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헤르만 헤세 저)
골드문트는 호두나무의 꽃잎이 은은하게 연둣빛으로 피어나던 어느 봄날, 아버지 손에 이끌려 수도원으로 온다. 골드문트를 처음 본 사람들은 그 아이의 타고난 사랑스러움에 경탄한다. 살다 보면 가끔 이런 류의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특유의 천진난만함과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어디서든 스스로 반짝거리고 있는 것을 본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보다 겨우 몇 살 많은 학생이지만 희랍어에 능통하고 예지력이 뛰어나 선생의 위치에 있었다. 그는 골드문트를 보자마자 황금의 새처럼 너무나 멋진 소년이 자신에게 날아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에게 이끌리고 골드문트도 나르치스에게 매료된다. 골드문트는 나르치스를 자신이 안간힘을 다해 다달아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수도사의 길을 걷기로 한 골드문트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정해 놓은 길을 가기 위해 수도원에 왔고 그곳에서 자신의 일생을 보낼 생각이었다. 반면 나르치스는 골드문트를 바라보며 서로가 너무나 상반된 존재임을 알아차린다. 자신이 사변가요 분석가라면 골드문트는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영혼을 가진 몽상가라는 사실을. 골드문트와 나르치스가 가까워지자 주변 사람들은 갖가지 소문을 만들어낸다. 고결하고 성스러운 지성과 눈부신 감성의 결합은 주변 사람들을 모두 질투에 휩싸이게 할 만큼 치명적이었다.
아치(Arch) : 두 기둥에 의해 만들어지는 완벽한 구조
수도원의 정문은 두 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아치형이었다. 골드문트는 그 문을 통과해서 수도원으로 들어왔다. 곡선을 이루는 아치는 완전한 신의 형상처럼 하늘과 인간의 사이를 아우르고 있고 그 끝에는 두 개의 기둥이 이어져 있었다. 그 두 기둥은 동등한 모습이지만 아치를 사이에 두고 결코 가까이 갈 수 없는 운명처럼 보인다. 두 개의 기둥, 그것은 어쩌면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아녔을까? 헤르만 헤세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이 두 주인공을 통해 두 세상을 보여준다. 그 두 세상은 빛과 어두움, 종교적 영역과 세속의 영역, 정신과 예술 , 생명과 죽음, 경견과 쾌락, 기쁨과 고통처럼 나뉘어 있다. 빛의 세계만 배워 온 골드문트에게 어두움은 낯선 것이었다. 경건의 세계 속에 속해 있다고 믿고 살아온 골드문트에게 세속의 세계는 자신이 경험해서는 안 되는 금지된 공간이었다. 그 두 세계는 어떻게 존재하는 걸까? 저자는 골드문트와 나르치스가 너무나 닮았고 또 완전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저 아치를 떠받들고 있는 두 개의 기둥처럼 늘 함께 서 있지만 가깝지 않은 것, 혼자서는 결코 온전해질 수 없는 절반의 의미였을까?
나르치스는 자신을 동경하는 골드문트에게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잊힌 어머니, 가족을 버리고 신앙을 버리고 멀리 떠나버린 어머니, 아버지에 의해 지워진 어머니는 잊어버린 자신의 모습이었다. 순간 골드문트는 머리가 아찔해지는 고통을 느꼈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세계가 균열되는 순간이었고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낯선 세상에 홀로 던져진 순간이었다.
"너희들의 고향이 대지라면 우리네의 고향은 이념이야. 너희들이 감각의 세계에 익사할 위험이 있다면 우리는 진공 상태의 대기에서 질식할 위험에 처해 있지. 너는 예술가고 나는 사상가야. 네가 어머니의 품에 잠들어 있다면 나는 황야에서 깨어있는 셈이지. 나에겐 태양이 비치지만 너에겐 달과 별이 비치고 네가 소녀를 그리워한다면 나는 소년을 그리워해......"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중에서, 헤르만 헤서 저)
회랑 : 전이의 공간
잃어버린 자아, 지워진 자신의 모습이 어머니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골드문트는 마음속 깊이 절망을 느끼고 완전히 비참한 상태가 된다. 그는 온몸과 마음이 마비되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회랑으로 뛰어나간다.
맑은 하늘과 햇살, 달콤한 장미 향기가 느껴지는 회랑, 바깥세상의 공기가 골드문트의 피부에 와 닿아 그의 감각을 깨우는 그곳에서 골드문트는 의식을 잃는다. 회랑은 수도원 건물에서 바깥뜰로 나가는 경계의 공간이다. 자신을 규정해 주었던 공간,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한정했던 내부 공간에서,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는 바깥세상을 만나기 바로 직전의 장소이다. 만약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 살던 사람이, 어느 날 완전히 잊어버렸던 자신의 과거를 깨닫게 되는데, 그것이 자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이라면 어떤 심정일까? 아마 회랑은 방황과 갈등의 장소일지도 모른다. 한 번은 정신을 잃고 쓰러질 수밖에 없는 장소 또는 시간. 어쩌면 누구나 인생의 한 번쯤은 지나가야 하는 공간이 아닐까? 지금까지의 내가 누구였는지 갑자기 낯설어지는 시간, 어느 날 너무나 다른 세상이 내 삶 깊숙이 들어와 버리는 순간, 그런 혼돈의 시간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고 또 있어야만 한다. 지금의 나, 그리고 과거의 나, 잊힌 나에 대한 질문의 시간이다. 회랑에 나가면 바람의 느껴질 것이다. 내리쬐는 햇살은 시시각각 변화하며 다채롭게 다가올 것이다. 어디선가 풍겨오는 장미의 달콤함이 코끝을 스쳐가고 회랑에 나오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비바람이 몰아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회랑으로 나가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깨닫게 된다. 머물 수 있을지, 떠나야만 하는지를.
조각상의 얼굴 : 세상을 담은 신비
수도원을 떠난 골드문트는 그야말로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간다. 수많은 여자를 만나고 탐닉하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다. 간통, 살인, 질병, 굶주림, 외로움, 방탕, 불안, 죽음, 비참, 위협 등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경험한다. 그러면서 그가 발견한 것은 사람의 얼굴에 그려지는 극도의 고통과 찬란한 환희가 서로 맞닿아 있다는 것이었다. 골드문트는 니콜라스라는 조각가가 만든 마리아 조각상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는데 그 얼굴에서 너무나 큰 고통과 동시에 너무나 그윽한 달콤함이 공존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골드문트는 그 성스러운 얼굴에서 아버지로부터 철저히 부정당한 어머니의 세속적인 얼굴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 사건을 계기로 골드문트는 자신이 세상을 떠돌며 경험한 감정, 직접 겪었던 세상의 고통과 환희를 조각상에 담아내고자 했다. 거기에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인간의 본성과 그 안에 있는 고통과 기쁨, 죽음을 극복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있었다. 골드문트는 그런 자신을 예술로 표현하기 위해 몸을 불사르다가도 그것에 회의를 느껴 또 사랑을 찾아 떠나고 사랑을 함과 동시에 그 덧없음에 치를 떨기도 한다. 안정된 생활을 거부하고 늘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던 골드문트는 불의의 사고로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골드문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감정의 끝자락을 따라 몸을 움직인다. 이제 더 이상 여한이 없을 때까지 지독하게 삶을 살아낸다. 골드문트는 고백했다. 그가 사랑하고 찾고자 했던 것은 신비였다고. 그가 깨달은 신비는 삶이 탄생과 죽음, 자비와 공포, 생명과 소멸과 같이 두 개의 세상을 동시에 담고 있었고 그것을 겪으면서 신이 창조가 세계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새롭게 재창조되는 것을 바라보았다.
나르치스는 사상가로, 골드문트는 몽상가로 서로 다른 삶을 살았지만 그 둘의 끝은 맞닿아 있었다. 나르치스는 수도원 안에서 세속적인 것들을 제거하고 사고의 끊임없는 추상의 과정을 통해 신에게 가까이 가고자 했다. 그것은 모든 감각적인 것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반면 골드문트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덧없는 것들에 자신을 바쳤다. 그는 타락한 세상을 새롭게 만나는 것으로 신에게 다가갔다. 나르치스는 죽음을 앞둔 골드문트를 품에 안고 과연 신의 관점에서 누구의 삶이 더 낫겠냐고 반문한다. 그는 잘 가꿔놓은 사상의 정원에서 죄를 모르고 거니는 삶보다 세상의 거친 흐름과 혼돈 속에 자신을 던져 해진 신발을 신고 숲과 시골길을 누비고 다니며 죄를 짓기도 하고 그 대가를 감수하기도 하는 삶이 훨씬 어렵고도 위대한 삶이라고 느꼈다. 그 둘은 서로가 다르다는 걸 알았지만 서로를 사랑했고, 서로를 닮고 싶었지만 자신의 길을 갔다. 그 길은 둘 다 완전하지 못했다. 사상가는 너무나 외로운 길이었고 몽상가의 길은 너무나 처절하고 지독했다. 하지만 그 두 개의 기둥은 함께 아름다운 아치(Arch)를 만들어 내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하늘에 아치를 그려보며 그것이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의 품처럼 온전하고 안전하며 부드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나르치스의 품에 안긴 골드문트는 그 아치문을 지나 죽음이 두렵지 않은 곳으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