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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Aug 22. 2018

베트남에서는 왜 파란 펜만 쓸까?

작은 호기심에서 찾아낸 만년필 사용의 역사

호치민에서 생활한 지 이제 한 달 조금 넘었다. 초기에 부동산 계약부터 카드 결제 후 서명하는 것까지 문서에 사인할 일이 많았는데 모두 파란색 펜을 주는 것이다. 심지어 전자제품 배달해 주는 기사님이나 커튼 설치하러 온 업체에서도 내게 파란 펜을 내밀었다. 검은색 펜에 익숙한 나로서는 컬처쇼크가 아닐 수 없었다. 서명은 당연히 검은색 아닌가...?  


마사지샵 쿠폰까지도 본인 서명은 푸른 글씨

이리저리 검색해도 아무리 찾을 수 없었던 나머지 나는 페이스북 Expat 그룹에 순진무구하게 '베트남에서는 왜 파란색 펜만 쓰는 거야?'라고 했다가 불과 몇 시간 사이에 50개가 넘는 댓글 폭격(!)을 받았다. 알고 보니 꽤 많은 나라에서 공문서의 서명은 파란색 펜으로 한다고 했다. 심지어 검은색 펜을 쓰는 한국이 이상한 거라는 얘기까지... (굳이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잖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본을 구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검은색 펜으로 서명을 하고 그 문서를 복사하면 원본과 사본이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파란색 펜으로 서명을 한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듣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해는 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거였다. 내 경험으로는 프린터에서 뽑아낸 문서와 복사기에서 복사한 문서는 눈으로만 봐도 대충 구분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하단에 검은색 펜으로 서명을 한 경우라면 더더욱.


호기심을 참지 못해 여기저기 찾아본 결과 파란색 펜 사용에 대한 여러 가지 가설을 써 둔 블로그를 발견했다.


이 블로그에 나온 유튜브 영상을 보고 나서야 왜 '원본에 있는 파란색 서명'이 중요한 지 알게 됐다.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이 내용을 설명해 준 사람은 법률사무소의 직원인데, 법적인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같은 문서가 여러 부 필요하고 수많은 복사본의 무더기 속에서 매우 쉽게 원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명을 파란색 펜으로 하는 이유


블로그에 나온 이야기 중 학교에서 파란색 펜을 주로 쓴다는 것도 꽤 설득력 있는 가설이었다. 내가 페이스북 그룹에 올린 글에도 어떤 사람은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파란색 펜을 써서 그냥 습관이 됐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연필이나 샤프, 아니면 검은 펜을 주로 쓰지 파란색 펜이나 빨간색 펜은 강조할 때나 쓰는데 이렇게 보면 필기에서도 문화적 차이가 보이는 듯하다.



사랑해요 모나미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만년필이 대중적이지 않고 대신 모나미 펜(!)이 그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파란색으로 글씨 쓰는 걸 거의 보지 못하는 게 아닐까. 궁금해서 모나미 출시의 역사를 찾아보니 당시 만년필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효율적인 필기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펜촉을 갈아 끼우지 않아도 되고, 가격도 저렴한 데다 부드럽게 잘 써지는 펜!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변 환경도 큰 영향을 미친다. 베트남에서는 다들 파란색 펜을 쓰니 마트에도 파란색 펜이 검은색보다 훨씬 많고, 구하기도 쉽다. 어떤 블로거는 베트남 마트에서 검은색 펜을 찾지 못해서 여기저기 한참 찾아다녔다는 얘기도 했다.


이유를 알아내기는 했지만 아직도 파란색 글씨는 영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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