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너의 노래가 아니어도 괜찮아

by 샤인젠틀리
Camila Cabello - First Man (LIVE at the 62nd GRAMMYs)


그레미어워드 무대에서 자신을 진실되게 사랑해 준 첫 번째 남자에게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고백하는 여자.

한 걸음씩 천천히 걸어가는 그녀 앞에는 잔잔한 강인함이 풍겨 나는 남자가 있었다. 마주친 두 사람의 눈동자는 맑은 하늘에 쏟아지는 별들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평생을 걸쳐 이어진 아빠의 깊고 한결같은 애정에 답하는 딸의 헌정곡 무대였다.


서로에게 온전히 닿은 따뜻한 사랑을 목격하는 일은 내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 모습이 아름답고 소중해 울었고 나로서는 채워지지 못한 채 종결되어 버린 사랑에 대한 목마름에 눈물이 났다. 다른 이들의 무해한 행복을 보고 엄습해 오는 서러움이라니...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을 한구석에 내려놓고 스크롤을 내렸다. 세상 앞에 강철처럼 강해져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면서도 자식에겐 한없이 다정했던 자신의 아빠를 기리는 글들의 행렬 사이로 묵직한 위로의 글이 보였다.

오늘 이 노래를 듣고 흐느껴 울었어요.
보호받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아버지를 가진 기분이 어떤 것일까,
저는 상상이 되질 않아서요.
저처럼 아빠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아픔을 가진 분들이 계시다면
그 상처가 꼭 치유되길 기도합니다.


내 마음에 들어갔다 나와서 적은 것 같은 이 댓글에 달려있는 수많은 라이크에 동참하며 내 두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어느 날 보게 된 유퀴즈 인터뷰를 통해 코미디언 김신영 씨 역시 보호과 안정감이 간절했던 과거를 살아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다닌 이사만 60번, 전국각지는 물론 비닐하우스에서까지 생활해야 했던 코미디언 김신영 씨는 자신이 세상에 태어났단 사실도 아버지도 너무나 원망스러웠다고 했다. 어린 신영에겐 이 모든 것이 일말의 유익도 없는 그저 고통의 시간이었다.

유키즈온더블럭 162회


훗날 박찬욱 감독은 김신영 씨를 '헤어질 결심'이란 영화에 파격 캐스팅을 하는데 그 이유인즉슨 인생의 여러 감정을 다 갖추고 관객을 웃겼다 울렸다 하는 코미디언으로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김신영 씨가 "환경 때문에'라며 아파했던 기억은 세월이 흘러 "환경 덕분에"로 변화해 있었다. 담담한 그녀의 고백을 들으며 마음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 시간을 잘 견뎌줘서 대견하다고 그녀가 자랑스럽다고...

나는 꽃처럼 귀하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 구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고운 딸이고 싶었다. 저녁노을 같이 따뜻한 핑크빛 노랫말이 내 이야기가 될 수 없음에 방황하며 눈물로 잠들던 수많은 밤들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 맞이한 아빠의 죽음 앞에서 길고 길었던 내 슬픔의 계절에도 드디어 끝이 왔음을 깨달았다. 아빠의 딸이었기에 도달할 수 있었던 깨달음과 그 가는 길에 만났던 모든 인연은 선물이었다. 내 인생에서 떼어낼 수 없었던 고통과 결핍은 나만의 가사와 멜로디로 창조된 세상에 하나뿐인 노래가 되었다. 내 삶을 통해 울려 퍼질 이 멜로디를 아빠의 영전에 바친다.


아빠에겐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지만

몇 날 며칠을 고민해 내게 예쁜 이름을 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아버지는 알코올중독으로 아빠를 수차례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아빠는 알코올중독을 대물림 하지 않고

신앙으로 노래로 책으로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들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귀함을

말과 행동으로 늘 가르쳐 주셨음에 감사합니다.


점심을 사 먹을 돈이 없어 경험한 허기짐은

내가 가진 빵 한쪽도 굶주린 다른 이와 나누어 먹고자 주위를 살펴보게 하였고

가난해도 마음만은 넉넉할 수 있는 풍요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감추려 해도 내 안에 샘솟는 사람들의 향한 무한한 애정과 따뜻한 감성은 아빠에게서 물려받았단 걸 부인할 수 없음을 느끼는 매일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통 속에 무너져가던 아빠의 모습은 부모님도 연약하고 상처 입은 한 사람일 뿐임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단단한 반석 같은 부모님 없이 텅 빈 광야에

홀로 지어져야 했던 아빠란 집에

세상풍파가 얼마나 거세고 모질었을지


처음 가지게 된 가족이 움켜쥘수록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흩날리고,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주고자 했지만 자꾸만 빗 나갔을 때

얼마나 외롭고 절망스러웠을지 나는 감히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내 안의 결핍으로 나 또한 가해자가 되어

상처를 입혔을 수많은 순간들과 사람들을 떠올려봅니다.

그 모든 이들에게 진심의 용서를 구합니다.

모두가 피해자이고 때론 가해자가 되는 불완전한 세상에서 결국에는 용서 못할 사람이 없단 걸

이제나마 어렴풋이 이해합니다.




"아빠가 남기고 간 선물" 연재를 시작했을 때쯤 내 글에 담고 싶은 메시지와 꼭 닮아있는 곡을 만났다. 싱어송라이터 사샤 슬론의 자전적 노래인 "Older"이다.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의 불화와 이혼을 겪으며 자신이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성찰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부모님이 히어로가 아님을 나와 같은 한 인간일 뿐이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사랑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어렵고 모두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애쓸 뿐이라는 걸... 때로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놓아주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노래했다. 그녀는 자신이 눈물로 써 내려간 이 노래가 대중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진솔함은 상처를 안고 사는 수많은 이들에게 가감 없이 전달되어 큰 공감과 치유를 불러왔다.



The older I get the more that I see
My parents aren't heroes, they're just like me
And loving is hard, it don't always work
You just try your best not to get hurt
I used to be mad but now I know
Sometimes it's better to let someone go
It just hadn't hit me yet
The older I get

Sasha Sloan의 Older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r1Fx0tqK5Z4


사샤 슬론의 노래처럼, 나의 글도 누군가에게 치유와 위로가 되었기를 마음 다해 소망하며 첫 연재를 마친다.



연재 하나하나를 정성 다해 읽어주고 맞춤법 경찰이 되길 마다하지 않았던 나의 첫 번째 구독자 디디씨

언니가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는 작가가 되면 좋겠다고 브런치 데뷔를 응원해 준 동생 H


서로의 기쁨과 슬픔의 기억들을 공유하며 항상 정성스러운 댓글로 연재 한걸음 한걸음을 동행해 주신 송지영 작가님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고 읽어야 할지 돌아보게 해 주신 배대웅 작가님께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언급하지 못하였지만 부족함이 많았던 저의 첫 연재를 소중한 시간을 내어 찾아주시고 라이킷으로 댓글로 응원해 주신 여러분이 계셔서 오늘까지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빠가 제게 남겨준 선물 중 하나는 브런치를 통해 만난 여러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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