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DE FAN FAN
나이가 들면서 취향이 바뀌나 보다. 분명 코로나 전에도 보았던 카페였는데 당시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카페였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다르게 느껴졌다. 직접 검색하고 다시 발견한 가게. 언제부터인가 나는 엔틱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카페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쇼와 시대의 일본 느낌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카페인 과민증으로 커피를 마시면 마치 술을 마신 것처럼 숨이 가빠질 때도 있고, 심장이 매우 빠르게 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그런지 커피를 자주 마시지 못하는 만큼 더욱더 카페의 분위기와 커피 향을 매우 좋아한다. 다만, 카페는 조용하면서도 인테리어나 분위기가 내 취향에 맞는 카페여야 한다. 또, 프랜 차이즈보다는 나이 든 사장님이 운영하고 단골손님이 많은 작은 가게를 더 선호한다. 그곳에서 오래 살아남았다는 증거니까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싫어하는 나는 최근 들어 더욱 고요하고 한가로운 곳을 찾게 되었다. 코로나가 한창 유행했을 때는 오히려 나는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답답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을 핑곗거리가 생겼으니 말이다. 코로나가 끝난 요즘은 한국에서는 주말에 조용하고 평온한 카페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다들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러 카페를 방문하는 것 같다(나 역시도 친구와 만나면 무조건 카페를 가긴 한다). 조용하게 커피 향을 즐기며 책을 읽기에는 어려운 곳이 많다.
그래서 나는 일본의 카페를 좋아한다. 우리나라처럼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1일 3 아메리카노를 찾지 않는 문화라서 그런지. 조용한 카페를 바로 찾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일본 소도시는 카페에서 조용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사장님의 취향이 듬뿍 담긴 개성과 특색이 돋보이는 카페를 찾는 것도 나에게는 큰 즐거움이다.
"cafe de fan fan"의 뜻을 정확히 모르겠지만, 인터넷 검색 결과로는 1967년 창업되어 "커피를 마시면서 모두와 소통할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담아 가게를 오픈했다고 한다.
가게에 들어서면 마치 타임슬립이라도 된 것처럼 오래된 가구들과 한때는 담배연기로 가득 차있었을 약간의 몽환적인 분위기 그리고 지금은 실내에서 금연이지만, 담배냄새가 흠뻑 새겨진 소파들이 자리해 있다. 흡연실은 실외에 따로 마련되어 있고 구글리뷰에도 흡연장조차 평이 좋은 것 같았다.
카페 손님의 연령대는 20대부터 70대까지(추측이지만) 다양하고, 단골들도 많은 것 같았다. 런치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에 방문해서 아쉬움이 남지만, 점심 식사 대신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카운터에서 주문을 해야 하는 것과 달리, 이곳에서는 대학생처럼 보이기도 한 젊은 남자가 테이블로 와서 주문을 받았다. 가게 주인 분들은 모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데, 이 학생은 가게 분위기와는 또 다른 인사성 밝고 예의 바른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치즈케이크 세트를 주문하자, 커피와 치즈케이크와 함께 크림, 설탕이 제공되었다. 여러 차례 일본에 와봤지만 이번 여행에서 여러 가지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자 마음먹었다 보니 보이지 않던 게 많이 보이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커피를 시키면 예외 없이 크림과 설탕이 항상 제공된다. 손님의 선호도를 존중해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일종의 문화인 것 같기도 했다. 앙증맞은 카페 로고가 새겨진 크림과 설탕그릇을 보니 괜히 커피에 크림을 넣어보기도 했다.
1시간 정도 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소파에 기대면 소파 어딘가에 깊숙이 스며든 담배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흡연실이 실외에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사진을 다시 보니 흡연석이라고 쓰여있는 것 같았다. 다만, 모두 담배를 피우지 않았어서 긴가민가 하다.
커피를 마시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사장님의 여행 추억이 담긴 소품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았다. 특히, 내 신혼여행으로 스페인을 가본 적이 있어 기억하는 스페인 성당 사진을 보니 새록새록 그때의 추억이 기억났다. 사진 옆의 조명을 보니 가우디 건물도 생각나고, 사장님이랑 내가 취향이 유사한 것 같아 흥미로웠다.
카페에는 세월이 느껴지는 다양한 소품들이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오래된 포스터들은 과거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장식품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아 호기심도 생겼다. 이런 다양한 소품들과 세월이 어울려 카페의 분위기를 더욱더 개성 있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 같다.
잠깐 점심만 먹고 가는 손님들도 많았고, 나처럼 오랜 시간 커피를 주문하고 여유를 즐기는 손님들도 많았다. 카페 안에는 재즈풍 음악이 흘러나오고, 가끔은 텔레비전 소리도 조용하게 들렸다. 다음에 방문하게 되면 나폴리탄 파스타나 오므라이스를 런치로 먹어야지 생각했다. 런치도 가성비 좋고 맛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인스타그램으로 검색해 보니 당분간 카페는 휴무가 지속될 예정이라는 공지가 있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다음에 다시 여행을 가게 된다면 가게 운영이 재개되어 런치를 즐길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