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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are Sep 23. 2021

2. 12살의 그날로 돌아갔다.

초등학교 6학년의 어느 봄날이었다.

중학생이었던 작은언니는 학교 체육대회 준비를 해야 한다고 고등학생이던 큰언니 보다 먼저 집을 나섰고, 초등학생이던 나와 남동생 그리고 큰언니가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른 아침부터 유난히 요란하게 울리던 그날의 전화벨 소리는 지금도 내 귓가에 맴도는 것처럼 선명하게 기억난다.

학교 갈 준비를 마친 큰언니가 전화를 받았는데 곧바로 표정이 굳어 ‘네.. 네..’라는 대답만 하고 있는 걸 보고는 엄마가 전화기를 뺏어 들었다.

몸살 기운에 우리들 밥도 챙겨주지 못하고 누워있던 엄마는 그대로 일어나 뛰쳐나갔다.

작은언니가 학교에 가던 중 학교 근처 골목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고, 차의 앞 유리에 머리를 부딪혀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은 채로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연락이었다.

119 구급대원의 연락을 받고 처음 이송된 병원으로 부모님이 달려갔지만, 첫 번째 병원에서 언니를 받아주지 않아 아빠와 엄마는 구급차를 타고 30분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이동했다.

나중에서야 첫 번째 병원에서 언니를 거부한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머리가 심하게 찢어져 한눈에 봐도 심각한 수준의 외상에 의식까지 잃은 언니의 모습은 곧 죽을 사람으로 분류가 된 것이었다.

처음에 부모님은 심각한 수준의 외상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의 의사나 장비가 부족한 것이 아녔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응급실에 들어가는 것조차 막아선 채 기본 응급 처치도 진행하지 않고 그대로 돌려보낸 것은 곧 죽을 환자라고 판단한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병원에서 얻는 수익이라고는 몇 시간의 응급실 비용과 장례식 비용뿐이기에 아예 환자를 받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쉽게 말해 적당히 다쳐서 입원을 해야 병원에서는 오랫동안 꾸준한 수익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인데, 언니는 그럴만한 환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요즘이야 그럴 일이 없고 있어서도 안되지만 당시에는 지역 종합병원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추측이 사실화가 된 건 두 번째 병원의 관계자들과, 가해자와의 법정 싸움을 위해 만났던 변호사들의 일관된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두 번째 병원에서는 언니를 받아줬고, 이송 즉시 수술을 진행했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못한 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언니는 자동차 앞 유리 전체가 깨질 만큼의 충격이 가해지면서 머리를 부딪혔고, 깨진 유리에 머리가 찢어지면서 뇌손상이 있었는데 수술한 의사 선생님의 말로는 신경 바로 앞까지 찢어진 상태라 단 1mm만 더 미끄러졌어도 즉사했을 거라고 했다.

천만다행으로 그 신경은 비켜 갔지만 여러 부위에 손상이 있기 때문에 수술을 했다고 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담당 의사는 ‘절망적인 말만 해서 죄송하지만 의학적으로 봤을 때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운 상태이기 때문에 준비하셔야 한다는 말 밖에는 해드릴 수가 없다’고 했었다.

그렇게 매일같이 똑같은 말을 들으며 기다린 지 정확하게 14일 만에 언니의 의식이 돌아왔다.

죽어야만 병원에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던 언니는 두 눈을 뜨고, 그대로 굳어버린 것만 같았던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다시 깨어났다.

병원에서는 가히 기적이라고 표현할 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담당 의사와 간호사들은 물론이고, 중환자실 보호자 대기실에서 몇 날 며칠을 엄마와 같이 지내던 다른 중환자의 가족들에게 언니의 소식은 큰 기쁨이고 희망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언니는 7살의 어린아이가 되어 모든 기억을 지운채 깨어났다.

언니와 동생들은 물론이고 부모님 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막내 동생 보다도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언제, 얼마만큼의 기억이 돌아 올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로 기약 없는 조용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기 시작했지만, 7살이 된 언니는 약 먹는 것도 거부하고 치료받는 것도 싫어했다.

진짜 어린아이처럼 어르고 달래 약을 먹이고 치료를 하는데, 덩치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보니 간호사들과 엄마가 붙잡고 매달려야 가능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엄마는 한순간도 언니의 곁을 떠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게 엄마는 언니가 사고 나던 날부터 언니의 병간호를 위해 병원에 머물렀고, 아빠는 홀로 가게를 운영하며 언니와 나 그리고 남동생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나마 나와 내 동생에게는 꽤 나이 차이가 나서 엄마 다음처럼 느껴지던 큰언니가 집안 살림을 하며 나와 동생을 챙겨 주었다.

다행히도 두 달 정도 지나면서는 작은 언니의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엄마는 가끔 한 번씩 집에 들러 살림을 살펴보고 밑반찬을 해두거나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음식 몇 가지를 해주고 갔다.


그날도 병원에 있던 엄마가 오랜만에 들리러 오기로 한 날이었다.

엄마가 오는 날이라 신이 나서 학교가 끝나고 곧장 달려왔지만 엄마는 저녁에나 들릴 수 있다고 했다.

아빠는 장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동생은 친구들과 놀다 오는지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등학생인 큰언니는 늘 나보다 서너 시간은 늦게 왔다.

가게에 들러 아빠한테 인사를 하고 가게 바로 뒤에 있는 집에 가방을 두고 나오는데, 집 앞에 옆집 아이와 할아버지가 나와 있었다.

맞벌이하는 아들 내외를 대신해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를 봐주는 집이었다.

낮에는 아이들도 유치원에 가기 때문에 할머니는 가끔 소일 삼아 일거리가 있다는 연락을 받으면 일을 하러 나가고 오후에는 할아버지 혼자 아이들을 돌보기도 했다.

그날도 할머니는 일을 나가셨는지 할아버지 혼자 먼저 하원 해서 집에 돌아온 둘째 손자를 데리고 있었다. 3살이던 그 아이는 귀엽게 생기고 우리를 잘 따라서 언니들이나 내가 유난히 좋아했던 아이였다.

나를 보고 반갑게 웃는 아이를 보고 자연스레 그쪽으로 가서 아이와 손잡고 웃으며 놀고 있었다.

옆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집으로 들어가 음료수를 마시고 가라고 했다.

엄마 심부름을 가거나 할머니가 챙겨 주실 때는 몇 번 그 집에 들어가 간식을 얻어먹고 나온 적이 있기는 하지만, 할아버지를 따라서 할아버지만 있을 때 들어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아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우리 oo이가 오늘 간식을 못 먹었어. 지금 배고플 시간인데 누나 간다고 하면 서운해할까 봐 그래.” 하는데, 내 손을 잡고 있는 그 아이를 뿌리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엄마 오려면 한참 남았으니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따라 들어갔다.

할아버지가 먼저 들어가고 아이를 챙기며 뒤 따라 들어갔는데, 간식을 준다던 할아버지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서는 TV 수납장 깊숙한 곳에서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이내 손이 닿았는지 싱긋 웃으며 꺼내 든 것은 비디오테이프였다.

아이랑 같이 보라고 만화영화라도 틀어주시려나 하는 마음으로 아이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서는데,

“내가 좋은 거 보여줄게.”

하면서 씩 웃더니 테이프를 넣고는 TV 전원을 켰다.

TV를 켜자마자 화면에 보이는 모습에 나는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로 방문 앞에서 얼어 버렸다.

옷을 다 벗은 남녀가 엉켜있는 채로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성기까지 적나라하게 보이는 성관계가 이어졌고, 남녀의 격렬한 신음 소리가 조용한 방안을 가득 채웠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남녀의 성행위는 물론이고 성인 남성의 나체는 본 적이 없었다.

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초등학교 6학년이던 내가 받은 성교육이라고는 올챙이 그림으로 설명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보게 된 남녀의 성관계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술에 취한 듯 눈이 풀려 서로의 몸을 미친 사람처럼 갈구하며, 고통인지 쾌감인지 모를 표정으로 몸부림치는 남녀의 모습은 본능에 취해버린 동물과 같아 보였다.

그리고 화면 한가득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남녀의 성기는 구역질이 날 만큼 더럽고 역겨웠다.

TV 화면 속에 보이는 모습이 ‘성관계’라는 것조차 알지 못할 나이였다. 하지만 더 이상 그걸 보고 있으면 안 된다는 것과 이 집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이 굳은 채 얼어버린 사이 어느새 내 뒤로 와서 문을 막고 서있는 할아버지를 피해 무작정 도망갈 수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래, 일단 아이와 놀아주는 척하다가 할아버지가 간식을 준비하면 그 사이에 뛰어 나가자.’ 싶은 생각으로 아이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런데 어느새 내 뒤로 와서 다리를 벌리고 앉으며 나를 감싸안는 손길이 느껴졌다.

어떤 생각도 행동도 할 틈 없이 양손이 옷 위로 내 가슴을 움켜 잡았다. 그리고는 어느새 한쪽 손이 셔츠 밑단을 겉어 올리며 맨살에 닿는 게 느껴졌다.

배를 따라 조금씩 올라오던 손이 속옷에 닿는 순간, 마치 누군가 내 머릿속에서 알려주는 것처럼 더 이상 그대로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그대로 뿌리치고 뒤도 보지 않고 집으로 내달렸다.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그고 불도 켜지 못한 채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 방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그때부터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무서웠다.

어둠이 무서운 게 아니었다.

내가 본 것, 내 몸에 느껴졌던 그 더러운 느낌들.

매일같이 마주하며 인사하고 서로의 집에 드나들며 밥도 먹고 안부를 챙기던 할아버지가 더 이상 좋은 옆집 할아버지가 아닌 더러운 인간이라는 사실.

그 모든 것들이 무서웠다.

무서움에 몸서리치며 울고 있는데, 내 몸에 닿았던 그 손길이 계속 나를 감싸는 것 같았다.

그 더러운 손길이 닿았던 모든 것은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입고 있던 옷은 속옷과 양말까지 벗어 가위로 찢어 버렸다.

그리고 배와 가슴이 벌겋게 피가 맺히고 살갗이 벗겨지도록 문지르고 또 문지르며 씻어냈다.

그래도 내 몸에 닿았던 그 손길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내 눈으로 봤던 그 더러운 장면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괴롭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둠 속에서 잠이 들었던 건지 잠시 정신을 잃었던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울고 울다 지쳐 몽롱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러다 문득, 밖에서 엄마와 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눈물을 닦고, 헝클어진 머리도 정리하고, 깊게 심호흡을 하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몇 시간 동안 울었던 모습이 진정될 리 없었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엄마가 무슨 일이 있냐며 나를 안아줬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의 품에 안기자 마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서러움과 두려움이 다시 밀려오면서 눈물이 났지만, 엄마의 몸에서 나는 소독약 냄새에 금방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 얼굴을 올려다보니 피곤함이 배어 있는 모습이었다.

순간 엄마한테 어리광 부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한참을 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나를 엄마는 모른 체 할리 없었다.

“우리 딸 무슨 일이야. 엄마한테 얘기해봐. 엄마가 보고 싶었어? 아니면 무슨 일 있었어?”

엄마한테도 말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내 표정만으로 이미 나를 다 아는 것 같은 엄마의 말에 다시 또 왈칵 눈물을 쏟아 내고는 목이 잠긴 채로 말을 했다.

“범호네 할아버지가… 범호랑 놀아 주려고 갔는데… 간식 준다고 해서 집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내 몸을 만졌어…”

울음을 삼키며 겨우 한 마디씩 내뱉었다.

내가 그 방에서 봤던 것, 옷을 찢어버릴 만큼 더럽게 느껴진 내 몸의 촉감, 도망치듯 뛰쳐나와 반나절을 울다 나온 것.

그것들은 말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하지 못했다.

가슴에 꽉 막힌듯한 무언가와 울음을 꾹꾹 눌러 내리며 말을 하느라 몇 마디의 말도 겨우 내뱉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한테도 하면 안 될 것 같았고 하기 싫었다.

엄마는 나를 한번 꽉 안아줬다.

“우리 딸, 엄마도 없는데 무서웠겠네. 그 할아버지 나쁜 사람이네. 우리 딸이 잘못한 거 없어. 그러니까 울지 마. 울면 지는 거야.”

내 등을 토닥이며 해준 엄마의 말에 이상하게도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그래. 엄마가 괜찮다면 다 괜찮은 거야. 엄마가 내 잘못 아니라면 아닌 거야. 그러니까 내가 울 필요 없어. 엄마가 괜찮다고 했으니 아무 일 없이 지내면 되는 거야. 엄마니까. 엄마가 하는 말이니까..’

거짓말처럼 뭔지 모르게 무섭고 두려웠던 마음이 진정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엄마의 말을 믿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잘 지냈다.

아니, 괜찮은 줄 알았다. 잘 지내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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