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 방 비밀의 문

by 샤인젠틀리

영국에서 1년 동안 머물게 된 기숙사는 태어나서 처음 가져보는 오로지 나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다인실 도미토리 숙소를 전전하다 가성비 있는 1인실 호텔로 진출한 여행가처럼 기숙사 6번 방문 앞에 서있는 나는 감개무량했다. 지금까지는 24시간 복작이는 삶이 거스를 수 없는 인생의 기본값이었다면 오롯이 혼자가 되어보는 이 어색함은 기분 좋은 낯설음이었다. 구석구석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낡은 기숙사가 오성급호텔로 보이는 마법을 부린 건 아이러니하게도 아픈 과거의 기억이었다. 6번 방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마음속에 굳게 잠겨있던 기억의 문이 열렸다.




섬세한 감수성을 타고나 다양한 감정이 거칠고 깊게 와닿던 십 대 소녀였을 때, 혼자 있고 싶은 그런 날엔 타인의 시선을 피해 잠시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처럼 집 밖을 나서 하염없이 걸을 수 만 있더라도 좀 나았을까.. 대도시가 아닌 보통의 미국엔 어린 내가 차 없이 안전하게 배회할만한 곳은 없었다. 독립된 개인의 공간에 대한 절실함은 나만의 것이 아닌 차마 꺼내놓지 못한 가족 모두의 오랜 염원이었으리라.


몇 해가 지나고 아빠는 빅뉴스를 가지고 귀가했다. 우리 가족의 사정을 아는 지인이 거의 거저 주는 조건으로 집을 임대할 수 있게 해 준단 소식이었다. 각방도 가질 수 있고 넓고 프라이빗한 마당도 딸려있는 곳이라 했다. 오래된 집이라 손을 좀 봐야겠지만 미국에선 다들 수리해 가며 살지 않냐며 딱 우리 같은 대가족을 위한 집이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여기저기서 얻어와 소재도 스타일도 가지각색인 집기들을 차에 가득 싣고 이제 몇 번째인지 굳이 세지 않는 n번째 이사를 했다.


덜컹대며 도로를 달려 도착한 집은 듣던 대로 주변에 이웃집 하나 없이 잡초가 무성한 빈 땅에 홀로 우뚝 서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눈에 띄게 휘어져 있는 거실바닥이 보였고 아지트가 들통난 들쥐들은 거실을 가로질러 후다닥 달아났다. 한참 방치되어 당장 사람이 입주할 수 있는 곳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짐을 풀었다.


에어컨 없는 오래된 건물에서 나는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지만 곧 선선한 가을이 올 테고 이 집도 점점 사람살기 적합한 모습으로 탈바꿈할 거라는 긍정회로는 우리의 옷가지와 침대커버에서 들쥐똥을 발견할 때마다 차단되었다. 적극적인 수리를 가능케 할 경제력도 기술력도 가지지 못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집이 아니었다.


고생 끝에 낙이라 믿었던 선택이 가족 모두를 더 큰 고생길로 인도했단 현실을 마주하는 고통을 견딜 수 없던 걸까 아빠의 낯빛은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밤길처럼 점점 더 어둡고 위태로워졌다. 이 집에서의 거주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모님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일이 잦아졌다.


평행선을 달리는 말다툼은 아빠의 폭력으로 강제종료되었고 그때마다 들려오는 엄마의 비명소리에 나는 죽음 같은 공포를 느꼈다. 더욱이 소리를 듣고 달려와줄 이웃도 없었다.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있는 엄마를 방치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나 자신을 보는 비참함과 짐승 같은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이 내 친부라는 수치스러운 분노에 온몸이 떨렸다.

경찰에 전화해야 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도 경찰에 신고하는 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두려움에 압도당해 아무것도 못하는 나 자신을 혐오했다.


지옥의 시간이 지나면 다음 재앙이 덮쳐오기 전까지 폭력 피해자와 피의자는 다시 한 공간에서 서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얼굴을 마주 보며 살아갔다. 우리가 다 같이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 같았다. 미친 상황 같았다.


어린이었을 때 나는 장마철 뉴스에 상습 침수지역인 줄 알면서도 이사 가지 않아 매년 피해를 입는 사람들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사 가지 '않은'게 아니라 '못한'거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에 도달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폭력에 갇혀버린 우리 가족의 모습은 빗물이 허리까지 범람한 반지하에서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비를 퍼내는 사람들의 모습과 묘하게 닮아있었다. 그들도 타인은 감히 다 헤아릴 수 없는 사연에 꽁꽁 묶여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내 뱃속에서 삶에 대한 뜨거운 의지가 올라오고 있었다.


삶을 삼켜버릴 듯한 고통에 잠겨있는 사람들 곁으로 첨벙첨벙 걸어내려 가 그들이 물을 퍼내고자 한다면 함께 퍼내주고 손을 잡아 끌어내주길 바란다면 손을 내밀어주는 누군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피어났다. 물을 퍼내지도 밖으로 나올 수도 없게 굳어버렸다면 그 얼굴을 쓰다듬어주고 끌어 안아 온기를 전해주는 삶을 살고 싶다 다짐하게 해 준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과거의 트라우마였다.




6번 방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으로 잔디뷰 창문을 두고 오른편에 협탁과 침대, 왼쪽으론 날씬한 옷장과 책상이 놓여있었다. 옷은 몇 벌 챙겨 오지 않아 작은 옷장 안은 집에서 챙겨 온 참치캔들과 칼국수사발면 가득차 팬트리로 둔갑했다. 오른쪽 벽 오픈형 상부장엔 빈 생수병을 반으로 잘라 스틱 코코아, 티백, 초콜릿 등을 담아 미니 간식바를 만들었다.


평소에 책을 읽다 발견한 긍정적이고 삶에 지표가 되는 문구들을 필사해 놓은 노트를 펼쳐 가장 많은 별표와 밑줄이 그어진 문장들을 선정해 메모지에 옮겨 적었다. 거울 아래, 침대 머리맡, 불 스위치 위에 문장들을 단단히 붙여 두고 주문처럼 되뇌었다.


6번 방 문 뒤쪽은 형광색 포스트잇으로 채워져 갔는데 종이마다 영국에서 새롭게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이름을 적었다. 나는 기숙사를 나서기 전 그리고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서 문을 바라보며 그들의 안녕과 축복을 비는 기도를 올렸다. 고등학생 때 인상 깊게 읽은 "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에서 소개되어 내 삶에 적용해 본 부분이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평범한 나로서도, 멍들고 상처입은 나로서도 누군가를 아무런 대가 없이 축복하고 사랑하는 고귀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가르침을 실천해 보려는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아픔의 과거를 지나 서있는 자그마한 기숙사 6번 방은 나조차 잘 모르고 있던 나다움으로 채워져 갔다.



I am brave
I am bruised
I am who I'm meant to be
this is me


This is Me 가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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