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 달콤한 한여름 밤의 꿈과 같았던 영국생활의 막이 내리고 오랜만에 가족과의 재회는 반가움 그리고 두려움이었다. 1년이란 시간이 우리 모두를 좀 더 성장시켜 주었을까, 이제는 다 같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소망하는 마음에 그게 가능할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딴지를 걸었다. 하지만 난 영국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사랑과 지지를 충천해오지 않았던가. 곧 마주하게 되는 것이 희망이든 절망이 든 간에 난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늠름하고 용감무쌍한 장군의 기세로 현실세계에 귀환했다.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동안 전화기 너머로 이메일로 토막토막 들려왔던 소식들의 풀버전이 내 눈앞에 공개되었다. 부모님이 서로의 반대편에 서서 수십 년 동안 자신을 향해 팽팽히 끌어당기던 줄은 두 동강으로 끊어져버렸고 딸들은 한 지붕아래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다. 부모님의 역할을 대신해내보려다 폭언과 폭력도 서슴치 않게 된 딸, 우울감을 이기지 못하고 지하방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린 딸, 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밖으로 밖으로 멀어져만 가는 딸, 현실이 너무 거짓말 같아서였는지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 집 밖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딸까지... 무너진 힘의 균형 속에 우리 가족은 병들어가고 있었다.
집안의 질서를 통제하는 엄한 경찰이 된 딸의 매뉴얼에 반하는 행동을 한 사람은 모욕과 조롱이 가득한 폭언을 들으며 분노를 산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나에게도 자비는 없었다. '어떻게 저런 말을 내뱉을 수 있지?' 치를 떨며 칼날 같은 말을 곱씹다 보면 이런 말을 들을만한 행동을 했다는 자기 의심이 싹을 틔웠다. 집을 떠나 1년간 들어왔던 긍정의 표현들이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의 거품처럼 흔적 없이 사라져 갔다. 지적받은 행동을 검열하며 바닥 없는 자괴감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언니가 나를 조롱하는 그 모습 그대로 내가 나를 비웃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가족이 나에게 내리는 평가가 정확한 거겠지. 사람들이 뭘 알아... 천사는 무슨 천사야...' 나는 더 이상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입밖에 꺼내지 못했다. 지적받은 내 행동들은 가족을 사랑하는 모습이 아닌 것 같아서... 나 스스로가 위선적인 것 같아서.
영원히 같이 가야할가족이 나를 살고 싶게 만드는 삶의 원동력이 아니라 삶에 의지를 꺾는 존재라는 답답함이 온몸을 조여왔다. 이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대학졸업 전까지 남아있는 시간 동안 전공필수과목이 아니더라도 내게 답이 될만한 수업은 모조리 찾아내 미친 듯이 파고들었다. 이 모든 학문은 내가 풀어내야 할 문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해결에 대한 뾰족한 대안은 되어주진 못했다.
잠 못 이룬 많은 밤을 증명하는 짙은 다크서클과 푸석푸석한 피부로 나는 원데이 상담소를 찾아갔다.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 걸까 수없이 고민하며 조금씩 조금씩 꺼내놓다 터져버린 둑처럼 서러운 눈물이 쏟아졌다. 티슈를 뽑아주며 줄곧 내 얘기를 들어주던 상담사가 입을 열었다.
"타샤가 걸어 들어올 때 놀랐어요. 웃는 미소가 너무 밝고 예뻐서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음 문장을 기다렸다.
"사랑을 듬뿍 받은 사람한테서 보이는 그런 미소였어요. 타샤를 따뜻하게 사랑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증거겠지요. 그들이 누구였나 떠올려보고 앞으로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세요."
아버지는 사랑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 같고 그 결핍이 가족 모두의 관계에 미치고 있지만 이제 나이가 드셔서 새롭게 배우는 것 역시 쉽지 않으실 거라 했다. 내게 사랑을 줄 수 없는 대상에게 사랑을 요구하며 상처받기보다 내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를 찾아보라 권유했다. 건강한 상호작용을 지속적으로 경험해 더 강인해지면 내게 사랑을 주지 못하는 대상에게도 돌려받을 기대 없이 사랑을 줄 만큼 넉넉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했다.
상담실 건물을 빠져나와 눈물콧물을 쏟느라 울긋불긋해진 얼굴에 찬바람을 쐐며 걸었다. 아빠가 큰 딸 세명을 앉혀놓고 털어놓았던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기억 저 편에서 꺼내보았다. 아빠를 가져본 적 없는 어린 수야 이야기를...
한 작은 시골마을은 미혼 소녀의 출산으로 온통 시끄러웠다. 어린 아빠의 부모님은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핏줄인 남자아기는 거두겠다며 데려갔다. 나이도 열악한 환경도 모성을 막지 못해 어린 어미는 결국 갓난아기를 훔쳐 나왔다. 딸과 딸의 아들을 함께 거두어야 하는 할머니는 딸의 발목을 잡은 수야가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깊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출산 이후에도 여전히 고운 수야엄마에게 반해버린 한 청년은 반지 대신 수야를 호적에 올려주겠다는 제안을 내밀며 청혼했고 그렇게 가족이 되었다. 현실을 뛰어넘는 사랑을 실현할 것 같던 로맨티시스트는 알코올중독으로 밤낮없이 폭력을 행사했다.
시간이 흘러 수야 밑으로 태어난 동생들로 북적이는 집이 되었지만 수야를 위한 음식, 옷, 장난감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해가 서쪽에서 뜨려는지 할머니가 수야에게 잠자리채를 건넸다. 생애 처음 가져보는 자신만의 장난감에 상기된 얼굴로 해 질 녘까지 잠자리를 잡고 또 잡았다. 다음날 갈 곳이 있다며 수야를 손을 잡아 끄는 할머니의 걸음은 고아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따라가면 안 된다고 느낀 수야는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목이 쉬도록 애원했다.
"할머니...할머니이 잘못했어요.
밥 조금만 먹을게요. 잠자리채도 안필요해요.
장난감 사달라고 안 할게요. 안 갈래요. 제발 버리지 마세요."
그렇게 가까스로 집에 돌아온 수야는 아버지에게 밤낮으로 매타작을 당했다. 불탈듯했던 사랑이 식어버린 남편의 눈치를 보느라 엄마는 더욱 매정해질 수밖에 없었고 수야가 돌림병에 걸렸을 때 집에서 떨어진 헛간에 버려졌다. 이틀정도를 간신히 버틸만한 음식과 함께... 신의 가호로 살아난 수야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엄마 발목을 잡은 아이로 살았다. 본 적이 없어서 제대로 미워할 수도 없는 아빠를 그리워하면서...
눈물 없이는 말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삶을 산 나의 아빠. 그 삶의 기운이 딸들 삶 곳곳에 묻어있었다. 영국에서의 경험에 힘입어 분명 이번엔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상처 입은 우리 가족 모두를 끌어안고 사랑할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속절없이 무너진 나를 보는 심정은 패배 그 자체였다. 이대로는 사랑을 논하기는커녕 내가 산산조각이나 우주의 먼지로 사라질 것 같았다.
비행기 승무원의 비상시 대처요령 안내 방송은 늘 말했다. 비상시에 자신 먼저 산소호흡기를 착용해야 옆에 사람도 도울 수 있다 했다. 누구를 돕기 전에 나 스스로를 도와야 했고 이제 한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또 혼자 살겠다고 도망가는 것이냐'라고 묻는 목소리,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이 덤비더니 꼴좋다' 비웃는 소리에 난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국에서의 시간으로 난 한 뼘을 성장한 거야. 그다음 한 뼘이 자라러 가는 거야.'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나를 꼬옥 끌어안았다.
답을 찾는 건 어렵기만 하지만.. 멈추지만 않으면 도착해 끝과 시작의 과정 사이의 나의 쉼표를 그늘진 길가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