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 수련회에서 은혜를 받고 신학교에 가기로 결심했다. 국룰을 나도 따르게 되었다. 남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아빠는 여자인 내가 신학교에 가는 것에 대해 걱정이 많으셨다. 그때의 나는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런데 교회에서 일하는 건 너무 재미있어 보였다. 신학이란 것도 배우면 재밌을 것 같고 어느 나라를 가든 뭘 하든 신학교에 가면 답이 나올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신학교 아니면 안 된다고 처음으로 마음을 꺾지 않았다.
스무 살 때부터 전도사를 시작했다. 부모님 품을 떠나 낯선 환경, 낯선 교회, 낯선 사람들 틈에서 어려웠지만 열심히 하려고 했다. 그런데 실수도 많고 적응도 힘들고 두렵기도 했다. 이상적이고 맹목적이었던 신앙이 땅에서 적용되는.. 내게는 현실을 자각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엄마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이 길은 이렇게 아프면서 끝나는 삶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자네, 정말 그 길 갈 텐가' 책 제목이 떠올랐다. 보는 삶과 사는 삶의 차이를 인식하는 고민과 방황이 시작되었다.
남편과 나는 4년을 교제하고 대학원 졸업을 마치면 바로 결혼하기로 했다. 그러면 나는 자동적으로 사모 타이틀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엄마는 항암 후유증으로 연신 토하고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누워만 지냈다. 나는 혼자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26살에 나로서는 감당하기 두렵고 버거웠다. 혼자 힘으로 해보려고 했다. 나만은 걱정시키지 말자 안간힘을 썼다. 뭐든 잘 해내는 둘째 딸이 되고 싶었다.
엄마는 결혼식 보름 전에 돌아가셨다. 아빠는 결혼식을 미루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너무 허무했다. 제정신이 아니었고 결혼식을 미룬다는 말에 그러면 결혼을 안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 시아버지가 찾아오셔서 결혼식을 그대로 진행하자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엄마를 보내고 보름 후에 결혼을 했다.
가난과 떠돌이 삶을 경험하면서 너무 힘들 때면
'그때 결혼을 미뤘다면 어땠을까. 나는 외국에 가서 공부하며 살고 싶었으니까 거기에서 성공했을까.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지.'
막연하게 상상의 날개를 펼치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삶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외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인들의 모습을 보고, 다른 길을 택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아도 지금 내 삶이 가장 좋구나 느낄 때가 있다. 고난이라고 말하는 어려움들은 내 속에서 든든한 힘으로 자리잡았다. 그 힘이 지금까지 날 지탱해 주었고 제자리로 올 수 있게 하였다. 지금의 삶이 아니었다면 나는 망가진 마음으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고난은 버릴 것이 없다고 했다. 단단해진 마음은 돈과 성공으로 바꿀 수 없다.
(시119:71)"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지금 여기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된 지금의 내 마음에게 고맙다. 잘 버텨주었고 잘 이겨내 주었다. 그런 나에게 칭찬한다.
'애썼고 앞으로도 애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