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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에 글쓰다 Feb 01. 2024

마을 방송

심방

새해 심방을 마쳤다. 가정마다 주시는 말씀을 나누고, 축복의 마음을 담아 기도드린다. 마지막 가정을 심방을 할 때의 일이다. 그날은 권사님 남편이 거실에 나와 계셨다. 지난 8년간 심방가도 방에만 계시고 TV소리만 들렸었다. 한 번도 거실에서 뵌 적이 없는데 이게 웬일? 너무 감사하고 기뻤다. 권사님 평생소원이 남편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이었는데 어르신이 심혈관 시술을 받고 나서 달라지신 것이다.


수술하실 때마다 찾아뵙곤 했다. 농촌에서는 오래 만나야 마음을 연다. 한평생 한 곳에서 사시는 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남편분들이 마음 열어 주시는 게 쉽지 않은데, 7년 만에 한분, 8년 만에 그렇게 또 한분이 마음을 열어 주셨다. 우리 부부에게 잘해주시는 것보다 신앙을 갖고 단단해지는 모습을 볼 때 더 기쁘기 시작했다. 한 뼘 자랐다.

 

남편이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이장님 방송이 시작되었다. 요즘은 집집마다 마을 방송을 들을 수 있게 설치 해 놓았다.


”아, 아 동네에 박 00 어르신이 지금 집에 들어오지 않아 찾고 있사오니 찾는데 동참해 주시길 바랍니다. “


”아이코 김집사님 남편인데? “


심방 마치고 찾아가 보니 경찰이 와 있었다. 나는 걱정이 앞섰다. 겨울철에는 농사일이 없고 몸이 아프신 분들은 술로 하루하루를 보낼 때가 많은데 길거리에서 돌아가신 건가? 어쩌지… 마음이 다급해졌다.


마침 찾았다는 소식과 경찰관 두 분이 모시고 언덕배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귀가 들리지 않는 할아버지신데 염소집에서 잠깐 주무셨는가 보다.


'아 다행이다.!'


우리 집사님은 80이 넘으셨다. 그런데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펑펑 우신다. 부부라는 게 80이 되어도 서로 의지가 되는구나… 우리 부부는 우리의 미래의 모습을 보았다며 건강할 때 서로 더 잘 챙겨야겠다 다짐하기도 했다.


가끔 80이 넘은 집사님 댁에 들르면 tv소리는 들리는데 미동이 없으시다. 그러면 나는 혹시 돌아가신 게 아닐까 겁이 날 때가 있다. 어제까지 대화하신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는 일이 잦다. 재 작년에는 마을에서 반갑게 인사했던 이발소 아저씨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다음 날 돌아가셨다.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두근 거린다. 누가 쓰러져서 의료원에 갔슈!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경험할 때마다 잔상이 남는 트라우마가 된다.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우리는 교회와 마을의 대소사에 함께한다. 농촌 목회는 결혼식보다 장례식을 많이 경험한다. 장례식장에서 염을 할 때 우리 부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며 기도한다.


경험할수록 나의 작음을 느낀다. 무엇으로 대비를 하나. 말없이 성경을 묵상해야 할 순간이 많다. 사사기를 읽고 있다. 너는 하나님의 크심을 깨닫고 그가 하시는 일을 믿어라. 마음에 새긴다.


아, 나는 이런 일을 겪는 것이 힘들구나. 내 그릇이 이 정도구나. 가끔씩 막막하고 보이는 게 없어 낙심할 때가 있다. 한계를 느껴 자주 좌절된다.


'제가 이 정도밖에 안되는데도 괜찮으세요?'


하나님의 열심히 이루어 가실 것이다.

나는 작은 도구로 그분의 손의 들려 쓰여질 뿐이다.

다시 가야 할 내 자리에 서 있다.

오늘도 다짐하며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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