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정들었던 집사님이 천국에 가셨다. 100살을 앞두고 돌아가셨다. 갈 때마다 뼈만 남으신 손으로 손 잡아주시려 했다. 2주 전 임종예배를 드리러 갔다. 어르신들이 곡기를 끊으시면 준비를 한다. 눈짓으로 음료수 먹고 가라고 하셔서 딸 권사님이 대접해 주시는 요구르트를 마셨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대접해 주신 음식이 되었다.
작년 4월에 마을에 큰 산불이 났다. 2박 3일간 불이 났다. 우리 권사님 댁 앞 산에 불이 나서 불을 끄러 갔었다. 집에 누워계신 집사님이 생각나 나는 집으로 들어갔다.
"집사님 밖에 불이 났어요. 연기가 위험하니 우리 나가요"
"아이고 사모님 어지러워서 못 일어나겠어유"
"저한테 업히세요!"
"아이고 업히긴 제가 일어나 볼게유"
그렇게 밖으로 나오자마자 집이 홀라당 타버렸다. 앞 산에서 타오르던 불길이 바람 한 번에 집을 다 태워버렸다. 나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불똥으로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불이 이렇게 무서운 건지 처음 알았다. 그때 집사님을 모시고 나오지 못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내 평생에 큰 슬픔이었을 것이다. 집이 탄 것도 어려운 일인데 집사님이 그 집에서 발견되었다면 얼마나 괴로웠을지. 갑작스레 헤어지지 않도록 우리에게 10개월간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집사님과 권사님은 나라에서 지원된 컨테이너에서 생활하셨다. 봄에 새 집을 지으려고 땅을 마련해 두셨다. 곧 새 집에 들어가시겠네 했는데 천국에 있는 새 집으로 이사를 가셨다. 장례식장에서 더 좋은 집이 천국에 있다며 서로를 위로했다.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갔을 때 집사님은 고운 모습으로 눈을 감고 계셨다. 가끔 이렇게 성도들의 임종을 만날 때 평온한 모습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엄마는 활짝 웃으면서 가셨는데 그 모습이 각인 되었다. 70이 넘은 딸 되신 권사님은 덤덤하시다가 우리를 보자마자 그때서야 우셨다.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밤낮 극진히 모시며 끝까지 어머니를 존경하셨던 딸이다. 나는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은 날 아침부터 속에서 찬양이 흘러나왔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함께 가려네'
이제 오라고 부르시려나 보다. 나는 그렇게 알아듣고 혼자 찬송을 불렀다. 엄마는 26살에 보내도 73살에 보내도 애틋하구나.
'집사님, 우리 천국에서 만나요. 저희 엄마에게 안부 부탁드려요. 많이 사랑해 주셔서 감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