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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멍 때리는 게 제일 좋아.

by 결명자차


대학교 2학년의 싱그러웠던 내가 있다.

1학년의 어설픈 대학생활이 익숙해져 가고. 학교생활은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겨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배스킨라빈스 31.

그때만 해도 매장 유리에 아르바이트구함. 이 메모로 많이 붙어있었고.

용기를 내서 매장으로 들어가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했고.

집으로 바로 연락이 왔다.


첫 아르바이트를 하고 받은 통장을 들고 참 기뻤던 것 같고.

포카리스웨트 배경음악이 귀에 들려왔던 것도 같고,^^

집까지 가는 40분 거리를 걷는데도 조금도 힘이 들지 않았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서투른 눈치나, 어설픈 낯가림도

어리다는 이유로, 모두 용서가 되던

시절.


나는 그렇게 반짝반짝거렸다.


그리고 무려. 25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나이 들었고.

삭신이 쑤시고.

아침에 일어나는 게 제일 힘들고

혼자 있는 시간이 곧 충전시간인,

하지만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그리고 더 나이 들기 전, 존재감이 사라질까 두려워, 파트타임이라도 하고 싶은

곧 반백년을 앞둔 중년이 되었다.


매일의 일과는,

총 4번의 모닝콜이 5분 간격으로 울리면. 제일 힘든 아침에 일어나기. 를 해서 아이를 깨우고. 준비를 시키고. 스쿨버스를 태운다.

아이는 나를 닮아. 아침에 일어나는 게 제일 힘든 모양이다.

짜증. 또 짜증. 을 내고

짜증 나. 내지는 가기 싫어를 외치며 뛰어나간다. 출근하는 남편과 짧은 인사를 하고,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벤치에서 아이는 앉고 나는 그 앞에 쭈그려 앉아. 서로를 기댄다.

그리고. 나는 그 짧은 5분의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기도를 한다.

오늘 하루도. 우리 가족을 지켜달라고.


아이를 보내고,

혼자만의 시간이다.

30분간 누워있는다.

소파에.

기운이 없기 때문이다.


20대 아들이 두 명인. 동갑친구가 제일 부러운 시간이다.


멍을 때리다가.

주섬주섬 비타민과 올리브오일을 한 스푼 넘긴다.

비몽사몽.


친구가 사다준 알커피를 냉수에 타서

원샷을 한다.


배가 고프면 김이나. 저녁에 남은 반찬에 밥을 대충 먹기도 한다.


청소를 시작한다.

매일 해도. 손걸레질인데도

먼지는 늘 많고.


빨래도 세 번은. 매일 돌리는 듯


아~ 제일 싫은 설거지는

생각하기 전에. 빠르게 시작해 버린다.

그게 제일 현명하다.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의 나를 불태운다.


그리곤. 장을 보거나.

미니멀리즘 유튜브를 본다.

(미니멀을 꿈꾸는 중)


그러고 보면.

아이가 올. 시간.


간식을 챙기고.

이름 쓰기. 숫자 쓰기도 하고

유튜브도 보여주고

입모양 보여주며. 혼자 열심히 떠들고

저녁을 준비하고 먹고

씻기고 남편을 기다리고.

조금 떠들다 셋이 잠드는 일상.


요새 짜증이 늘고 고집이 세진 아이에겐

칭찬과 단호함의 완급조절로

기싸움 중이라,

신경 더듬이가 90프로 아이에게 가 있는 상태다.


일은 현실적 불가상태다.

주말알바도 아이가 눈에 밟혀 포기했다.


때론. 나는 어디 있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외향적이고, 돌아다녀야 힘이 나는,

나는 때론, 사방이 막힌 것 같아,

불안공황이 찾아오기도 한다.


내가 똑바로 서지 않으면

우리 가족은 끝이라는 생각.

그게 그나마 나를 버티게 해주고 있다는 생각.

아마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성실한 남편도 그러하리라.


참 늘그막에 아이를 낳았고

기쁨도 최대치로

역경도 최대치로

승화도 최대치로

겪는 중이다.


체력도

마음도

점점 연약해 간다.


그때마다.

나를 지탱해 주는 건.

내 아이다.


사람들에겐

중년부부가 자폐아이를 키우며

안쓰럽다.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속에도

유머는 있고.

남다른 철학도 만들어져 가는 중이다.


어쩌면 신은,

사람들을 통해

내게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너. 정말 대단하다고.


지금. 더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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