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어렵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by 김보아



마음을 지킨다는 것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은 이 글의 중심인물인 "선생님"과 선생님의 친구인 "K", 그리고 하숙집 주인의 딸, "아가씨"와의 삼각관계를 그 배경으로 한다. 이 소설의 화자인 선생님은 대학시절 아가씨의 집에 하숙을 하게 되고 형편이 곤란해진 친구 K를 자신의 방의 전실에 머물게 배려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선생님은 아가씨의 일거수일투족에 자신의 시선이 머물게 되고 그 시선에 끝에 K가 걸려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외출하고 방에 들어올 때 장지문 너머에서 들리는 아가씨와 K의 웃음소리, 우연히 밖에서 같이 들어오는 두 사람의 모습은 선생님의 이성적인 사고, 합리적인 판단을 무력화시켰다.


선생님은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숙부 손에 자랐다. 믿고 의지했던 숙부는 선생님의 재산을 탐했고 그로 인해 선생님은, 인간은 믿을 만한 존재가 못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에 타고난 악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여차하는 순간에 악인으로 돌변한다고 생각했다. 선과 악이 그리 멀지 않음을, 누구나 순식간에 선에서 악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확신을 생겼다. 그러니 언제 변할지 모르는 누군가를 신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믿었던 것이다. 온전히 내 것일 수 있는 건 자신의 마음이니 유일하게 지킬 수 있는 것도 자신의 마음뿐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지키는 것은 곧 선을 지키는 것이었다.



마음은 선과 악, 그 사이에 있을까?


백 년 전에 쓰인 이 소설 속 하숙집의 모습은 그 시절 일본의 주거공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일본의 전통 주거공간은 중세의 무가에 의해 형성되기 시작해 근세 초기까지의 상류 주거양식으로 무가의 엄격한 위계질서, 종적 관계가 공간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무엇보다 엄격한 접객문화가 주거공간에 그대로 반영되어서 손님을 위한 접대 공간이나 각종 행사, 제례의식 등이 이루어지는 의례공간이 주택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채광이 좋고 주택의 중심이 되는 위치에는 오히려 사용 빈도수가 적은 사회적 공간이 자리 잡았고, 가족들은 그 보다는 작고 빛도 잘 들지 않는 공간에서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 불합리한 형태였다. 소설 속 하숙집 주인아주머니는 그 당시 대학생이었던 선생님을 그 집의 가장 좋은 방에 머물게 한다. 이는 아마도 접객 공간을 중요시했던 일본의 전통 주거공간의 잔재가 아닐까 싶다. 선생님의 방에는 도코노마까지 있었는데 도코노마는 일본 주거의 상징이자 중심으로, 보통 접대나 사교공간에 위치했다.


도코노마, 다다미, 장지문, 출처 : rukawa111.tistory.com


현관을 지나 들어서면 거실이 있었고 거실과 면한 다다미 6장짜리 방이 아가씨의 방이었다. 아가씨 방에서 툇마루를 직각으로 돌아가면 다다미 4장의 전실이 있고 거기에 선생님의 친구 K가 머물렀고, 그 안쪽에 다다미 6장이 선생님의 방이었다. 이들이 머물렀던 공간은 복도와 툇마루로 이어지기는 했지만 장지문을 걷어내면 마치 하나의 커다란 공간과도 같은 구조였다. 끝이 없이 이어지는 듯한 공간 속에 나뉘고 또다시 연결이 반복되는 단위 공간은, 장지문으로 구분은 되지만 고정된 벽이 없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연결된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는 방향을 알 수 없는 미로와도 같은 구조였다. 장지문에 덧발라진 창호지는 저 건너편에 존재하는, 보일 듯 보이지 않고 들릴 듯 들리지 않는 비밀스러우면서 희미한 아가씨의 마음처럼 드러날 듯 숨겨진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었다. 아가씨에 대한 선생님의 사랑과 질투는 선한 마음을 지키려 했던 그의 자신감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보여준다. 언제나 그렇듯 사랑 앞에서는 감정이 늘 저만치 이성을 앞서간다. 이성이 감정을 따라가고자 애를 쓰지만 감정이 이성을 무력화시키면 이성은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기능을 잃는 법이다.


"일본 주택의 특성은 간으로 분할되어 있으나 모두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음과 확장 분화와 연결을 공간의 기본 개념으로 하는데 전체 공간이라는 틀 속에서 공간을 나누어 구획한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공간을 만들어 가면서 완성된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공간으로 확장하면서 이루어졌다." (동아시아 전통 인테리어 장식과 미 중에서, 박선희 지음)


사람의 일이란 것이 마치 작은 일 하나하나는 계획하고 의도함으로 이루어 가는 것 같으나 막상 뒤돌아 보면 그 전체 그림은 전혀 예기치 못한 모습으로 그려지듯 이들의 삶이 그랬다. 대학생 시절, 선생님은 형편이 어려운 친구 K를 돕고 싶었다. 그래서 스스로 K를 자신의 하숙집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그리도 꼿꼿하던 K의 입에서 아가씨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 흘러나오는 순간, 너무나도 간단히 선생님은 악인(?)이 되었다. 자신이 그리도 증오하고 환멸 했던 숙부와 다를 것이 없는 인간이 된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주인아주머니께 아가씨를 달라고 해야 한다는 조급함과 불안함은 장지문 너머 들리는 K와 아가씨의 일상적인 대화에도 병적인 반응을 하게 된다. 오직 어떻게 하면 K를 물러나게 할 것인가?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찾아내고야 만다. K가 일생 지켜왔던 신념을 건드림으로 그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다.




K의 마음은 장지문을 닮았다


선생님의 친구 K는 승녀의 차남으로 태어나 입양이 되었다. 그러나 양부모님이 뜻하는 바의 삶을 살기보다는 자신의 소신에 따라 살고자 그 뜻을 굽히지 않게 되고 결국 부모를 떠나 친구인 선생님의 신세를 지게 된다. 선생님은 너무나 외골수인 친구 K를 세상에 맞닿게 하려고 노력했다. K에게 있어서 정진하는 삶은 절제와 금욕의 삶이었고 자신의 전부와도 같은 신념이었다. 그에 맞지 않는 삶은 향상심이 없는 것으로 가치가 없다고 믿었다. 그런 K가 '아가씨'라는 함정에 빠질 줄 자기 자신도 그리고 그를 하숙집으로 끌어들인 선생님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K의 마음은 장지문의 창살처럼 곧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마음도 장지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살랑이고 어른거리며 다가오는 움직임과 달콤한 소리를 막아낼 힘은 없었다. 그건 전혀 예상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은 마음의 변화였고 이미 그의 마음의 빗장은 풀려버렸다.


"정신적으로 향상심이 없는 자는 바보야" 아가씨를 향한 마음을 털어놓는 K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삶의 정진, 절제와 관조가 삶의 이유였던 K에게 아가씨를 향한 사랑은 그의 신념을 꺾는 바보 놀음이라고 확인시킨 것이다. 자신이 늘 버릇처럼 내뱉던 생각이 친구의 입을 통해 날카로운 칼이 되어 자신의 가슴을 도려내는 순간이었다. 그것이 K로 하여금 죽음을 각오하게 만들었다는 걸 선생님은 짐작조차 했을까?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던 어느 날, 선생님 방을 향해 열리는 장지문을 살짝 열어 두고 K는 밤 사이 저 세상을 가버렸다. K로 하여금 세상을 등지게 만들건 무엇이었을까? 과거를 부정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 때문이었을까? 현재를 부정하고 있는 자신의 신념 때문이었을까?


밖은 매끈하고 무심해 보이지만 내부는 수많은 선이 선명히 지나가는 장지문, 장지문은 절제되면서도 복잡한 K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 같다. ©boah




선생님은 숙부를 통해 세상을 불신하게 되었고 K의 죽음으로 자신마저 불신하게 되었다. 장지문을 모두 열면 한눈에 드러나는 그들의 공간처럼, K의 죽음으로 감정의 장막이 모두 거둬지자 선생님은 훤히 드러난 자신의 마음을 보게 되었다. 아무것도 믿을 것이 없어진 세상에, 남겨진 "선"은 없었다. 이 세상에 "악"만 존재한다고 믿었다면 그는 어디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했을까? K의 죽음에 평생 자책하던 선생님은 아내가 된 아가씨에게도 그 마음의 짐을 털어놓지 못하고 결국은 죽음으로 자신을 단죄하고 말았다.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마음이 휘젓고 간 삶의 궤적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그 마음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자신의 것이라면 왜 그 마음과 평생 싸우며 지내야 하는 걸까? 왜 그 마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이렇게 삶은 평생 마음과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K는 마음과의 싸움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고 선생님은 마음에게 패배한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내가 이겨도, 마음이 이겨도 결국 승자는 없다. 살아가면서 어쩌면 가장 어려운 숙제, 그것은 마음의 자리를 찾는 것일지 모른다.


“ 마음을 어디에 둘 것인가. 적의 움직임에 두면 적의 움직임에 마음을 빼앗길 것이요, 적의 칼에 두면 칼에 마음을 빼앗길 것이요… 남의 자세에 마음을 두면 남의 자세에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이렇듯 마음을 둘 데가 없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중에서, "나쓰메 소세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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