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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가드너 Oct 24. 2021

더 이상 막말에 기분 나쁘지 않다면

상처를 극복한 멘탈을 가지게 된 시간에 위로를 건네며

마음껏 누워있었던 영국의 세인트존스 파크
막말에 익숙해진 멘탈은 수고했다고 말할 일이 아니다

때론 너무 모른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것을 떠안는다.
사람은 모두 성장의 시기가 있다. 그리고 그 성장의 시기에서는 너무 몰라서 많은 것을 감내하게 된다. 


사람은 매 상황에서 자라나고, 매 상황은 사람부터 그 사이 건네지는 말들을 포함한다. 앞서 말한 나의 사회생활의 뼈아픈 순간이 있음에도 나는 성장할 이유가 있다는 믿음에 그 시기를 지내왔다. 그때 들어온 말들이 씨앗이 되어 부정적 방향으로 자랐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 몇 가지 사건을 경험하며 깨닫곤 한다.


업무로 혼날 시기에 들었던 '커리어도 없고 사회경험도 없는데 일을 왜 그렇게 하냐'는 말을 지금 돌이켜보면, 조금만 더 커리어를 쌓을 사회경험을 겪었다면 그 말을 가만히 들으면서까지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알았을 것 같다. 성장의 시기에는 너무 몰라서, 모른다는 이유로 감내하는 것들이 많았다.


받은 씨앗을 360도 요리조리 살펴보며 이 씨앗은 감정이 담긴 쓰레기 같은 씨앗이군! 하고 쓰레기통에 던질 수 있었는데. 아니라면 최소한 어 이거 썩은 씨앗인데요?라고 질문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때론 썩은 줄 말해줘야 아는 사람들도 있는 것도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나같이 사회생활의 경험이 길지 않은 사람들은, 윗사람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그 씨앗을 제대로 점검해보지 않고 심고, 심어서 키워낸다. 그리고 우와! 하며 자라난 것에 뿌듯해한다. 그 사람이 건넨 식물이 독성이 짙어 다른 식물들의 뿌리의 자리를 침범하면서 죽게 만들수도 있음은 모른 채. 


때로는 온전히 내 자율의지로 키워내야 할 정원에서 남에게 삽을 쥐어 주거나, 식물을 함부로 뽑아내는 일도 방임하기도 한다. 하지만 냉정하고 슬프게도 모든 건 나의 선택이고 내 책임이다. 나중에 나의 정원을 바라봤을 때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건 그 정원일뿐, 그 책임을 남에게 물을 수 없다. 씨앗을 심어내는 건 내 의지에 달려있는 것이고 그 씨앗을 썩은 씨앗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에. 때론 몰랐어도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돌아온다.



독성을 가진 씨앗은 내 정원에서 여러 가지 부정적인 감정을 자라나게 했다. 


우선, 나는 끝없는 불안함을 겪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이든, 업무 스킬이든 그것들이 쌓여가는 것은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채워지는 부분인데,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불안해졌다. 


그 강박관념이 나를 더 배우게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뜬구름같이 확실하진 않은데 불안한 마음에 학습하는 것은 때론 일에 대한 자부심을 채워줄 때도 있었지만 끝없이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적 불안함을 겪게 했다.


경제적 불안감도 생겼다. 연봉계약서 기준 계약 금액이라는 것이 있는데, 정말 내가 그만큼의 효용 가치도 안되는지 의문이 들며 불안했다. 이 정도면 이 정도의 연봉을 받을 정도로 성장한 걸까? 하며 불안했다. 20대가 넘어서 카페, 백화점, 초/중/고등학생 학원 선생님, 성인 과외, 바이럴 마케팅 등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두루 경험해보며 내가 다른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배워오려고 노력했던 나지만 그런 부정적 감정 앞에서는 때론 별 수 없었다. 그만두면 다른 일을 할 수는 있을까 싶은 불안함에 그 일을 놓을 수가 없었다. 회사라는 공간은 나가는 순간 소속되지 않는 타 집단이 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았음에도 그랬다.


업무도 업무지만 직접 벌기 시작하는 사회초년생의 돈이라는 것도 모아가고 쌓여가는 과정이 있어야 어떻게 잘 쓸지도 아는 것일 텐데, 그냥 얼른 돈을 많이 벌고 업무적 능력을 쌓아서 나중에 그런 말을 듣는 순간이 온다면 부당한 말이라고 의견을 자신 있게 말할 줄 알고, 해결 방도가 안 나온다면 나의 업무적, 경제적 능력을 믿고 과감히 그만둘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일을 매일같이 해나가는 과정은 긍정적인 원동력이 아니라 불안을 딛고 있었다. 어쩌면 자연스레 시간이 흘러야만 얻어지는 것들이 한 번에 얻어지길 바란다는 것은 다르게 생각해보면 지금 그들이 가지지 못한 내 젊음이 한 번에 10년 훅 흘러가면 좋겠다는 말과도 같은 건데, 나는 그냥 이런 아픈 게 청춘이라면 청춘이 싫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부당함 앞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을 잊었다.

회사 내 성희롱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라 터졌다. 성희롱 사건은 특정 직원이 아닌 전체 여직원들에게 이어졌고 때론 나에게, 때론 남에게 가하는 그의 행동들에 대해서 기분이 나빴지만 누구 하나도 제대로 터뜨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모두가 불쾌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사실은 묵인되며 계속 곪고 있었다.


나 또한 기분 나쁜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그 행동들을 넘겼다. 적응이라는 건 참 위험한 것이다. 매일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고, 나에게만 하는 일이 아니었고, 상급 직원들을 포함하여 모두가 유하게 넘어가는 일이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내가 먼저 큰 문제를 일으키기 싫은 마음도 있었다. 냉정한 사회생활 속에서, 안 보이는 위계질서 속에서 내가 약자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성희롱에 대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성희롱 사건에 대한 면담이 이뤄졌고 그간 겪었던 일을 익명으로 털어놓을 수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굉장히 혼란을 느꼈다. 성희롱 사건은 내가 업무적으로 들었던 막말 사건보다 '비교적 견딜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겪은 다른 힘듦에 비해 성희롱이 겪을 만하다고 생각해서 문제가 작아 보인다고? 이건 진짜 또 다른 심각한 문제였다. 업무적 피드백이 두려워서 내 이름이 불리는 것만으로, 메시지 알람이 뜨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꼈고 식욕을 잃는 것을 넘어 음식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거부 반응을 느꼈었다. 또 없던 편두통이 생겼고, 누군가 나를 부르면 두렵고, 입술이 마르고, 심장이 떨리고, 서서 혼나면 다리가 저릿하기도 했다. 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적인 변화였다.


그런 신체적, 정신적인 힘듦을 한차례 겪고 난 뒤 이런 나의 경험은 다른 어떤 것들을 '비교적 견딜만한 일'로 여기게 했다. 분명 기분 나쁠 일이고, 비교적 견딜만한 일이라고 해서 그냥 넘길만한 일이 아닌데, 이상하다. 더 신고하고 싶은 일을 제쳐 두고 덜 신고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진술해야 한다니, 심지어 더 신고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 낸 사람 앞에서. 아이러니했다.


막말을 견뎌냈고 그 막말을 견뎌냈다고 해서 다른 것들을 비교적 쉽게 견딜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생활에서 유하게 넘길 수 있는 게 많아지고 사회생활을 더 순탄하게 할 수 있다고 굳이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최소한의 내 존엄성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나를 지킬 수 있는 의지와 노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렇게 나 스스로를 지킬 생각조차 들지 않는 것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그때 느꼈다. 내가 왜 나에게 실망해야 돼? 잘못한 사람들은 같은 상황에서도 막말을 하고, 성희롱을 한 바로 그 본인들인데. 같은 상황이어도 누군가는 그 행동을 하지만 누군가는 절대 하지 않는다. 상황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각자 성향대로 행동한 것이다.


막말이 익숙해진다는 것은, 더 이상 막말에 대해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가 힘든 시기에, 내 생각이 났다며 친구가 보내준 어떤 심리 관련 글에서 봤듯이 실제로 이렇게 힘듦을 경험하면 결론적으로는 다른 사회생활을 순탄히 잘 해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얻어낸 그 순탄함이 그 힘듦을 겪어본 그 사람에게 그 시간으로 돌아가 다시 견디고 싶은 이유가 될까? 인생에서 썩은 경험들은 최소한으로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말들은 분명 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리 없다. 애써 안 좋은 영향력을 최소한으로 만들 뿐이다. 그런 막말에 익숙해진 멘탈을 수고했다고 말할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상처를 딛고 강해진 멘탈은 위로해줘야 한다. 그 멘탈을 가진 시간들이 본인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인해 상처로 돌아올 수 있다. 누군가 멘탈은 강해졌지만 이유 없는 공허함과 불안함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꼭 안고 위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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