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빌런

by 샤인젠틀리

한국에서 시작한 삶엔 수많은 '처음'이 함께했다. 그 처음의 빛깔은 순진무구였다.


생애 처음 가져보는 정규 직장은 소년원과 정신병원을 지척에 둔 초등학교였다. 들려오는 말들에 의하면 학생들의 상당수가 조부모님 손에 길러지거나 한부모 가정이라 했다. 사교육의 혜택을 받을 기회가 비교적 적은 학생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터라 적합한 발령이라 생각했다. 파란 눈 금발머리의 원어민 강사만큼 이국적인 경험을 선사할 순 없겠지만 자신과 닮은 생김새에 성씨도 같은 강사가 영어를 막힘없이 구사하는 모습은 학생들에게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동기부여가 되어줄지 몰랐다. 나에게 주어진 1년이란 시간을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아낌없이 쓰고 싶단 열망으로 정규수업 이외의 시간도 자처해 학생들에게 개별지도를 해주었다.


학기를 마치고 방학을 맞이한 원어민강사들은 영어캠프를 진행하고 이외의 날들은 연구시간으로 쓰는 게 일반적이라 이 기간 동안에는 원어민 업무 전반을 관리하는 한국인교사도 쉬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끝을 모르고 불타오르는 열정 탓에 난 방학중에도 보충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으니 나는 원어민강사자격으로 고용되었고 원칙상 원어민강사의 업무는 한국인교사가 관리해야했다. 방학중 보충수업 결정은 영어캠프를 성황리에 마치고 휴식을 고대하던 원어민담당 선생님에게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난 그렇게 순식간에 선생님 삶에 빌런이 되었다.


지나서 생각하면 '으이그'지만 당시에는 뜨거운 가슴에 시야가 좁아져 나와 내 신념에만 매몰된 순간들이었다.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곤란하게 하는 시행착오를 겪다 보니 무언가를 결정할 때 주변인들과 그 밖의 상황들이 조금씩 더 보였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목표를 정했을 때 그 목표를 홀로 실현시킬만한 힘을 내가 갖추었는지, 그런 힘이 부족해 다른 이의 협조가 필요하다면 그 과정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는지 미리 살피는 성숙함이 필요하단걸 알게 되었다.


이런 깨달음 앞에서 세월 속 아빠가 내렸던 결정들과 이에 따른 식구들의 반응이 왜 그렇게 부정적이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아빠는 이루고자 하는 꿈들이 많았다. 이를 실현시키는데 가족들의 협조가 필요했는데 아빠는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니, 인식했더라도 그 부분을 충분히 소통하는 방법을 몰랐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시절 수강한 수업 '가정폭력' 내용 중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 대목이 있다.


여럿이 모여 앉아 TV를 볼 때 어린아이들은 꼭 앞을 가리고 서서 다른 이들의 시야를 가려 원성을 사죠?

"안 보이니까 좀 앉아!" 아무리 말해줘도 몰라요. 금세 또 일어나요. 그 아이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학생들이 손을 들고 이런저런 의견을 내놓았고 교수님은 설명을 이어갔다.


그 아이의 수준이 딱 거기까지 발달했기 때문이에요.
자신에게 보이는 건 남들에게도 보인다고 생각을 해요.
나한테 이 장면이 보이면 내 뒤에 사람도 보일 거라 생각한다는 말이죠.
말 그대로 자신이 우주의 중심인 거예요.
하지만 많은 경우 아이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좋아집니다.


그래, 나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누군가의 빌런스러운 행동엔 악의가 없을 수도 있다. 단지 그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영웅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