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게을러도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등교를 시키고 나면 7시 20분이다. 나의 출근 시간은 8시.
오피스로 향하기 전까지 딱 40분이 남는다. 그런데 빨래를 넌다던지 식탁을 치운다든지 하다 보면 10분 훌쩍 지나간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일을 정리하고 나는 악기 연습을 한다.
오늘 아침은 설거지 거리가 많았다. 어제저녁 일정이 많아서 정리하지 못한 그릇까지 있었으니 아무래도 설거지를 해야 하는 게 맞았다. 그렇지만 며칠 째 집안일을 하느라 연습을 못했더니 마음이 불편했다. 게다가 내가 월요일 "첼로 독학을 시작하며"라는 글도 쓰지 않았던가. 적어도 내 글에 떳떳하려면 연습을 해야 했다. 꾸준히 해오던 바이올린도 며칠 째 연습하지 못할 정도로 바빴으니 게을러서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은 연습을 꼭 해야 할 것 같았다.
'연습을 할까? 방을 치울까? 설거지를 할까? 연습을 할까?'
식탁을 치우면서 계속 고민했다. 식탁에 있던 그릇을 다 나르고 행주로 싱크대를 깨끗이 닦았다. 그리고 그 행주를 싱크대 옆에 두면서 말했다.
"아이~ 몰라. 나 오늘 그냥 연습할래."
그렇게 오랜만에 첼로를 열었다. 줄을 조율하고 한국에서 사 온 첼로책을 펼쳤다.
굵직한 첼로 소리가 온 방을 울렸다. 여전히 생일 축하 연습이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악기를 새로운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내 가슴을 뛰게 했다.
때로는 글을 쓰기 위해 점심을 먹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설거지를 잠시 그대로 두는 날도 자주 있고 내 외모를 꾸미는 시간을 줄이고 악기를 연습하기도 한다.
너무 바쁘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내게 남편은 말한다. "여보. 당신은 너무 많은 것을 하고 있어. 그걸 좀 줄여봐. 그럼 시간이 날 거야." 맞는 말이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그림을 그리고 싶고 글을 쓰고 싶고, 악기 연습을 하고 싶고 운동을 하고 싶고.
옛 속담에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한 마리도 못 잡는다는 말이 있다. 그렇게 치면 나는 지금 도대체 몇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는 것인가. 그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 내려놓아야 하는 것일까?
최근 동기부여 영상을 보는데 1000시간 그리고 3000시간을 투자하라는 강의가 있었다. 적어도 그 정도가 되어야 전문가가 된다고. 그리고 그 정도 투자하기 위해 많은 가지들은 자르고 세 가지 정도에만 집중하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이 영상을 들으면서 한참을 고민했다. 아 내가 지금 좋아하는 이 모든 것들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저렇게 시간이 필요한데 취미를 줄여야 하나? 진짜로 해야 하는 것들을 위해 써야 할 시간들이 낭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돈을 벌기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은 많이 없었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음악이고 글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면서 많은 것을 그만두고 그냥 내게 필요한 것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한 두 개로만 줄이려고 생각해 보니 이미 슬픈 마음이 들었다.
사실 나는 대학을 나왔지만 다른 공부도 하고 싶어서 내년에는 사이버 대학에서 공부를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12월 달에 원서를 넣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이버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면 정말 시간이 없을 것이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되니까. 그래서 더더욱 나의 이 바쁜 취미 생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내가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더라도 나의 취미는 놓치지 말자. 일주일에 한 번 연습할 거 10일에 한 번 연습하면 되고 매주 연습 하던 것은 격주로 다른 취미와 바꾸어 가며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림도 악기도 글 쓰는 것도 모두 조금씩 줄여가며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내게는 해야 하는 많은 일들이 있지만 취미 역시 내게는 중요하니까.
오늘도 나는 가끔 생활 속에서 게으른 내가 되기를 선택한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무척이나 성실한 내가 된다. 내 생활을 완전히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그렇지만 내 삶에 만족감을 듬뿍 줄 수 있는 방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