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구리는 내가 사는 곳에서 차 타고 3시간 걸리는 도시이다. 그래서 실리구리에 나오면 한국의 마트 같은 빅바잘도 갈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깨끗한 서점도 갈 수 있다. 그래서 좀 복잡하긴 해도 실리구리에 나오면 나는 한국을 느끼고 간다.
하지만 그것도 누구와 동행하느냐에 달려있다. 밤톨 같은 아들 둘과 함께 동행하면 아무리 남편이 바빠도 나는 아이들 핑계 삼아 마트도 구경하고 시장도 구경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아이들 없이 남편과 실리구리에 나올 때는 말 그대로 가장 힘든 날을 보내야 한다. 남편을 따라다녀야 하기 때문에 다리도 아프고 지루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오늘이 바로 남편과의 그 다리 아프고 지루하기까지 한 데이트를하는 날이다.
드디어 실리구리에 도착했다. 차들과 사람들과 릭샤들, 거기에 오토바이까지 아주 복잡한 거리에서 제일 먼저 우리의 할 일은 삼성 서비스 센터를 찾는 일이었다. 한 달 전 맡겨 놓은 한국 프린터를 찾아가라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명함에 있는 주소 하나 들고 길을 찾는 우리들.
그래도 제일 믿음직한 경찰에게 물어보자 해서 가까이 서 있는 교통경찰에게 명함을 내밀며 어디로 가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경찰은 교통체증에 지쳤던지 아주 보기 좋게 무시해 버린다.
‘모른다고 대답이라도 하지. 사람 무안하게.’ 외국인을 불친절하게 대하는 교통경찰이 얄미웠다.
그러는 사이 릭샤 아저씨가 우리에게 왔다. (릭샤는 자전거 인력거이다.)
“어디 가려고 하는데요? 이리 줘 봐요.” 남편이 들고 있던 명함을 허락도 없이 가져가서 주소를 읽더니 자기가 어딘지 안다며 빨리 타란다.
“거기까지 얼마예요?” 역시나 꼼꼼한 남편. 미리 가격 흥정을 하는데.
“아 40루피만 줘요.” 얼마 멀지 않은 거리인 것을 다 아는데 40루피를 말하다니. 역시 외국인을 대하는 가격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아까 까지만 해도 우리에겐 관심도 없어 보이던 경찰이 갑자기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그 릭샤 아저씨에게 뭐라고 이야기한다. 아무래도 직감으로는 너 왜 외국인한테 돈 더 받나? 고 말하는 듯했다. 인도에 오래 살다 보니 웬만한 이야기는 그들의 표정과 목소리 톤만 들어도 안다.
그러더니 경찰이 그 아저씨를 멀리 보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는 사이 다른 릭샤 아저씨가 왔다. 이 아저씨는 이미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었던 지라 순순히 30루피를 불렀다. 경찰도 그 가격이면 적당하다고 생각했던지 우리 보고 타고 가라고 눈짓을 한다. ‘나쁜 경찰인 줄만 알았더니 그래도 정이 있네.’ 좀 전까지 심술궂게 보이던 경찰의 얼굴이 왠지 이웃집 삼촌 같았다.
드디어 자전거 릭샤를 타고 삼성전자센터로 향했다. 아저씨는 정말 그곳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큰 도로에서 이 골목 저 골목을 지나가며 가장 빠른 길을 찾아가는 듯했다.
그런데 아저씨 뒤에 앉아 주위에 지나가는 간판들과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니 정상 화면에서 점점 느린 화면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의 자전거 굴리는 모습이 영 심상치 않다.
자전거에 문제가 있나? 아니면 아저씨가 너무 힘이 드나?
자전거를 끌고 가는 아저씨
한참을 느리게 운전을 하더니 갑자기 내려서는 걷는다. 자전거로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려는 우리의 목적은 알기나 한지 아저씨는 자전거 릭샤에 우리를 싣고 유유히 걸어간다.
“여보. 아무래도 릭샤 잘못 탄 것 같은데. 아저씨가 다리가 아픈가?”
“그러게. 내가 대신 운전하고 싶은데.”
그러더니 남편은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아저씨 보고 뒤에 앉으라고 했다. 그래도 자전거 릭샤 드라이버의 자존심이 있었던지 아저씨는 필사 코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우리가 자신의 자전거 속도에 불만이 있다는 걸 느낀 아저씨는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오른쪽 다리로 페달을 차고 조금 지나서 다시 왼쪽 다리로 페달을 힘껏 찼다. 옆에서 달리는 아저씨들은 왠지 우리가 탄 릭샤 아저씨보다도 몸도 다리도 건강해 보였다. 남의 릭샤는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 같은데 우리 릭샤는 걷는 것만 못했다.
남편과 웃지도 울지도 못하면서 그의 힘든 운전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왜소한 아저씨의 등. 그리고 허름한 하얀 티셔츠에 있는 구멍들. 땀을 흘리면서도 30루피 벌겠다는 신념 아래 온 힘 다해 페달을 밝은 그의 모습을 보는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허름한 옷을 입으시고 아빠 양복 공장 아래에서 사람들이 가져오는 칼을 갈아 주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약속 날짜를 맞추기 위해 밤늦게 까지 양복을 만드시던 아빠의 모습이,
야채장사를 마치고 돌아오실 때 진동하던 아빠의 땀 냄새와 생선 비린내가,
그 당시 택시 기본료 1100원 받겠다고 밤이고 낮이고 회사 택시를 이끌고 안동 시내를 활보하던 아빠 모습이,
모두 흑백 화면처럼 지나갔다.
집으로 돌아갈 막차가 얼마 남지 않아 빨리 일들을 처리해야 했음에도 우리는 릭샤 아저씨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릭샤를 잘못 탄 우리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그리운 아버지들의 등을 보았다.
내 기억 속에 아빠의 힘들었던 등을
그리고 우리 아빠들의 등을.
다리가 부서져도 자전거를 운전하겠다는 그 아저씨처럼
삶이라는 따뜻하나 무거운 짐을 지고 평생을 살아온 우리 아빠들의 등을 우린 보았다.
목적지에 도착한 난 느리지만 성실히 일한 릭샤 아저씨를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를 힘들게 만드나 그의 가족을 행복하게 만드는 허름한 그의 릭샤와 함께.
(근사하게 나온 릭샤와 자신의 모습을 본 아저씨는 매우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다음에 다시 만날 기회가 된다면 이 사진 한 장 전해 주고 싶건만......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