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soceo Jan 01. 2018

나를 대신해서 일하는 것들 만들기

매일 가만히 점심값 벌기 #25

연말이라고 막 여기저기에서 행사가 있더니 반나절 지나고 나니 연초이고 신년이라고 하면서 또 뭐가 이것저것 있네요. 본의 아니게 퇴사하고 처음으로 머리가 아플 정도로 술도 마시게 되고, 그러다 보니 다음 날 점심때까지 잠도 자고... 오래간만에 누리는 음주와 늦잠이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개인적으로 슬럼프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그러다 보니 연말/연초라는 핑계로 술을 더 많이 마셨다는 점입니다. 퇴사 후에 모든 실수와 실패들은 고스란히 저에게 스트레스와 압박, 재정적인 손실로 돌아왔습니다. 회사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없다 보니 제가 한 일의 결과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합니다. 이렇게 힘들 때 술로 풀면 숙취가 저를 더 힘들게 하고 술로써 현실 도피하려고 한 저 자신한테 더 실망하게 되고, 그래서 저 자신을 더 힘들게 하기 때문에 어렵고 힘들고 외로울 때일수록 더욱더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 사이에 술마저 마셔 버린 겁니다. 정말 지옥의 끝까지 온 기분으로 연말과 연초를 보내다가 어제 잠들 때 '내일은 정신 차리자'라는 생각을 했고, 오늘 점심을 먹고 나서야 멘탈을 좀 회복한 상태입니다.


[다시 일상으로]

저한테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고, 닦달하지도 않습니다. 스스로 채찍질해서 다시 원래의 정신 상태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좀 정신을 차리로 며칠 동안 방치해둔 것들을 확인하고 다시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작업들을 더디게나마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멘붕에 빠졌지만 그런 감정의 동요 없이 자신의 것들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가 항상 강조하는 가만히 저의 점심값을 벌어주는 것들입니다.


[블로그]

연말/연초/방학 등으로 인해 저의 블로그 방문자 수는 반의 반토막이 났지만 여전히 하루에 1,000명 이상의 방문자가 있었고, 제 블로그에 댓글을 남겨 주고 저의 아이템(포스팅한 글)들을 보고 문의 메일을 받아 주기도 합니다. 블로그가 없었다면 전화로 문의가 왔겠지만 저의 최근 상태로 봐서는 응대를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블로그라는 놈은 한결 같이 포탈의 검색 노출이 되면서 저의 고객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저의 글들을 묵묵히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블로그의 댓글이나 메일로 온 문의를 관리를 안 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블로그 덕에 늦게라도 응대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부동산]

제 상태와는 무관하게 제가 없는 곳에 있는 제 이름으로 계약이 된 사무실과 오피스텔, 연습실은 그곳의 세입자들을 맞이해 주면서 이번 달도 월세를 받을 수 있게 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 부동산들이 만약 제가 있어야지만 돌아가는 가게나 식당과 같은 영업소였다면 며칠 동안의 제 상태와 똑같이 죽은 공간이 될 수도 있었는데 제가 없어도 운영이 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이번 달도 때가 되면 소소한 임대료가 제 통장으로 들어올 겁니다. 그리고 이번에 가상화폐에서 적지 않은 손해를 봤는데 잘 생각해 보니 이 부동산들 덕에 가상화폐에서 손해를 그나마 덜 보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부동산에 묶여 있는 보증금들이 만약 부동산의 보증금이 아닌 제 현금으로 있었다면 아마 그 돈들의 상당 부분이 가상화폐 투자에 사용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할 정도의 손해를 봤을 겁니다.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부동산에 묶여 있는 보증금은 가상화폐가 폭락한 지금도 건재합니다!


[스토어팜]

저의 아이템을 팔고 있는 스토어팜 또한 묵묵히 주문을 받아내고 있었습니다. 연휴 동안 제 주인은 멘붕에 빠져 있었는데 이 스토어팜이란 녀석은 주인이 그러건 말건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습니다. 오늘 정신 차리고 주문 내역을 보니 일주인간 제가 먹을 점심값을 벌어 놓았더라고요...


오늘 저녁이 되어서야 다시 원래 하던 대로 글도 쓰고, 들어온 문의에 대해 답변도 하고, 포기할 건 포기하면서 일상으로 거의 다 돌아온 거 같습니다. 저는 잠깐 흔들거렸지만 위와 같이 저를 대신해서 24시간 일하고 있는 저의 'System'들 덕에 그나마 수월하게 본래의 삶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겨우 며칠 흔들거렸다고 그거에 제 삶에 영향이 생겼다면 아직 이 'System'들이 많이 부족한 겁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결국 나를 위해 일해 주는 system이 '그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되어야만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System이 될 거 같습니다.

이전 10화 인터넷 되는 모든 곳이 직장이고, 사무실인 삶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