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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Jan 14. 2019

베트남에 적응하기 힘든 이유 3가지

호치민에 살기 좋은 이유 후속작

지난번 '호치민에 살기 좋은 이유'라고 글을 썼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봐주셨고 (다음 포털 만세...) 이제까지 내가 브런치에 쓴 모든 글을 통틀어서 댓글도 가장 많이 달렸다. 중간에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한 부분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글은 일부 수정했고, 다시금 반성했다.


지난번 글은 쉽고 가볍게 써 내려갔는데 이번 글은 좀 더 시간을 들여서 생각해 봤다. 이 주제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처음에는 '호치민'에 적응하기 힘든 이유라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특별히 이 도시라 서가 아니라 '베트남' 또는 일부는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나라에 해당하는 것들이라 제목을 '베트남에서 적응하기 힘든 이유'로 정했다. 이번 글도 역시 철저히 내 기준에 따라, 그간 내가 경험한 걸 바탕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지금이야 이 세 가지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다른 요소가 치고 올라올 수도 있고.



1) 위생 상태

베트남이 유독 그렇다는 건 아니고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도 비슷하겠지만 처음 와서 위생 때문에 많이 놀랐다. 우리는 호치민 정착 첫 달에 소위 말해 '물갈이'를 하느라 꽤 힘들었다. 아주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한동안 음식 먹을 때 신경이 곤두섰다. 나의 청결 스탠다드가 높은 편이 아닌데도 초반에 적응하기 힘들었으니 아이가 있거나 평소에 청결을 많이 신경 쓰는 사람이라면 호치민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 수도 있다.


오토바이로 얼음 배달

더운 날씨 탓에 아이스 음료를 많이 먹었는데 얼음을 냉동차가 아니고 사진처럼 오토바이에 실어서 배달하는 걸 보고 매우 놀랐다. 더운 날씨에 당연히 얼음은 오토바이 위에서 녹아가고... 배달부가 저걸 어깨에 짊어지고 나르는 장면도 봤는데 비닐에서 물이 뚝뚝. 사진은 못 찍었지만 비닐이 아니라 쌀포대 같은 마대자루에 얼음이 들어있는 것도 봤는데 그 마대자루가 1회용이라는 확신은 없다.


반가워요 냉동차

내 남편은 호치민에 출장 왔을 때 로컬 식당에 간 적 있는데 식당 입구에 큰 얼음 (이걸 깨서 음료에 넣어준다.) 이 놓여있었다고 했다. 그것도 찜찜했는데 앉아서 밥 먹는 사이 지나가던 멍멍이가 와서 그 얼음 핥아먹고 있더라는 (....) 나는 그 후로 한동안 아이스 음료를 시키지 못했다. 지금은 아이스 음료를 종종 마시긴 하지만 그 얼음을 절대 아작아작 깨 먹지는 않는다. 가능하면 얼음이 다 녹기 전에 음료를 마시고 혹시 모르니 상비약은 파우치에 항상 들고 다닌다.


마시는 물은 반드시 뚜껑 있는 통에 든, 포장 뜯어지지 않은 물을 마시는 게 좋고 좀 더 신경을 쓴다면 세면대나 샤워기에도 정수 필터를 설치하는 게 좋다. 나는 원래 한국에서도 길거리 음식을 잘 먹지 않아서 여기에서는 아직 시도조차 못했다. 일반적인 식당에서도 가끔 설거지 상태가 좋지 않은 식기를 보는 경우도 있다. (못 보면 그냥 지나가지만 눈에 보이면...)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할 때도 식재료의 신선 상태에 꽤 신경을 써야 한다. 베트남은 아직 콜드체인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아서 배송하는 과정에 재료가 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경험하지 못했지만 주변에서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마트에서 상온 보관해서 파는 계란, 냉장 보관되어 있던 우유와 고기, 빵집에서 파는 빵 등이 사 보니 상한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음식 하기 전에 꼭 재료 상태를 체크하고 잘못된 것 같다면 과감하게 버리는 걸로.


(+) 이 글 초안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편의점에서 파는 삼각김밥을 먹고 심하게 배탈이 나서 꼬박 3일을 고생했다.


식품 위생상태도 그렇지만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생명체(?!)들도 있다. 한국에서는 거의 보지 못하는 쥐가 호로록 뛰어가는 것도 봤고 (라따뚜이인줄) 바퀴벌레도 그렇고... 오히려 모기는 잘 보이지는 않았는데 여기서는 모기 물리는 것 그 자체보다 모기로 인한 뎅기열을 조심해야 한다. 집에서는 가끔 도마뱀이 보이는데 그 친구들은 우리 집 해충들을 맛있게 잡아먹을 테니 세탁실에서 내쫓지 않는 중이다.


#해결방법

식수: 생수 사 먹기

그 외 집 안에서 쓰는 물: 필터 설치

벌레: 방충망 또는 벌레 퇴치제, 모기 기피제 사용

배탈: 익히지 않은 음식 되도록이면 먹지 않기, 손 깨끗이 씻기, 상비약 항상 들고 다니기

식재료 살 때: 가능한 냉장보관된 것 구매, 사용 전 꼼꼼히 확인하기

접종으로 피할 수 있는 것은 미리 예방접종받기


2) 시간관념, 약속


약속시간 1시 반이었는데 당일 1시 반에 약속시간 3시로 미룸 (나는야 오케이 봇)

이건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나의 초반 3개월은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매우 힘들었다. 특히 내가 가구를 맞추면서 온다던 배달부, 기술자들 모두 제시간에 온 적이 거의 없었다. 온다고 해서 시간을 비워뒀는데 당일에 통보해서 미루거나, 말도 없이 안 오거나. 아니면 온다던 시간보다 더 일찍 와서 밖에 있던 나를 허둥지둥하게 한 적도 있다. 처음에는 굉장히 화가 나고 참을 수 없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이제는 뭔가 받아야 할 스케줄이 생기면 넉넉하게 반나절은 그냥 비워두는 편. 이런 일에 하나씩 화내다 보면 내가 화병 나서 살 수가 없다. 그 사람들한테 화를 내봐야 달라지는 것도 없고 스트레스만 받을 테니까.


Timeless Charm...

그 외에도 가전 설치하러 온 사람이 제 때 안 온다거나(나는 4시간까지 기다려봤다), 집수리하러 온 사람이 연락 없이 잠수를 탄다거나 하는 일은 여기 사는 사람들이 무수히 겪는 일들이다. 메이드가 시간 약속 안 지킨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고, 내 남편은 회사에서 행사할 때 6시에 시작한다고 해서 5시 반에 갔더니 6시까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얘기를 한다. 그 외에도 베트남 직원의 결혼식에 갔는데 초청장에 쓰인 시간보다 1시간 뒤에서야 시작했다, 인테리어 공사가 약속한 마감일까지 전혀 마무리되지 않았다 등등. (베트남에서 인테리어 하는 사람은 정말 존경받을 만하다. 몸에서 사리 나올지도)


버스 도착하기 4분 38초 전

한국에서는 대중교통 도착 예정시간이 몇 분 몇 초단위로 나오고, 택배는 몇 시쯤 도착 예정이라고 하면 칼같이 도착한다. (심지어 택배기사님 위치를 실시간 트래킹 할 수 있음) 한국에서 내 하루는 분 단위로 쪼개서 빡빡하게 차 있었던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내 계획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발을 동동 구르고 불안해했다. 그 삶이 아주 건강했던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간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 아닌가. 약속한 사람이 제 때 안 나타나면 반은 체념, 반은 분노+불안한 마음이 든다.


사실 나야 여기에서 출퇴근을 하는 입장이 아니라서 시간을 여유 있게 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화가 날 수밖에 없다.


#해결방법

가능한 텍스트(문자, 이메일, 서면)로 커뮤니케이션

약속시간 기준 앞뒤로 1시간 정도는 여유 있게 생각

그 후에는 마인드 컨트롤 (....)


3) 원칙은 있다가도 없고, 전문가는 어디에


이건 내가 느끼는 걸 100% 설명하기 힘든 내용 중 하나다. 뭐랄까... 매뉴얼 혹은 원칙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또 어떨 때는 엄청나게 엄격한 룰을 적용한다. 여기서 내가 외국인이라 더 그렇게 느끼는 걸까.


내가 직접 경험한 건 아니지만 오토바이나 차를 운전할 때 속도위반/신호위반으로 걸리면 벌금을 내야 한다. 그때 운전자가 외국인이면 단속에 더 잘 걸리고, 원래 책정된 것보다 더 많은 벌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몇몇 분들은 자가운전에 드는 비용에 벌금(!)을 어느 정도 포함하기도 한다. 그리고 베트남에서는 반드시 거주 신고를 해야 하는데 그때 돈을 받는 경우도 있다. 내가 들은 바로는 거주 신고에 (특히 세입자는)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고 알고 있는데...


이사할 때마다 반출증/반입증은 필수

고무줄 같은 원칙과 다르게 반대로 여기 와서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이사 나가거나 들어올 때 서류를 써야 한다는 거였다. (저 반출증 사진들이 내가 이사를 몇 번 했는지 보여준다... 말잇못) 저 서류가 없으면 지하주차장에서 화물 엘리베이터도 못 쓰고 이사 인부들이 들락날락하기도 힘들다. 원칙대로라면 집주인의 서명이 필요하지만 세입자가 작성하는 것 정도는 대략 봐주는 눈치였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사하기 전에 관리사무소에 통보하기는 하는데 정확히 저 문서, 종이가 있어야만 한다는 건 좀 놀라운 포인트였다. 이걸 모르고 이사 날짜 잡았다가 당일에 급히 부랴부랴 서류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나는 옷장이나 책장 같은 큰 가구를 받을 때도 관리실에서 저 서류를 요구했는데 약속 날짜 계속 바꾸는 바람에... (혈압)


반출증 말고도 거주 신고, 외화 송금, 주택 구매 등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일들에 생각보다 많은 규칙이 촘촘하게 드리워져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특히 개인 사업하는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복잡한 법률 때문에 신경 쓸 것이 꽤 많다고 한다.


그 외에도 하나하나 언급하기는 힘들지만 지내다 보면 이 도시 전체가 젊고 패기 넘치지는 대신 아직 경험은 없는 사회초년생을 보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도시의 생명력과 에너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것과 반대로 디테일은 아직 부족하다고나 해야 할까. 이제까지 내 경험담에서 개인적으로 느낀 부분이지, 100% 이렇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회사에서도 오랜 기간 근속한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전문가"를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 기사를 찾아보니 내 느낌이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인 것 같기도...

베트남은 세계에서 15번째로 많은 9200만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중 63%가 30세 이하인 미래 발전형 인구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건비 면에서도 주변 인접국가와 일반 생산직 초임을 비교했을 때 말레이시아, 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 비해서도 저렴하다. 하지만 여전히 베트남에 진출하는 투자기업들의 가장 큰 애로 중 하나는 숙련된 전문인력이 없다는 것.


베트남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400달러 정도로 한국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 보니 많은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생산 거점을 옮기면 훨씬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요. 하지만 이 역시 한 꺼풀 들춰보면 정확한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조언도 나왔습니다. 한창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베트남 고용시장은 완전고용에 가깝다고 합니다. 자연실업률에 근접한 수치를 자랑하고 있어 막상 쓸 만한 인력을 채용하기가 은근히 쉽지 않다는 경험담입니다. 결국 괜찮은 인력을 뽑으려면 웃돈을 주고라도 모셔와야 하는데, 이렇게 모셔온 인력은 옆 회사에서 조금 더 높은 임금을 제시하면 곧바로 말을 갈아타는 게 일상이랍니다.


#해결방법

일단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지 선례를 꼼꼼하게 잘 찾아본다

정보는 최대한 많이 수집

그 이후에 발생하는 돌발상황에는 마인드 컨트롤 (....)



나는 지금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고 살지만 처음에는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지금이야 안정을 찾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포인트로 호치민 생활을 힘들어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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