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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가드너 Oct 24. 2021

우리에겐 모두 각자의 정원이 있다

뿌리가 여러 번 드러난, 흔들리는 평범한 20대의 정원 가꾸기 일기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영국의 하이드파크 공원


오늘도 드러난 뿌리 앞에서 우는 너에게

조금 뿌리가 드러나도 괜찮아. 다시 심으면 되니까.

2019년 추운 겨울, 서점에서 유난히 내 눈길을 사로잡은 책이 있었다. 아니, 이렇게나 내 생각과 똑같은 작가의 에세이라니. 바로 그 책은 신미경 작가의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 


당시 내 인생에서 나는 첫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분명히 10대부터 20대 대학생활 동안에도 나 스스로 부끄러움 없이 정말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대학교 생활이 끝난 후 공채를 잇달아 실패했다. 분명 취업준비를 열심히 한 그 기간이 취업 실패로 인해 인사 평가자의 눈에는 무기력한 공백으로 채워질 즈음, 공채 실패와는 너무나 다르게 지원서, 면접 한 번에 홍보대행사에 쉽게 붙어버려 인턴생활을 시작했다. 역시 똑같은 자기소개서로도 유난히 잘 붙는 곳이 있다면 나와의 합이 맞는 회사라는 것은 따로 있는 건가 하는 긍정적 생각이 들은 것도 잠시, 전체 회사 내 채용 인턴들부터 시작해 같은 팀에 전 기수 인턴들까지, 눈에 보이고 또 보이지 않는 근무자들과의 끊임없는 평가의 말을 받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왜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도 경쟁을 해야 하냐고요! 


퇴근 후엔 밥 한 끼 먹을 곳도 적당하지 않았고 통근 시간만 2시간 가까이라 저녁밥은 밤 9시 즈음돼서야 먹기 일쑤였다. 그런 마음도 몸도 춥고 배고팠던 겨울날의 퇴근 시간에 버스를 기다리다가 추위를 피해 자주 들어갔던 곳이 을지로입구역의 '아크앤북'이라는 서점. 그 서점에서 신미경 작가의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를 만났다. 불어오는 풍파에 가슴 시린 사회 초년생의 마음을 위안받는 느낌이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심는지는 본인의 자유지만 사실 정원의 크기부터 토양의 질, 겪는 계절감까지 내 통제 밖의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열매를 크게 맺는 나무를 심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짧지만 아름다운 순간을 보여주는 꽃을 심고 싶어 하고, 또 누군가는 사계절 내내 한결같은 푸른 식물을 심고 싶어 하겠지. 하지만 어떤 목표를 세워도 모두에게 정원 가꾸기는 쉽지 않은 순간이 많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뿌리를 관리해주고, 또 자주 줄기와 잎의 성장 상태를 들여다봐주는 것.


사회생활이라는 게 모두가 만족하는 조건을 갖추기가 참 어려워서 삽으로 뿌리를 헤치는 경험을 종종 한다. 아니 왜 이런 뿌리를 길러왔죠?라는 질책에, 아니 왜 이런 식물은 없어요?라는 질문에, 새로운 식물들을 또 두리번거리면서 찾기도 한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남이 필요하다고 하는 식물을 또 심겠지.


신미경 작가의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 책 제목을 보면서 땅 위로 뜯어 올려진 뿌리를 다시 잘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른 다시 뿌리를 내려 튼튼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뿌리가 흔들리고, 뽑히고, 그리고 참을 수 없게 무기력한 상태까지 곤두박질 칠 수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있다. 그렇기에 세상 풍파를 겪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지치지 않고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싶어'가 아닐까. 


정원에 식물 뿌리가 썩어 시든다고 해서 식물을 뽑아버리는 것과, 무기력증에 정원을 방치하는 것은 너무나 다르다. 거듭되는 실패에도 정원을 가꾸고 뿌리를 튼튼하게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오늘을 살아내는 모두가 참 대단하다. 나는 그런 정원을 건강하게 관리하고 싶은 평범한 사람이다. 



앞으로도 지겹도록 풍파가 오겠지 

하지만 날씨 좋은 날들도 많을 것이다.


'너희 집에 돈이 많니?', '돈이 많아서 그렇게 일을 하는 거야?', '돈 많은 애들도 너처럼 일은 안 해', '너는 효용가치가 0이야', '내가 효용가치가 없는 너를 왜 데리고 있어야 하니?', '다들 너를 뽑은걸 후회하는 것 같아', '일이 어려우면 헬스장 경리를 해'. 


내 생에 몇 안 되는, 오랜만에 내 뿌리가 다시 땅 위로 드러난 날이었다. 회사에서는 버틸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퇴근 후 몰려오는 설움에 버스에서 눈물 한 바가지를 흘렸던 날. 어딜 가도 평균 이상으로는 해낸다는 평가를 들어왔고 그만큼 노력해온 내가 왜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하나 싶어 한편으론 억울하고, 정말 내가 문제였던 걸까 하며 끝없는 자기반성이 이어졌던 날.



그 사람 말대로 딱히 쌓아둔 커리어도 없어 사회에 굳건히 발 붙이기 위해 최소한의 사회생활을 쌓아가야만 했던 나였다. 가치를 깎아내리는 말 앞에서도 지금까지 경쟁을 거듭하며 취업의 관문을 통과해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까워서, 또 취업 시기의 공백 대신에 회사로부터 배울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 썩은 씨앗을 마음에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돌이켜 생각해도 생각해도 그런 씨앗을 받을 이유는 누구에게도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대안이 안 보여 선택해 그 씨앗을 내 정원에 심었다. 그 씨앗이 그 사람의 자존심과 감정이 담긴 썩은 씨앗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이해했다.

 

일과 사회생활의 경험치가 많은 사람이, 이제 업무와 사회생활의 경험치를 쌓아가야만 하는 사람에게 던질 수 있는 말, 그런 기준이라면 사회생활에는 강자와 약자가 존재할 것이며 그런 사회생활의 쓴맛을 제대로 경험한 날이었다. 



사람을 뽑는 인사권자와 지원자 사이는 분명한 위계질서가 존재할 수 있고, 누구나 모두 빠짐없이 회사라는 조직 아래에서 서로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되는 사회생활에서 분명 내 의지와 상관없이 뿌리를 뒤흔드는 사람이 상황이 생길 수 있음을 배웠다. 물론, 그런 상황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어, 나에게는 내 정원을 다시 키울 의무가 있었다. 이런 씨앗들 말고도 여러 풍파들도 겹친 시간들이었지만 가꾸거나 다시 내 마음을 가꾸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너무나도 다행이게도 나는 내 정원을 방치하긴 싫었으니까.


사회생활이나, 사회생활 밖 일상 속에서도 어떤 사건들은 가만히 있는 자리에도 태풍을 데리고 오며 그 자리를 갈아엎기도 한다. 내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일은 분명히 일어나기 때문에, 그것이 사람이든, 일이든, 아니면 정말 일생에 닥치는 불행이든 그것에게서 스스로 벗어나는 나만의 뿌리 지킴 방법이 필요하다.


나는 내 삶에서 이뤄내고 싶은 열매가 있고 그 열매가 피는 정원을 지켜내고 싶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내가 힘들 때 오히려 움직였던 것은, 그런 나를 조금이나마 지켜내기 위해서였다. 모두가 드러난 뿌리 앞에서 우는 순간들이 있겠지만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다시 일어나기를, 자신의 정원을 다시 들여다보고 가꿀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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