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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통. 은 아무도 모른다.

예수님만 아신다. 온전히.

by 결명자차

남들은 쉽게 말한다.

그냥.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고. 계속 시도하라고.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은 나는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하곤 한다.


아침 7시에 일어나면

밤 12시 넘어서까지

늘 풀가동.이다.


하루가 10시간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빨래. 설거지. 청소

3종 세트는 기본이고


아이의 픽업. 과

센터 라이딩. 과


간식과

샤워시킴과


저녁을 하고


일주일에 서너 번은.

남편회사로 퇴근픽업. 을 간다.


이 엄청난 하루의 사이클

속에서

틈틈이 장을 보고

성경을 읽고

책을 읽고


내 삶을 버텨내고

남기려고

기록도 한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학교 시간표에 맞춰서

치료센터 시간표를

맞춰야 하고


아이의 예민도를 늘 체크해서

이번엔

품어줄 타이밍인지

혼내야 할 타이밍인지

빠르게 판단해서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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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 에 대한 기대치가 아주 낮다.

늘 평안하지만은 않았던

그때. 가 도리어 무탈한 거였구나. 를

알았다.


그때란.

아이의 장애를 의심하기 전.

의 모든 순간.

을 말한다.


그 이후.

아이가 아프다는 게 공식화되기 훨씬 전부터.

아이의 장애를 의심하며. 불안해했던 그때부터.

늘 나는 한순간도

온전한 마음 편함. 을 기대치 않고 산다.


이제. 좀 편안한 저녁이라

좀 쉬어볼까. 자리에 누워도

아이는. 끊임없이

나를 찾는다.


갑자기 핀트가 나가

울고 떼를 쓴다.


유치원 시절.

아이가 갑자기 울면

사람들은

갑자기 아이가.

왜 우는 거냐고

나에게 묻곤 했다.


그런데

그때도

지금도


나는 모른다.


이유를.


그간의 경험치로

추론하는 것일 뿐.

말을 하지 않는 아이의

마음. 을 백 프로 읽어낼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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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저녁의 나는,

방전이 되어

까무러쳤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아이는

짜증을 내며

나를 찾는다.


어떤 기운으로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없는 기운을 짜내서.

귤을 꺼내주고

다시 누웠다.


갑자기. 짜증. 을 낸다.


한도초과.


정말 무섭게 혼내야 할 지점.이다.


많은 말. 대신.

강하게 눈을 보고

너가 울면. 엄마도 힘드니.

기분 나아지면. 나오라고.

말하고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설움이 복받쳐서

짧게 울었댔다.


매일

야근을 하는

남편. 이

절실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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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사람들은 모른다.


그들에게 위로는

받지 못한다.


다만.


인생 속 찰나의 유머와 기쁨. 을

대부분의 고통스러운 일상의 약으로

써가며. 최선을 다할 뿐이다.


어차피.

이 세상에선.

나는 이방인.이고

소외된 자. 다


번아웃. 이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그저

쉬고 싶다.


천국에서는

오로지

쉬고 싶다.


그때까진.

부르실 때까진.

최선을 다할 거다.


이건

내 욕심. 이 아닌

내 명분이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명분.


요한계시록 21장 4절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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