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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쵸 Jun 21. 2023

이렇게 워홀 가면 안 된다 표본의 개노답 워홀기 18

내 인생 첫 모험지에서의 두 달

  <그런 날들뿐이었다>

  호주에 오기 전에는 모든 것이 막연했다. 일단 가기만 하면 알아서 잘 될 거고, 영어도 저절로 늘고, 친구도 많이 생기고, 자유분방하게 연애도 하고, 소울메이트도 찾고, 매일 흥청망청 즐겁게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착할 거라고. 그게 얼마나 미친 생각이었는지는 호주에 온 첫날부터 알 수 있었다. 추상적인 희망은 박살 나 그러쥘 잔해가 없을 만큼 처참했다. 악몽 같은 호스텔에서 현실에 짓눌려 잠에 들면 또다시 한숨과 함께 하루가 찾아왔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영화 '킬링 로맨스'. 억지로라도 행복해지고 싶어서 매일 스스로를 가스라이팅 하듯 행복을 들었다. 하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고 힘을 내려고 해도 자꾸만 가라앉았다.

  애기, 유학원 사장님, 어학원 친구들, 사람들, 사람들... 목적 없이 순수한 호의로 내게 손 내밀어주고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우울의 근본적인 원인을 몰랐기에 외딴섬에 덩그러니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은 해결되지 않았다. 문제없는 답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답이 있기는 한 걸까? 어쩌면 우울에 잠식당한 채 조용히 썩어 들어가는 게 내 운명은 아닐까?


  <고통은 돌려 막을 수 있는 영역인가에 대하여>

  달리기로 인해 내 인생은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30초도 뛰기 힘들었는데 어느새 30분 달리기를 완주했고, 그 이상도 뛸 수 있게 됐다. 죽을 것 같아도 죽지 않고 그 순간만 견디면 결국 끝이 온다는 걸 달리는 내내 체득했다. 그렇게 기른 지구력으로 삶의 고비마다 나가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힘들 때면 억지로라도 나가서 뛰었다. 육신의 고통으로 정신의 고통을 잊기 위해.

  호주에서 처음 달리기를 시도한 날, 태양빛에 녹아내릴 것 같고 숨은 턱턱 막히고 다리는 무거웠다. 하지만 50분을 내리뛰었다. 달리기가 끝난 뒤에, 조금쯤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뿌듯했다.

  친구의 친구를 만나는 자리에 갔다가 불쾌감만 잔뜩 안고 돌아온 날도 있었다. 안 힘든 날이 없었지만 그쯤은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쌓여서 몸으로 반응이 오던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별 것도 아닌 만남을 훌훌 털어버리지를 못했다. 답답하고 화가 나고 자꾸만 그날을 돌려보며 확대 해석했다. 해소할 길이 없어서 무작정 뛰러 나갔다. 달리는데 눈물이 나왔다.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았는데 단순히 체력이 약해져서라고 생각해서 멈추지 않았다. 호흡은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다시 그날 있었던 일이 떠올랐고 숨이 턱 막혔다. 멈춰 섰지만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숨이 멎은 긴 순간 끝에 겨우 들이키는 짧은 깔딱임, 숨을 쉬는 법을 잊은 것 같았다. 그때 든 생각은 공황이 온 건가,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였다. 그게 다였다. 놀라울 만큼 미련도 슬픔도 없었다. 그래도 숨이 돌아온 후에 목표치였던 6km 달리기는 완주했다. 또다시 숨 쉬는 법을 잊을 수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이미 시작한 일은 끝마치고 싶었다.

  결론은 몸에 아무리 고통을 줘도 정신의 고통을 잊는 건 그때뿐이라는 것. 하지만 한 순간만이라도 잊고 싶으니 그저 달리는 수밖에.


  <위안이 됐던 순간들>

  남아도는 시간이 주체가 안 돼 돗자리 하나 들고 어디든 갔었다. 보타닉 가든에 누워있다 일어나 보니 해는 져있고 모기에게 잔뜩 물리기도 했다. 관리인의 안내에 따라 슬렁슬렁 오페라하우스 방면으로 걸어갔다. 이런 밤에 멀리서 오페라 하우스를 본 적이 없는데 이런 느낌이구나, 처음으로 예쁘다는 생각을 했었다.

  천문대에 드러누워 별을 보기도 했다. 다들 가족이며 친구, 연인과 함께인데 나만 혼자였지만 나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으니까. 하지만 어떤 곳도 내게 위안을 주지는 못했다.

  그동안 내내 호주를 거지 같은 섬, 그중 최악은 시드니라고 혐오했던 내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곳은 세인트 메리 대성당이다. 시드니에 온 첫날, 보타닉 가든 가는 길에 있길래 가이드와 함께 들린 그곳이 그냥 좋았다. 그 뒤로 밤이고 낮이고 울적하고 힘들 때면 성당에 갔다. 이 웅장한 곳에서 나는 너무 작아서 초월적인 존재가 가련히 여겨주지 않을까. 이렇게 매달리듯 성당에 오다 보면 언젠가 상황이 반전되지 않을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했다.

  어느 날 밤은 달이 아주 커다랗고 둥글었으며 빛 번짐 없이 선명했다. 주위를 장식하듯 박힌 별들 조차 존재감을 잃을 만큼. 나는 성당 옆 뜰에 돗자리를 깔고 드러누웠다. 관리인이 와 문제가 있냐고 물었고, 나는 그저 달을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참을 달을 봤다. 평소처럼 달에 깔려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멈추거나 달이 날 죽일 일은 없을 테니까. 달을 볼 때 죽음을 바랐던 건 더 나은 순간을 원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 보장된 행복과 존재하지 않는 것 중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후자를 택할 것 같았다. 이렇게 달을 보다가 세상이 까맣게 물들기를, 인생에도 영화처럼 엔딩이 필요하기에. 하지만 그날은 그냥 기대만 했다. 마냥 달을 보다 보면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지 않을까. 결국 자리 털고 일어나 호스텔로 돌아가겠지만 이번만큼은 다르기를 바랐다.

  달빛 아래 누워 스코티시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득 얘가 내 소울메이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늘 이상하다는 소리만 들어온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이 세상에 단 한 명 있다면 그게 얘가 아닐까 하고. 언젠가 아무도 없는 성당 옆뜰에 그 애와 함께 드러누워 달을 볼 날이 올 것만 같았다.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을 두고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정신병 초기 증세처럼 비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내 생각을 솔직하게 전달했다. 물론 그 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달을 보며 엔딩 대신 미래를 꿈꾸었다.


  <어쩌면 돌려 막기는 성공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

  이대로는 터져버릴 것 같아서 미치기 일보 직전에 호스텔을 뛰쳐나온 적도 있다. 슬리퍼를 신고서 하이드파크를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녔다. 가쁜 숨이 진정되고도 한참을 분수대를 바라봤었다. 제발 조금이라도 나아지라고, 이대로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이 와중에 친구도 사귀고 여행도 가고 어학원도 마친 게 놀라울 정도로 호주에서의 시간은 고행이었다. 불행할 때마다 하는 철학적인 생각, 삶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들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너무 불안정했고 온기가 절실했다. 조금의 온기라도 좋은데 그거 하나 얻기가 쉽지 않아 서글펐다. 그래서 매번 이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로 눈을 돌렸다. 뉴욕, 스코틀랜드, 태국... 어디라도 좋았다. 현실을 잊을 수 있다면야.

  스코티시와는 더는 연락하지 않는다. 바로 위에 소울메이트라고 해놓고 상충되는 이야기를 적는 게 우습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렇게 된 것을. 어쨌든 나를 무척이나 닮은 존재를 발견한 것만으로 내게 큰 위안이 되었기에 그걸로 충분하다. 싱숭생숭하지 않았다면 거짓이지만 그 계기로 깨달음을 얻었다.

  그동안 나는 내게 상처 준 사람들에게 종속된 삶을 살아왔다. 그들의 근황을 궁금해하며 호기심과 증오가 스스로를 갉아먹게 방치했다. 상처를 복기하는 과정에서 헤집고 들쑤셨다. 최초 가해자는 그들이지만 2차, 3차 가해자는 나 자신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오고 나서는 온전히 내게만 집중했다. 내 감정, 상황, 미래... 비록 그게 우울에서 기인했을지라도 '나' 외엔 안중에도 없었다. 하루하루를 견뎌내느라 바빠서 상처받은 기억들이 힘을 잃은 줄도 몰랐다. 과거의 악당들은 이제 내게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엑스트라로 전락했다. 연민도, 복수심도, 화도 사라진 공간은 그저 고요했다.

  원래 동선, 효율에 맞지 않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지만 오랜만에 성당에 가고 싶었다. 울월스에서 장본 것들을 들고 하이드파크를 지나 성당으로 향했다. 달은 없었지만 별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천천히 성당 둘레길을 걷는데 전과 달리 구원을 바라지 않았다. 소울메이트와 드러누워 달을 보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했지만 불안하거나 씁쓸하지 않았다. 여전히 마음은 고요했다.

  나는 더 이상 약하지 않았다. 언제나 일상이 모험이기를 바라왔다. 어쩌면 지금이 그토록 꿈꿔왔던 순간인지 모른다. 늘 입버릇처럼 '이 거지 같은 섬에 버려지다니이이이'를 외쳐왔지만 더는 내게 호주는 거지 같은 섬이 아니었다. 내 인생의 첫 모험지인 이곳에서 내가 어떤 기록을 할지 궁금했다. 늘 불안정한 요새에 숨어 갈망만 하던 내가 드디어 세상으로 나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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