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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가드너 Oct 24. 2021

사회적 거리두기 외에도 심리적 거리두기도 필요해

너의 세이프티존을 지킬 것

각자의 여유가 존중되는 영국의 세인트 존스 파크
나의 세이프티존에 알람이 울렸다



관계에서는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그 관계를 멀리하라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건강하기 위한 세이프티존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성희롱 사건을 계기로 총 세 번에 걸친 심리 상담을 통해 나는 업무적인 환경부터, 업무 외 가족, 친구 등 인간관계까지 전체적으로 나의 태도들을 점검했다. 스스로 객관적인 감정을 돌이켜보고, 심리책을 통해서 나의 상태를 점검해보는 것도 좋지만, 심리 전문가가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측면은 또 다르다.


나는 주변 관계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 주변 관계들의 상황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주변의 영향력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경향이 있다. 주변에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같이 열심히 하고 싶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성격이지만, 친해진 친구들과는 정말 오랜 기간 연을 이어가며 서로 기나긴 영향을 주며 지낸다. 스파크 튀듯 영향을 받진 않지만, 잔잔한 호수에 얼굴을 비추듯 서서히 닮아간다. 그리고 이런 성향만큼 나도 그들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어 보답하고 싶다.


하지만, 나에게 사람과의 관계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무너지지 않고 건강하기 위해서였다. 상담을 하면서 삼담 선생님한테 조언을 받은 몇 가지가 있다. 


"본인이 생각하는 장점을 어필해보세요"

나는 내 장점을 스스로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내 눈에만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주 뛰어나게 크리에이티브하지는 않지만 빛나는 아이디어를 이해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것을 좋아하고, 정리된 방식으로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고, 말을 다듬는 것을 좋아하고, 도움을 주는 것을 좋아하는 것 등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면모는 내가 조직에서 나만의 장점을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좋은 재료들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무의식적으로 남들 눈에는 그 면모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내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해내는 사회생활 속에서 내 능력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동시에 아직 멀었다는 부족함을 느낄 무렵, 다른 회사에서 면접 제안이 온 적이 있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충분히 적응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내 성향과 장점에 대한 믿음도 있었지만, 회사에 충분한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내 장점을 회사에서 볼 것 같은 판단 기준을 스스로 만들어 근거해 커트한 것. 


30분간 이어진 통화 이후 나를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헤드헌터의 말에, 오히려 의문이 가졌다. 왜 이력서 한 줄 제대로 보지 않고 나의 느낌만으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지? 회사 측면에서 효용가치를 논하는 기준을 그간 흡수하여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온 나는, 그 효용가치라는 똑같은 기준으로 나의 기회도 자발적으로 커트하는 냉철함(?)을 갖게 된 것. 정원 키우기로 치자면, 키우고 싶은 작물이 있는데 뭐 키울 수야 있는데 내 정원에서는 안될걸? 옆집으로 가! 하고 커트한 바보 같은 일이었다. 에잇.


상담 선생님은 내 장점을 좀 더 다른 사람의 판단과 생각에 근거하지 말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라고 말해줬다. 나만의 장점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남에게도 장점일 수 있다는 단단한 믿음을 가지는 게 중요한 것이다.


자존감은 자기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기 존중감과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아효능감으로 나뉜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나는 있는 그대로 나를 스스로 아껴주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내가 쓸모 있지는 않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자기 존중감에 비해 자아효능감이 부족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의 효능감을 길러주는데 더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관계에서 거리 두리를 두세요"

관계에 대한 생각 재정립하기

성희롱 등 업무 환경에서 부당한 대응을 받음에도 본인의 불편함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평소 가정환경이나 관계에서도 그런 포지션이어서 비롯될 확률이 높다고 하셨다. 실제로 나는 우리 집에서도 내 의견을 우선을 드러내기보다는, 가족과 오빠의 의견을 모두 수렴하는 중간 조율자 역할인 경우가 많았다. 때로는 가족의 입장에서, 때로는 자식의 입장 사이에 있었던 나는 참고 듣는 게 익숙했지만 버거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 애정도 받았겠지만 동시에 서운함에서 비롯된 질책의 기준이 되었기도 했기 때문에. 이러한 면들은 사실 조금씩 바꿔가야 하지만, 한번 형성된 환경에서 드라마틱한 변화가 갑작스럽게 생기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감으로 스스로를 먼저 지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까지, 내 관계에 다시금 생각해봤다.

물 흐르듯이 사람은 변하고, 변한 사람들은 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서로를 변화시키니까. 나처럼 주변에 영향을 크게 받는 사람일수록 생각을 정립시킬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세이프존을 존중해줘야 한다.

요즘 MBTI 검사가 유행하듯,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그마다 맞는 사람도, 다른 사람도 있다. 내가 똑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MBTI 검사가 매번 달라질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은 계속 바뀌고 MBTI 최적의 궁합도 또 계속 달라질 수 있다. 사람이 다른 게 어떻게 잘못이 될까?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누군가에게만 좋은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최악의 궁합인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환상의 짝꿍이 된다.


분명히 나에게 느껴지는 좋은 면들을 생각해보면 그 좋은 면들을 만들어준 주변인들이 있음에 분명하다. 나에게서 좋은 면을 느끼고 있다면 그 좋은 면은 내 곁에 오래 남은 사람들이 만들어준 장점일 것이다. 다만, 내가 머리 아픈 경험을 하고 있다면 분명히 그것은 내가 바꿀 수 없는 무언가를 안 맞아 서로를 콕콕 찌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있는 그대로 서로 바라봐주고 있지 않는 것이다.


이해를 하라면 뭐든 이해할 수 있다. 모두 다르니까.

이해를 못하겠다면 뭐든 이해 못할 수 있다. 모두 다르니까.


사람은 모두 다르고, 다름이 주는 장점도 있지만 다름이 주는 갈등도 있다. 때로는 다름을 인정해도 갈등은 일어난다. 사람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해하자면 뭐든 이해 못할 게 없고, 이해 못하겠다고 생각하면 모두 이해 못할 수도 있다. 그 갈등이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의 세이프티존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이해의 선을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때론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일 때도 많은데, 때로는 서로의 세이프존을  침범하면서 해결해야만 지속되는 관계라면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내가 느끼는 장점을 생각하니 친구가 더 소중해졌다.

현재 내 장점과 힘듦을 생각해보면 주변 관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 모든 관계를 매일 깊게 생각하면서 살진 않기 때문에 나의 생각에 크게 영향을 주는 주요 사람들이 있었다. 니의 장점을 생각해보고 그 장점에 영향을 준 친구들을 생각해보면, 내가 어떤 친구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하는데 도움이 됐고, 친구들의 존재에 다시 한번 고마워졌다.


물론 과거에도 나에게 이런저런 영향을 끊임없이 주면서 영향을 끼친 사람들은 있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냐는 것 같다. 반대로 요즘 자주 만나는 친구들을 생각해보고 역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됐다. 만나고 나서 이상하게 내가 좋아하던 일과 환경을 부정적으로 보이게 된다거나, 유난히 내 마음이 공허해지는 관계들이 있었다. 개인의 세이프티존을 침범당하거나 평가의 잣대를 들이미는 느낌에 친구를 만난 이후 내가 더 나쁜 방향으로 다르게 느껴진다면 그 관계는 거리를 두며 부정적인 가지를 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소중하기 때문에 좋은 감정들로 느끼게 하는 친구는 더 자주 보고, 아닌 친구들과는 거리를 두고 서로 간의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 다시 서로의 합이 맞는 순간들이 찾아올 수도 있다. 맞지 않고 서운했던 시간들이 무색해질 만큼.


나에겐 100을 못주면서, 남에게 주는 100이 부족해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나에게는 이 정도 정성과 시간이 과분하게 느껴지는데, 남들에게는 더 많은 것을 가져다주고도 허전함과 부족함을 느낀다면 그 관계는 서로 충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빈 장독에서 자꾸 나의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것. 내가 건강해야 관계가 꾸준히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남의 감정이 더 크게 느껴진다면, 관계의 거리두기가 필요할 때. 내 장독부터 고쳐야지.


관계는 물 흐르듯 유지되는 것이라, 연락을 안 하고 지냈던 사람들과도 갑자기 연락을 닿는 경우가 있다. 연락 한 번만으로도 나의 삶에서 좋았던, 안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위력을 가졌다. 나의 장점이 먼저 떠오르는 관계도 있고, 내가 단점 투성이처럼 보이는 관계도 있다. 내가 단점투성이로 보이는 관계는 '서로 안 맞는 관계'다. 그 친구랑 같이 하는 순간들이 많아져도 괜스레 미안해지거든. 내 좋은 면들이 건강하게 유지, 형성되어 나를 채울 수 있고, 내가 건강하게 채워져 남에게 고맙고 행복한 순간들만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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