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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Aug 14. 2021

2015.11.3~11.6 / 런던아이에서 본 런던은

London, United Kingdom

누군가 너는 인복이 타고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차라리 영업직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며 우스갯소리로 제안을 했을 정도였다. 물론 그저 영양가없는 농담이었겠지만 요지는 내가 참 인복이 좋은 사람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유리에 가까운 멘탈을 지닌 내가 별 탈없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 '인복'도 한 몫 하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여행은 나  스스로도 그 점을 인정할 만큼 소중한 인연들을 안겨주었는데, 이번엔 그 인연들의 시작이었던 그녀들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 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비행기 좌석에 앉던 그날. 나는 유난히 초조해 보이던 주이에게 말을 걸었다. 홀로 외국을 나간다는 압박감과 초조함을 누군가와 나누면 나 또한 태연하게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와 주이는 몇 마디 말을 이어갔고, 뒤이어 성격 좋은 수연이가 대화에 거들었다. 당시 우리는 꽤 사소한 난관에 봉착했는데, 그것은 바로 '호칭정리'였다. 빠른 년생인지라 평소 한국에서도 나이를 한 살 올려 말하던 나는 그 당시에는 왜인지 외국법(?)을 따라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나를 제 나이로 소개했고, 덕분에 학년이 같은 수연이와 나이가 같은 주이 사이에서 퍽 난감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다행히도 주이가 나를 언니로 불러줌으로써 호칭이 정리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상황을 정리해준 주이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다.(그 후 나는 나이는 한 살 올려 말했는데 그 덕에 독일에서 만난 응비언니와 재미난 해프닝이 벌어졌다.) 그렇게 또래인데다가 서로 영국이 처음이라는 공통분모마저 가진 우리들은 급속도로 친해졌고, 이후 서로 번호를 교환하며 곧 만날 것을 약속한 채 뿔뿔이 흩어졌다.


그 후 우리는 다시 만나 저녁식사를 함께했는데, 낯선 런던에서 식당을 찾아가는 일은 꽤나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수연이와 나는 어떤 식당을 갈지 고르던 중 스테이크를 단돈 10유로에 먹을 수 있다는 지라프(Giraffee)로 정했고, 당시 '길을 잘 찾는다'며 자만했던 나는 그녀들을 이끌고 호기롭게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음식점은커녕 패스푸드점조차 나오질 않았고 황당하게도 간신히 찾은 그곳엔 웬 옷 가게가 위치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가고자 한 그 체인점은 최근에 폐점하였고, 애석하게도 우리가 생명줄처럼 믿었던 지도앱는 그 사실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우리는 역시 믿을 수 있는 건 구글뿐이라며 구글맵을 통해 인근에 다른 지점을 찾게 되었고 행동력 있는 수연이가 재빠르게 택시를 잡아 우여곡절 끝에 식당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어찌되었건 우리는 영국 현지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시켜 먹는다는 사실에 제법 들떠있었다. 혼자서 들어간 식당이라곤 고작 Costa Coffee가 전부였던 나는 이국적인 식당의 풍경에 잠시 취해있었고, 비행기에서 이 친구들을 만난 것이 퍽 다행스러웠다. 호기롭게 길을 찾는다고 앞장섰지만 결국엔 어두운 밤거리를 운동만 한 셈이었고, 찾아간 식당의 가격은 예상보다 넘어섰지만 둘은 그저 웃으며 넘겼다. 게다가 우리는 불과 며칠 전에 처음 본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비행기에서 만났다는 묘한 신비감에 서로를 꽤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후 우리는 각자 여행을 마친 뒤 런던아이에서 다시 만나 영국에서의 마지막 일정까지 함께할 수 있었다.

수연이가 보내준 그 날의 야경

그날 내가 바라본 런던의 야경들은 미처 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흡사 회색과도 같았던 런던의 색채는 반전이 되어 까맣고, 노랗고, 때론 하얀 빛들을 내뿜으며 영롱하게 빛이 났다. 고개를 좀 더 숙여 야경을 바라보자니 마치 저 빛 속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지만, 그 느낌은 되려 무서움보다도 따뜻함에 가까웠다. 그 순간 내가 느낀 모든 감동들은 여행에 수반되는 수많은 기회비용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와야 할 이유였던 것이다. 우리는 서로 돌아가며 런던의 야경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어주었고, 사진으로 다 담겨지지 않는 그 풍경들을 못내 아쉬워했으며, 이곳에 서있는 스스로들을 대견해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을 함께 공유한 그들이 있어 감사했다. 그렇게 하늘에서 시작한 우리의 동행은 하늘에서 끝을 맺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국에서 그 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택시도 타보게 되었고, 차가운 인스턴트식품이 아닌 따뜻한 '요리'도 맛볼 수 있었으며, 무섭고 두렵기만 했던 여행길은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그 들은 내게 있어 런던을 공유한 유일한 친구들이자, 이후 만나는 모든 인연들의 시작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여행에 있어 배울 수 있는 다채로운 감정들을 이제 막 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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