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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간호사 Jun 10. 2020

2.신규 간호사, 부서발령 '명'을 받들다.

모두 원티드는 반영되지 않았다. 


동기가 된 신규 간호사 다섯명이 부서발령을 기다리기 위해 작은 방에서 잔뜩 긴장한 채로 앉아있었다. 이전에 '원티드'라고 해서 내가 가고 싶은 부서를 1순위부터 3순위까지 적어서 제출한 적은 있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당연히 그대로 발령이 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쩌면 이 곳에 앉아있는 우리 모두가 말이다. 사실 신규간호사의 원티드를 반영해주는 관대한 대형병원은 그리 많지 않다.


내가 가장 가고 싶은 부서는 단 한 곳, '수술실'이였다. 사실 수술실이 가고 싶었던 건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였다. 면접때 사용하는 말이 아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자면, 수술실은 병동보다 '나이트(밤샘 근무)'개수가 훨씬 적기 때문에 끌렸다. 서른살의 신규였던 나는 20대 때에도 밤을 새워 놀아본 적이 없는, 그 악착같이 경쟁하던 간호학과의 시험기간에도 7시간 이상씩은 꼬박 자던 '수면욕'이 매우 강한 학생이였다.


어차피 경험하지 않는 이상 각 병동의 분위기나 업무강도를 미리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래도 소문으로 이른바 '태움'(‘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괴롭힘 등으로 길들이는 규율을 지칭하는 용어다. by 네이버 지식백과)이 심하다는 몇 몇 병동은 눈치채고 있었다. 매년 신규간호사 웨이팅 순번상 예비 1번은 꼭 중환자실로 발령나는데, 그 곳에 입사한 신입은 퇴근시간이 따로 없다는 뒷이야기가 파다했었다.


부서는 한 번 몸담으면 쉽게 바꿀 수 없다. 최소 몇 년, 어쩌면 퇴사하기 전까지 일할 곳일텐데 수술실에 가지 못하더라도, 최악은 피했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기도했다. 앞줄에 앉아 언뜻 보이는 예비 1번 언니의 옆모습이 무척 초조해보인다. 아마 나보다 더 떨릴테지. 이윽고 교육담당 선생님께서 부서 발표를 해주시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김토다는 산부인과 병동"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같은 전공을 공부하였지만, 서로 다른 병동에 발령이 되었고 당연히 변경은 불가능하다. 예비 1번 언니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중환자실을 발령받았고 어느정도 예상은 했는지, 홀가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기준의 부서배치이지만, 이렇게 우리의 운명은 정해졌다. 동기들은 산부인과 병동은 분위기도 좋고 일도 다른 곳보다는 나은 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며 부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난 그 소문의 출처가 궁금할 따름이였다.


병원 입사 전 웨이팅하는 시기에도, 나중에 병동에서 일 못한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고 미리 요양병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사는 동기들을 보면서 "아,나도 가서 IV(정맥주사) 스킬이라도 익혀야 하나, 나만 이렇게 쉬어도 되나"를 고민하던 것이 엊그제였는데. 명찰을 손에 쥐고 교육선생님과 병동까지 걸어가는 길이 너무 현실감 없이 느껴졌다.


병동에 계신 선생님들은 어떤 분들일까? 신규간호사인데 나이가 많으면 다들 불편해하고 잘 알려주지도 않는다는데 정말 그럴까? 혹시 이 병동도 '태움'이 심할까? 누구누구는 이것도 잘 모르냐며 선배 간호사에게 수액백으로 머리를 맞았다는데, 여기는 그러지는 않을까?


온갖 생각을 하다보니 몇 걸음 걸은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산부인과 병동'이라는 글씨가 눈앞에 와있다. 사복을 입고 긴장해있는 누군가가 교육간호사와 함께 들어오는 걸 보자, 스테이션의 선배간호사들은 이미 눈치껏 저 사람이 누구인지 안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나는 몇 일 전부터 모두의 주요 이야깃거리였다.


긴장한 탓에 선배 간호사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연신 인사를 하는데, 고개를 들어 보니 한명은 나를 슬쩍 쳐다보며 까딱 고개를 흔들곤 차갑지만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다른 한명은 눈이 마추쳤는데, 인사를 받아주지 않고 바로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보며 하던 일을 다시 하기 시작한다. 두명 다 웃음기라고는 전혀 없는 어려워 보이는 인상이였다.

안쪽에 앉아 계시던 수간호사 선생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번쩍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와 팔짱을 끼고 인사해주시는데, 처음으로 이곳에서 누군가가 반갑게 맞이해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감사했다.


병동에 일이 너무 많아 바빴던 것이 이유였을까, 스테이션의 선생님들의 첫인상은 쉽지 않아 보였다. 벌써부터 입사한지 세달, 심지어 한달만에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는 친구들의 이름이 떠오른다. 사실 이 정도는 전혀 별 일이 아닌데 말이다.  긴장한 탓에 오른쪽 팔다리가 저릿저릿해서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한평생 처음 있는 일이였다.


5년도 넘게 지난 지금도 정확히 떠오르는 강렬한 병동의 첫인상이다. 스테이션 안쪽으로 걸어들어가면서 코 안을 확 메운 알콜 냄새까지 완전히 기억난다.


"적어도 1년, 가능하면 2년. 그 정도는 임상에서 버텨야 나중에 어느 직종에서라도 간호사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까 꼭 1년은 버텨야해." 


교수님, 제가 해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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