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순서를 오래도록 기다린 만큼 12월은 다 계획이 있었다. 잎을 다 떨궈낸 앙상한 가로수도 크리스마스 전구들이 화려한 옷이 되어주면 그 불빛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두근두근 몽글몽글해졌다. 늘 생각엔 있지만 선뜻 연락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떠오르고 바쁜 걸음을 멈춰 한 해 동안 일어난 일들을 회상하게 만드는 12월 만의 특별함... 떨쳐내지 못했던 생각을 보내주고 미루어왔던 결정도 하게 해 주는 마법의 달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나의 2024년은 그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다.
따스한 봄날에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버진로드를 걸어 남편의 손을 잡고 새 가정을 이루었다. 찌는듯한 여름은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해 준 아빠를 데려갔고 쓸쓸한 가을은 나를 글 쓰게 했다. 내게 허용되었던 아픔 하나하나를 대면하며 그 길목에서 글친구들을 만났다. 어딘가 나와 닮아있는 새로운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추워도 따뜻한 겨울이 와 있었다. 겨울은 크리스마스 다음날 태어난 아빠와 그 삶을 동행했던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이것은 곧 나에 대한 이야기 이기도 했다.
결혼 전부터 사람들을 지도하고 봉사하는 일을 했던 아빠는 평생을 밤낮없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부름에 달려 나갔고 엄마도 그 뒤를 따랐다. 어린 나는 부모님 없는 텅 빈 집이 어두운 밤거리보다 무서웠다. 이제 갓 기저귀를 뗀 동생 손을 잡고 땅거미진 집 앞 계단에 나와 앉아 골목길 끝 가로등 불빛아래 부모님의 모습이 나타나길 기다리곤 했다. 어린 동생이 모기에 물릴세라 에프킬라를 사방에 뿌려대면서.
아빠와 엄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토요일이면 호박죽을 한솥 끓여다 탑골공원으로 향해 무료배식을 했다. 집 주방엔 항상 노란 호박이 떨어지지 않았고 뜨거운 호박죽이 퍽하고 튀어 오른 엄마 손등과 팔뚝엔 화상 자국이 끊이질 않았다. 소외된 사람들과 일상을 함께하는 삶을 살던 아빠와 엄마는 연이은 행사가 줄을 선 연말 시즌엔 더욱 바빠졌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 먼발치에서 만인의 봉사자가 된 부모님을 바라봤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언니들은 일찍이 투입되어 도왔고 나는 집에서 어린 동생을 돌보다 후발대로 투입되곤 했다. 크리스마스날 집에 남아있던 딸 3번과 4번의 브런치 메뉴는 달고나였다. 연탄불위에서 알맞게 녹은 달고나를 스텐 쟁반 위로 깔끔하게 떨궈내는 문방구 사장님의 능숙한 손놀림을 상상하며 녹은 설탕 한국자를 싱크대 상판 위에 탁 떨어뜨렸지만 조준 실패였다. 상판 모서리를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는 달고나를 받아내려고 손을 뻗었다. 달고나는 검지와 중지에 안착했고 너무 뜨거워 이를 악물었지만 소리 내 울지 않았다. 찬물에 손을 담그고 급하게 달고나를 뜯어낸 자리에 잡힌 물집으로 개구리 손가락이 되어버렸다. 집안을 뒤져 약을 찾아 찌릿찌릿 쓰라린 손가락에 바르고 정신을 차려보니 곧 행사가 시작될 시간인지라 급하게 옷을 챙겨 입고 다치지 않은 손으로 동생 손을 잡고 교회로 행했다.
미국이란 새로운 땅으로의 이민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우리 가족의 생활 전략과 포메이션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딸 1,2번의 뒤를 이어 딸 3번이 생활 최전선에 배치되고 팀에 새롭게 영입된 딸 5번을 딸 4번이 후방에서 돌보게 된 것 외엔 말이다. 아빠는 봉사의 대상이 바뀌었을 뿐 여전히 이웃을 나 자신보다 사랑하는 삶을 살고자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딸들은 상처를 입었지만 그건 후일에 보상받을 영광의 상처라 굳게 믿었다. 우리는 성장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살길을 찾고자 했고 그 선택은 보통 대가족의 만장일치 지지를 받긴 어려웠다.
첫째 언니는 집안에서 극렬히 반대하는 결혼을 감행했고 가족 과반수의 공분을 산 결과는 절연이었다. 첫째 언니와 연락한다면 함께 가족을 이탈하길 희망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오랫동안 서로 끊겨있던 자매들은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재회했다. 한국에 거주지가 있는 나와 남편은 미국에서 장례를 치르는 동안 첫째 언니집에 신세를 졌다. 언니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지난 10년간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뼈저리게 체감했다. 언니의 결혼식 풍경, 조카의 초음파, 수많은 생일파티와 크리스마스 사진... 언니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내가 놓친 세월이 담겨있는 앨범에 가슴이 저려왔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언니집에 머무는 동안 알게 된 가족의 소소한 습관과 특징을 기억해 내며 며칠을 고심해 소소한 크리스마스 종합선물세트를 만들었다. 선물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포장하며 함께하지 못했던 지난 세월에 대한 애잔한 마음을 담아 소포를 부쳤다. 선물은 센스 있게 크리스마스이브날 도착해 주었고 "이모 캄사합니다~" 콧노래를 부르며 색칠공부책에 색을 입하는 조카의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모른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언니의 문자
미국 사람들은 "Because it's Christmas 크리스마스니까요. "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이유 없이 잘해주는 사람은 무조건 거르라는 요즘 보편적인 지침을 당당하게 거스른다. 아무런 조건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선행을 베풀 때,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용기 내 보여주려 할 때 크리스마스이니 너그럽게 용인해 주길 바라는 소망을 담아 쓰는 말이다. 어찌 보면 연말은 하늘이 주신 선물 같은 기간인지도 모르겠다. 서로의 부족에 대한 용서를 베풀고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드러내고 조금이나마 후련해진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해도 된다는 위로의 계절말이다.
영화 러브 액추얼리(2003)의 한장면.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땐 웬 빌런인가 싶었지만 세월이 흘러 다시 보니 남자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