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쵸 Sep 23. 2023

이렇게 워홀 가면 안 된다 표본의 개노답 워홀기 17

멜버른은 내 정착지가 될 자격이 있는가? 멜버른 여행 9일 차

  <멜버른 여행 9일 차:Bite of life/룬 크루아상 서서갈비점>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입부와 결말이다>

  여행의 시작을 연 바이트 오브 라이프에 처음과 마지막의 수미상관을 이루기 위해 방문했다. 닭튀김 샌드위치와 라떼를 주문했는데 커피 크기를 물었다. 처음 받는 질문이어서 어리둥절해하자 점원은 중간용 유리잔과 대형용 머그잔을 보여주었다. 1000원이랑 5000원 중에 뭐 가질래처럼 너무도 당연한 질문이었다. 유리잔에서 빠르게 식었던 저번과 달리 머그에 담겨 나온 커피는 따뜻함을 오래 유지했다. 역시 커피는 무조건 머그잔이다. 유리잔에는 물이나 담아먹도록 해. 사실 샌드위치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바삭함이 살아있는 닭튀김이 아니라 급식용 너겟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바삭하고 적당히 매콤하니 간이 잘 맞았다. 어쩜 이렇게 한국인 입맛에 딱 맞게 적당히 짭짤하고 매콤하지? 호주에서 고추 표시가 붙은 음식을 시켜도 맵기는커녕 무식하게 짠 적이 다반사였는데. 두 번 가고 싶었던 Good measure의 두 번째 방문은 불만족스러웠지만 여긴 처음보다 더 만족스러웠다. 데칼코마니처럼 완벽하게 대칭되는 도입부와 결말은 아름답기에.


  <멜버른도 어쩔 수 없는 호주인 것을>

  여태껏 적지 않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캐리어 때문에 낑낑댈 때 도움을 받지 못한 적 없었다. 딱 한 번을 제외하고. 뉴욕 헬스 키친 거리에서 숙소에 가기 위해 민박 직원을 만나야 했는데, 캐리어와 가방 두 개를 이고 지고 오느라 정신이 반쯤 혼미한 상황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늦게 나타난 그는 '따라오시죠.'란 말을 남기고 발걸음도 가볍게 앞서갔다. 울퉁불퉁한 길바닥에 캐리어 바퀴가 걸리고 가방은 걸리적대서 3보에 한 번씩 멈춰야 했지만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오르페우스 세요? 기억을 갖고 환생하셨나요? 양키매너의 나라 미국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묻는다면, 그는 양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오르페우스의 멍충 일화는 하단 참조)

출처-내가 만듦

  종종 인생 2회 차 오르페우스 같던 민박 직원이 떠오르곤 했다. 시티행 트램에 힘겹게 오르는데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지금 같을 때 말이다. 자꾸만 굴러가려 하는 캐리어를 고정하느라 애쓰면서 '장정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호주에서 구한 첫 집으로 이사 가던 날도 그랬었다. 한국에서부터 이고 지고 온 모든 짐을 끌고 언덕을 오르는데 아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양키매너의 나라인 서국권 국가들에서는 한 번도 이런 적 없는데... 아니, 소위 관광으로 먹고사는 후진국에서도 이런 적은 없었다. 매번 감탄하게 되는 호주 놈들의 매너에 빈정거림을 멈출 수 없었다. 거지 같은 변방 섬나라, 범죄자 후손답다. 


  <룬 크루아상 서서갈비점>

  룬 크루아상, 좋은 아침 패스츄리 범계점보다 맛없는 주제에 비싸다고 한껏 빈정거린 그곳. 피츠로이점에는 크루아상보다 맛있.. 아니, 멋있는 심즈총각이라도 있었지만 이번엔 시티점(본점)으로 가야 했다. 큰 캐리어를 끌고 오르막을 오르고 내리막에서는 우당탕탕 요란하게 캐리어에 끌려가고... 그래도 아기자기한 피츠로이와 확연히 다른 고층빌딩의 향연에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 룬 크루아상 시티점 근처에 명품관이 몰려있는 구역이 있었는데 분위기가 꽤나 근사했다. 시드니에도 이런 곳이 있는데 명품관이 밀집해 있음에도 꼬질꼬질한 인상을 풍겼는데. 한식을 제외하고 모든 면에서 시드니가 멜버른보다 후지다고 다시금 실감했다.

  아는 것과 체득하는 건 어찌나 다른가에 대해 시티점에 도착하고 나서야 체득했다. 바리스타가 룬 크루아상 시티점은 사람이 많으니 피츠로이점으로 가라고 했을 때 '이왕 가는 거 본점이 낫지 않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티점을 보고야 알았다. 바리스타의 추천이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었음을. 고시원도 아니고 누우면 끝일 것 같은 작은 매장에 앉을 곳은 없고 탁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사람은 어찌나 버글대던지 바깥까지 줄이 길게 늘어서있었다. 거지 같은 디저트 카페 Tori's는 자리 쟁탈전에서 이기면 앉을 수라도 있었지 여기는 무조건 서서 먹어야 했다. 서서갈비와 다름이 무엇인가. 비행기 시간만 아니었어도 피츠로이 특산품, 심즈총각이나 또 보러 가는 건데... 다음 방문까지 룬 크루아상의 대표 메뉴로 남아있어 줘요, 심즈총각.

  의자가 없어서인지 포장 손님이 대부분이라 줄이 금방 빠졌다. 점원이 아웃랜더 잭 랜들 배우를 닮아서 순간 흠칫했는데 그는 굉장히 친절했다. 나는 라떼와 아몬드 크루아상 4개를 주문했다. 세 개는 선물용, 나머지 하나는 라떼에 곁들여서 먹기 위해서. 물론 밥 먹은 지 얼마 안 돼서 배는 불렀지만 커피만 먹으면 조합이 완성이 되지 않기에 불가피했다. 주문을 마치자 점원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웨어 아 유 프롬?"

  "코리아~"

  "감사합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한국말에 영어로 답을 해야 할지 한국어로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버벅대며 목례를 했다. 국가별 인사말을 다 외우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문장을 만들기 역량 밖이었다. 그래도 친절한 점원 덕에 기분이 잠시 좋아졌고, 영수증을 받자마자 다시 가라앉았다. 커피 한 잔, 크루아상 4개가 5만 원 꼴이라니. 가격 때문에 언짢아진 기분을 달래줄 심즈총각도 없으면서, 날강도들 같으니...

  대체 어디에 앉아서 먹어야 하나, 계속 본다고 의자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주위를 물색했다. 그때 잭 랜들 점원이 커피와 크루아상을 들고 왔다.

  "어디 앉을 거야?"

  앉을 데가 어딨는데...? 대답 대신 고개만 두리번대자 그가 자리를 물색해 줬다. 서서갈비 탁자와 바닥에 붙어있다시피 한 창가 턱. 밸런스 게임도 아닌데 선택지가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니오. 서서갈비냐 노숙자 되기냐 중에 고민하다가 혼자 있을 수라도 있는 창가를 택했다. 커다란 짐에 바닥과 다름없는 창틀에 혼자 앉아 음식을 먹자니 노숙자와 다름이 무엇인가 싶었다. 하지만 빨리 먹고 자리를 뜨는 서서갈비 손님들을 보니 창틀을 선택하기 잘했다 싶었다. 노숙자는 몰라도 서서갈비는 단 한순간도 이해가 간 적 없기에. 창틀자리는 요새처럼 매장과 분리된듯해서 정신없이 사람들이 유입되고 빠져나가는 걸 남일처럼 바라봤다. 배가 부른 데다 소보루빵 껍질만 맛있듯 룬 크루아상도 위에 박힌 아몬드만 맛있었지만 천천히 다 먹었다. 11불이기 때문에.


  <익숙함은 지루하지만 포근함을 동반한다>

  공항버스를 타러 가야 하는데 트램을 또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배가 터질 것 같은 데다 캐리어를 싣고 내리느니 차라리 걷는 게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공항버스 타는 곳까지는 거리가 꽤 있었지만 빛을 반사하는 통유리 고층빌딩의 향연이 지루할 틈 없게 했다. 마지막까지 알차게 도시 분위기를 만끽한 데다 걷는 동안 소화도 됐고, 커피도 두 잔 마셨으니 성공적인 마무리였다. 정작 나를 멜버른으로 오게 한 대머리 독수리를 만나지 못했지만 멜버른은 내 정착지가 될 자격이 충분했다. 도시는 도시다웠고, 외곽 지역은 해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깔끔했지만 특색이 분명했으며 단골이 되고 싶은 카페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언제고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 도서관도 있었다. 기대조차 안 한 멜버른에서의 시간이 시드니에서의 두 달보다 만족스러웠다. 나는 결심했다. 만약 양공장에서 진저리 치며 한국으로 도망가지 않는다면, 시골을 벗어나 다음 정착지를 정해야 한다면 그때는 멜버른에 살리라.

  시드니에 돌아왔다. 마치 오랜만에 집에 온 것처럼 긴장이 풀리고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멜버른이나 시드니나 낯선 곳에 불과한데 고작 두 달 산 게 뭐라고 이런 익숙함을 느끼다니. 그래도 그토록 지긋지긋했던 동네 풍경, 불편하기만 했던 하숙집임에도 돌아올 곳이 있단 건 꽤나 좋았다. 어쩌면 여행은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익숙함에 따라오는 안도감은 포근함 마저 들게 하기에.

  아몬드 크루아상을 룸메에게 주고서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 얘기를 나누었다. 룸메는 내가 멜버른에 있는 동안 내가 나오는 꿈을 꿨다고 했다. 멜버른에서 내가 키 큰 서양 남자와 연애를 하고 그 남자를 이 집으로 데려오는 꿈을. 종종 예지몽을 꾼 적 있다는 룸메의 말에 나는 몹시 흥분해 물었다.

  "잘생겼어요?"

  "얼굴은 기억이 안 나요.."

  그게 제일 중요한 건데... 다시 자서 내 꿈 좀 꿔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사실 룸메의 얘기를 듣자마자 스코티시 생각이 났다. 그래서 꿈속 남자가 그였는지 확인하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다. 하긴 당장 내일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소울메이트를 알아 뭐 하겠는가. 어학원도 끝났고, 여행도 끝났고, 워홀은 한참을 남았다.



참고-오르페우스의 멍충 일화(https://blog.naver.com/flsk3344/222291091913)

작가의 이전글 이렇게 워홀 가면 안 된다 표본의 개노답 워홀기 1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