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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This Is Water」 후기 ④

바보라서 당한 건 아냐. 

by 아노 Art Nomad Mar 30. 2025

사진 : 사기 당했을 당시 내가 사용한 숙소. 아직도 각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판매되고 있다. 

방값을 제대로 내지 않아 쫓겨나기 직전에 놓일 때까지, 안타깝게도 난 이 리조트가 장기 계약한 회사 숙소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S. P. 필름의 대표는 자신이 미국계라고 주장하는 한국 사람이었다. 

     

처음 한동안은 취업사기라는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PD로 발탁되어 간 동료들 중에는 유명 영화 연출부나 스텝이었던 사람도 있었다. 유명 대학 공연예술학, 영화연출학 석, 박사이거나 광고계에 종사해 왔던 사람 다들 어디선가 가닥 했던 사람들이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수다 떨 기회도 금방 찾아왔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는 물음에 대답은 다들 비슷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살면서 더 큰 시장에 도전해보고 싶어서. 

      

숙식 제공, 6시 퇴근, 월급 140, 유급 휴가.     


겨우? 


겨우 그런 거에 넘어가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당시의 나와 동료들에게는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당시 한국 콘텐츠 시장에서 살아남는 게 그만큼 고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이 조건에 혹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2주 차부터 한 명, 한 명 불러내어 개인면담 시간을 가졌다. 업무에 대한 개인 면담이 끝나고 나면 회계담당 직원이 다가와 대출 요구를 해왔다.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에 회사 자산이 구류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만 풀리면 한꺼번에 상환해 주겠으며, 그전까지는 매달 원금에 이자까지 내주겠다고. 조직이 위기이니, 함께 해달라고.      


동기들 중에서 내가 가장 마지막까지 버텼다. 휴대폰을 정지해 두고 왔기 때문에 ARS 대출이 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었다. 하지만 심하게 아팠던 어느 날, 한인타운의 약국만으로는 차도가 없자 한국행 비행기를 끊어주는 바람에 결국 넘어갔다. 대표가 비행기표를 건넸고 회계 담당이 은행에서 대출받는 요령을 알려주었다.      

순진하게도, 나는 대출을 받아오는데 그치지 않고 한국 음식이 그리울 동료들과 함께 먹을 밑반찬 재료를 싸들고 돌아와 멸치볶음, 어묵볶음 등등으로 성대한 저녁을 차렸다.

 

시키지도 않은 야근을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낮밤이 없었던 한국에서의 습관이 남아 남는 시간에 놀면 뭐 하나 싶었다.      


미드를 보고, 타깃 분석을 하고, 새로운 드라마 기획서를 짰다. 영어로.  


알고 보니 만들 계획만 있었을 뿐 아직 론칭되지 않은 배우 아카데미를 내 손으로 만들었다. 아카데미에서 배우 지망생을 구한다는 내용으로 광고를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이 광고는 지역 방송국과 미팅하여 방송국 촬영 장비, 촬영 팀을 지원받아 우리 쪽 연출부 PD 출신, 전속 배우와 같이 촬영했다. 방송국 쪽에서 편집과 자막도 맡아주었다. 


회사 동료들과 마닐라에 있는 필리핀 국립극장 PETA를 방문해 파리에서 만났던 소속의 배우들과 미팅도 했다.      


이 모든 게 약 한 달 보름 동안 있었던 일이다.     


내가 필리핀에 도착하고 한 달 일주일이 지난 뒤, 동료들이 대표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게는 일주일 동안 말하지 않았다. 그동안 사기꾼을 옭아매어 경찰서에 데리고 갈 계획을 짜고 있었다고 했다. 내게는 거사를 치를 당일에 얘기해 줬다. 내가 너무 '열정! 열정!'으로 일하는 바람에 이 모든 게 사기라고 하면 죽어버릴까 봐 걱정됐다고 나중에야 얘기해 주었다.


동료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은연중에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들이 계획을 짜고 있던 일주일 동안 나는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했다. 동료들을 따라 라이브바도 가보고 새벽같이 일어나 그동안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던 숙소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낌새를 차렸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직관이 내게 말을 걸었던 게 아닐까.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다면 지금 즐기라고. 며칠 안 있으면 도망치듯 떠나야 할 테니.      


대표라고 불렸던 사람은 명백한 사기꾼이었다. 사업자 등록증, 숙소를 빌린 명의, 회사용 렌터카 명의 등 어느 것 하나 자기 것으로 되어 있는 게 없었다. 여권과 신분증의 이름도 서로 달랐다.      


동기 둘이 모두 대출을 받아다 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거액을 빌려다 준 줄 몰랐다. 


내 돈도 내게는 거액이었지만, 나보다 어렸던 동기는 제2금융권에서 빌릴 수 있는 최대 금액인 삼천만 원을 빌려다 주고 나이키 신발 한 켤레를 선물 받았다고 했다. 담보도 없고 신용 거래 실적이 없어 신용도가 낮았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고금리로 빌려야 했다. 2014년 법정최고 이자율은 연 30%였다. 


스물여섯이 일 년 동안 매달 293만 원을 무슨 수로 갚나. 연체되면 연체 이자까지 갚아야 할 상황이었다. 


나머지 한 친구는 전직 증권사 직원이었다. 다니던 회사가 인수합병을 당했다. 이 친구의 보직은 안전했지만, 이전 회사가 판매한 상품에 대해 일부 금액을 보상받지 못한 고객들이 있었다. 예금자 보호는 5천만 원 까지니까. 고객들의 원망스러운 얼굴들, 목소리들 그걸 견딜 수가 없어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러고는 S.P 필름의 재무팀으로 뽑혔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스란히 퇴직금만 날렸다. 


우리나라는 유독 사기 범죄에 대해 관대하다. 그건 아마도 사기 범죄가 '지적' 영역 혹은 '배포'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한마디로 사기 수법을 전략, 기지 등과 구분 짓지 않는 정서 때문에 당한 사람이 '바보'라는 취급을 당한다. 또는 '허영덩어리' 취급을 당하거나. 하지만 위에서 열거했듯 우리에게 '바보'나 '허영'의 조짐은 없었다. 단지 정상적인 인간관계라면 누구나 보편타당하게 지니고 있는 신의, 성실이 있었을 뿐.  

 

드러난 사기의 실체는 이랬다. 


대표라 사칭했던 사람은 앞서 채용된 직원들에게 일정 기간 동안 잘해주고 개인 면담을 한다. 채용되어 온 직원들은 대체로 한국에서 결핍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 결핍을 꽉꽉 채워줬기에 직원들은 대표를 원천 가족보다 더 신뢰했고 아빠라고 부르기에 이른다. 무엇보다 패기 있는 사업가의 면모를 보인다.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말들만 하게 한다. 부정적 생각은 목표를 흐리게 하고 팀을 와해한다며. 의심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앞서 빌린 돈을 유흥비로 쓰고 그다음 사람에게서 대출금을 받아 이자와 원금, 그리고 월급을 챙겨준다. 수영장 딸린 리조트 숙소에는 식사 도우미, 차량 기사, 영어 교사가 있다. 함께 일하는 필리핀 직원이 여섯 명이나 되었다. 사기는 한국인 직원들에게만 쳤으니 이들의 월급도 결국 나와 내 동료들이 챙겨준 것이다. 


주말이면 빈민가, 쓰레기 마을에 사회봉사 활동도 나갔다. 구인, 십인 가족이 사나흘 정도 먹을 수 있는 라면, 쌀, 향신료 등을 백 봉지 가량 만든 후 나누어주었다. 나누어 주면서 집에 아픈 사람은 없는지, 비상약이 필요하지 않은지 조사도 했다. 다음에 올 땐 가져오겠다고 하며. 대표에게서 사회적 기여도 S. P. 필름의 중요한 가치관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들을 후원한 음식도 결국 나와 내 동료들이 사기 당한 돈에서 나간 것이다.   


대표는 자신의 페소는 화수분이라는 말을 달고 다녔고, 카지노 VVIP였다. 우리에게 사기 친 돈 만으로 카지노 VVIP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가 벌써 9번째 피해자였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가끔 우리도 호텔에 데려가 VVIP 카드로 호텔 요리를 시켜주었다. 일요일이면 성당에 나가 고해성사를 하고 헌금도 많이 하고 온다고 들었다. 


누구든 한달이 지나면 쉬쉬하면서도 은근히 말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이미 긍정적인 라포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끝에는 꼭 대표를 감싸는 말로 마무리 되었다. 


믿을만하다. 지금까지 원금과 이자 펑크 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정도 많고, 나쁜 사람은 아니다. 


이런 상황이기에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은 구멍난 부분을 오히려 긍정적 추론으로 메우게 된다. 그래서 그다음 사람도, 그다음의 다음 사람도 자연스럽게 대출을 받아다 주는 것이 위험하지 않다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입사하기 전 들어온 아홉 명, 내 동기 세 명, 내 후임 세 명 이렇게 총 열 다섯 명 중 열두 명이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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