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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에 글쓰다 Jan 28. 2024

목사님을 환영합니다.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이 있다.


아빠는 농촌목회를 46년간 하셨고 자동적으로 우리 가족은 늘 시골 구석구석을 살았다. 사택 지붕에는 쥐들이 운동회를 하곤 했다. 다다다다 하는 소리에 천장을 때리면 조용해지곤 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소똥, 돼지똥, 닭똥 각종 똥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대학에 가면서부터 도시에서 살아서 좋았다. 집에 오고 싶지 않냐는 엄마의 말에도 몇 달간은 전혀 집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도시에는 지하철도 있고 막차가 12시까지 있다니. 무엇보다 불빛이 많아서 좋았다. 시골은 농작물이 잠을 자야 잘 자라니까 가로등이 있어도 꺼놓는 곳이 많다. 덕분에 별은 잘 보였더랬지. 우리 아이들도 지금 내가 겪은 것을 경험하고 있다.


남편과는 신학생 시절에 만났다. 결혼 후 경기도에서 경상도로 넘나드는 목회를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충청도에 있는 농촌  교회에 부임하게 되었다. 훈련이란 훈련은 부목회 시절 참 많이 받아왔는데 막내가 60대인 교회에서 2~30살 차이나이는 성도들과 우리는 과연 어떤 목회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시골에 가도 잘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부모님이 다 해주던 시절의 시골 살이와 내가 다 해야 하는 시스템은 천지차이였다. 한 예로 여기는 음식물을 거름 용도로 다시 쓰기 때문에 밭에 버린다. 음식물을 버리러 가다가 고라니와 몇 번이나 눈 마주침을 해야 했다. 그 공포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네는 어떤가 수백 마리 지네를 낳고 조리 중인 어미 지네를 만나봤는가. 한 마리가 나왔다면 또 한 마리가 대기 중이다. 지네는 한 쌍으로 움직인다는 사실. 날파리의 산란기에는 떼를 이루어 형광등만 찾아다니며 시체를 뿌리고 다닌다. 장마철이 시작되기 전엔 개미떼가 줄지어 집안으로 출몰한다. 고구마 밭에서는 구멍을 조심하라. 두더지와 악수할 수 있으니!


얼마나 많은 자연 그대로의 날 것을 마주 하는지 모른다. 초반에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적응해 내야 살 테니 그저 웃음만 났더랬다. 여기가 이제 내가 살 곳이네! 편의점은 차로 10분, 배달은 없다. 치킨은 주문해서 찾으러 간다. 왕복 40분이라네.


세련됨이 무엇이냐. 몇 년간 성도들이 교회 공동 밭을 사서 농사를 지어 수확물을 판매하여 선교 후원을 했었다. 어찌 사모가 그냥 있을 수 있나. 호미를 들고, 밀짚 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고, 비 오는 날 삽질을 해본 소중한 경험이란… 뚜뚜뚜…. 밭 농사는 이모작이었다. 허허허. 봄에 마늘을 캤는데, 가을에 콩을 심었다. '휴~끝났다!'했는데 며칠 뒤 다시 밭을 갈아야 한다고 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수확물을 거두고 이렇게 일년에 두번이다. 어느 땐 감자, 고구마, 들깨로 바꿔갔다. 아! 수작업으로 교회 마당에 아스팔트도 깔아봤다.


이렇게 이곳에서 지나온 세월이 벌써 8년이다. 17년 목회 기간 동안 제일 오래 있는 곳이 되었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처음 부임했을 적이 생각난다. 할머니 몇 분이 낑낑대고 현수막을 걸고 있었더랬다.


[000 목사님을 환영합니다. 00 교회 성도들 일동]


이런 플래카드 받아 본 사람이 있는가 할머니들의 솜씨로 말이다! 우리 부부는 도시에서 바쁜 부목회 활동을 하다가 이런 뜨끈한 정은 처음이라 간질간질 웃음이 지어져 나왔다. 그렇게 격하게 환영을 받았는데 적응은 좀처럼 빨리 되지 않아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이 있었다. 그 미안함과 죄책감이 쌓여 나는 미소를 잃어가고 있었다. 내가 문제야.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처음 브런치 스토리에 작가로 선정이 되고 어떤 글을 써볼까 고민해 봤다. 박사과정에서 배운 상담 이론들을 쉽게 풀어가 볼까도 했는데 잘 풀리지 않았다. 그래, 나는 수다가 떨고 싶었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어도 친구가 근방에 있기를 하나 잦은 이사에 또래 이웃조차 없다. 목회하며 풀어보지 못한 감정의 보따리를 풀어볼까. 글 구성을 하고 남편에게 보여주니 너무 재미있어했다. 자신감 상승.


목사의 딸로 안 되는 게 많았던 삶, 목사의 아내가 되니 더 조심할 것이 많은 삶. 농담으로 한 말이 오해와 상처가 되어 다시 돌아왔다. 30대 중반에 왔는데 나는 이제 60대 70대로 맞춰 살아야 하나. 차츰 나는 누구? 나를 잃어갔다. 그래도 다시 나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이곳에서의 목회 덕분이기도 하다. 그렇게 장애물 넘듯이 하나하나 지나쳐 왔다. 장애물 달리기는 나 넘어지라고 있는 게 아니라 멋지게 뛰어넘으라는 것이란다. 정말 그랬다. 내가 경험하고 지나 온 것은 단단해져 있었다. 내가 본 목회와 내가 하는 목회의 격차를 줄여가는 여정에 있다. 나의 부족함을 느끼고 있는 것은 내가 자라고 있는 뜻이리라.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가는 것이란다. 받아들이면서 또 오늘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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