드티를 찾아 입고 모임방에 들어섰다.
도착한 그 자리엔 나를 포함한 세 명의 대학생을 제외하고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나이차가 불편하진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나이차가 그렇게 많이 나는 것도 아니었지만). 오히려 연륜에서 나오는 성숙한 배려와 지혜로 멋모르는 우리들을 품어주고 아낌없이 사랑해 주었다. 모임멤버들을 통해서 런던에 있는 한인교회에도 다니게 되었는데 신앙이라는 공통분모 덕분에 날개를 달고 내 세상인 듯 행복에 젖어 지내는 하루하루였다.
활달함을 담당하는 H 오빠는 나와 마주칠 때마다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하고 또 말해줬다.
"타샤야 너는 정말 최고야."
방송실 Y오빠는 내가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려줬다.
"교회에 네 팬클럽 있다~"
애교쟁이 막내 S동생은
"언니는 제 삶에 하늘이 보내주신 천사 같아요."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편지를 전해주었다.
기숙사촌에서 가까워진 사람들에게도 나는 another asian(또 한 명의 아시아인)으로 잊히는 일은 없었다. 헤이즐팜 천사, 모닝파워워킹걸 등 새로운 별명으로 불리며 따뜻한 관심을 받았다.
처음에는 나를 향한 관심과 사랑이 의심스러웠고 겉치레일 거라 여기며 의미를 축소시키기 바빴다.
'왜? 무엇 때문에 날 이렇게 예뻐하지?
먼 미국에서 영국을 선택해 떠나온 용기에 대한 환영과 격려일 거야. 초기에 반짝하는 환대이니 붕 뜨지 말자'며 나 자신을 단속했다. 하지만 쏟아지는 사랑 세례는 1년 내내 계속되며 그 일관성을 증명해 냈다.
미국에서 오랜 기간 동안 소리도 없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던 자기 의심이 계속되는 사랑 앞에서 곧 빠질 이처럼 마구마구 흔들렸다. 힘든 환경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내느라 생략되었던 사랑의 표현들을 다 몰아서 받고 있었다. 특별히 다른 노력을 한 것도 아니고 나는 그저 나로 살아갔을 뿐인데 주위에서 자꾸만 예쁘다 예쁘다 해주니 버릇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내 안에 드리웠던 어두운 그늘이 한 걸음씩 물러나고 있었다.
영국생활 중간중간 미국에서 날아든 이메일에는 가족들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해주던 셋째 딸에 빈자리를 느끼는 그리움이 묻어있었고 미국으로 돌아갈 날도 빠르게 다가왔다. 영국에서 만난 친구들은 나를 환영해 주었던 따뜻함에 정과 아쉬움을 듬뿍 추가해 나를 환송해 주었다. 가슴속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이 정도의 온도라면 싸늘해진 온실도 뜨겁게 감싸 안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지구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