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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아빠, 30대 아들의 페로 여행 21밤 15.1

8/22 흐리다 맑음

by 페로 제도 연구소
15일 차 동선
토르스하운 선착장 > [선착장] Krambatangi > [트레킹] 흐반하기(Hvannhagi) > [점심] Matstovan Garðslon > [뷰포인트] Akraberg Lighthouse > [트레킹] Ásmundarstakkur trailhead > [저녁] Thai Style Take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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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다... 비다... 오늘은 남단에 위치한 수에우로이Suðuroy 섬에 가는 날이다. 한 가지 희망적인 건 오늘 날씨가 곧 갠다는 예보가 있다는 거? 일어나 씻고 선착장으로 차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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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를 타고 가야 해서 선착장으로 갔는데, 아무것도 없어 대기 줄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궁금해하던 찰나, 직원이 톨게이트 사무소 같은 데서 나와 번호판을 찍는다. 그리고는 1번 라인에 서라고 안내해 줘서 들어갔다. 우리가 두 번째로 도착한 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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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을 서 기다리니 차가 한두 대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날씨 예보대로 비가 그치기 시작하는 걸 보니, 왠지 오늘은 드디어 제대로 해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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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가 도착해 탑승시간이 됐고, 드디어 수신호가 떨어진다. 20여분 간의 기다림 끝에 차를 2층에 세우고 배를 구경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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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싣고 배를 구경하러 가는데 아빠는 엄청 신나 보였다. 배가 엄청 큰 게 그렇게 좋고 신기한가? 싶었는데, 아빠는 이런 배를 태어나서 처음 타봤다고 했다. 배는 총 5개 층으로 이루어졌는데, 안에는 다양한 좌석과 편의시설, 매점 등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크루즈처럼 즐길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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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가니 테이블/좌석과 토르스하운의 전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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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로의 날씨는 맑다/흐리다로 정의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보다시피 반은 맑고 반은 어둡기 때문에... 주위를 둘러보는 사이, 배가 서서히 출발학 시작했다. 페로의 국기는 볼수록 이쁘면서도 힘찬 것 같아. 밖에 있다 보니 추워져 들어가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샀는데, 가격이 4천 원밖에 안 해서 좀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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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의 항해 끝에 곧 도착한다는 안내 멘트가 나와 차로 이동했다. 나갈 때는 어떻게 여기서 나가나 봤는데, 1층의 차를 먼저 내보내고 2층을 아래로 내려 1층으로 나가는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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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는 흐반하기(Hvannhagi) 호수다. 이곳에 얽힌 개인적 이야기가 있는데, '만(Mann)'이라는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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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재생 아님)

16년 여기 왔을 때 트레킹 초입의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갑자기 온갖 동물들이 뛰쳐나와 내쪽으로 슬금슬금 걸어오길래 너무 당황해서 뒷걸음질 친 기억이 있다. 그때 뒤에서 막 산책을 시작하던 한 현지인의 '내가 안내해 줄까?'라는 한마디가 들렸는데, 그게 아저씨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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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구석구석을 설명해 주며 내가 미처 몰랐던 코스까지 나를 데려가 줬고, 자신의 차로 섬 끝도 구경시켜 주고, 집에 초대해 밥도 얻어먹고 페이스북 메시지로 간간히 연락하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페로에 동양인이 오는 게 흔치 않은 일이라 일종의 호기심이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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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에 들러 물을 사고 인포센터에 들러 흐반하기에 주차할 곳이 있냐고 물어봤는데 병원 근처에 대거나, 트레킹 입구에 가면 있을 거라고 했다. 병원부터 걸어가려면 30분은 걸리니까 안 되면 돌아오지라는 생각으로 코스로 차를 향했다. 다행히 차를 갖고 온 사람이 없어 주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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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을 시작하고 싶었는데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진다. 웬일로 날씨 예보가 좋다 했어. 그래도 구름 사이로 빠져나온 빛줄기와 비구름이 움직이는 모습이 모이니 이런 장관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점점 비구름도 사랑하게 되는 게 페로의 매력인 것 같다. 갑자기 죽음의 5단계가 생각이 나네. 페로로 치환하면 이런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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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정-아니야 내 여행에 날씨가 이럴 리 없어

2. 분노-이런 x 같은 날씨가! 왜 하필 나에게!

3. 협상-5일째 비가 왔으니 6일째는 안 오겠지?

4. 우울-7일째 비가 오고 있다... 이번 여행은 개 망했어...

5. 수용-오늘도 비가 오겠지? 나름 비 오는 날씨도 괜찮아.



쓰고 보니 나는 이미 수용단계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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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내가 여기 왔을 때는 온갖 말과 양들이 문을 열자마자 달려왔는데, 지금은 다 결계를 쳐둔 모양이다. 나중에 만 아저씨가 얘기해 준 바로는 동물들이 뛰쳐나온 이유가 '먹이를 주는 줄 알고'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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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정도 기다리니 흩뿌리던 비가 그치고, 약간이나마 파란 하늘이 보인다. 이쯤이면 트레킹을 시작하는 데 문제가 없지! 출발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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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을 시작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페로의 수문장. 옆에 사람이 있든 말든~ 얘들이 여기 있다는 건 바닥을 조심해야 한다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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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꽂힌 주황색 나무 막대를 마일스톤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 페로의 트레킹 코스는 길을 잃기 딱 좋게 생긴 곳이 많은데, 이 나무 막대 지표 하나가 저 허허벌판에서 상당한 의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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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절반쯤 왔다는 신호인 계단이 보인다. 크게 위험하진 않지만 바람이 부는 날엔 주의가 필요하다. 뒤를 돌아보니 비구름이 슬슬 몰려오는 것 같은데, 다행히 목적지 쪽에는 아직 비가 오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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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 출입문이 보이면 거의 다 왔다는 신호다. 이 뒤부터는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길이 좁고 가팔라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웬일로 목적지 쪽 날씨가 좋나 했더니, 다가갈수록 흩날리는 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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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이게 흐반하기 호수다. 호수자체로는 (개인적으로) 큰 매력이 없지만 바다와 함께 보이는 광경이 꽤나 멋스러운 곳이다. 협곡 사이로 스카이다이빙급 바람이 불어와서 아빠랑 그걸 맞고 놀았다. 근데 너무 바람을 많이 맞아 좀 멍해져서 돌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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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가야 할 시간이 되어 돌아가려고 하는데, 예전에 분명 여기 왔을 때 협곡을 지났던 기억이 있어 주변을 둘러봤는데 그쪽으로 향하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여기 같은데... 하며 보다가 그린란드였나?라는 생각을 하고 되돌아갔는데, 한국에 와서 보니 내가 길을 못 찾은 거였다. 이렇게 페로에 다시 갈 이유가 또 하나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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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차로 돌아갈 시간이다. 계단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안나프루나에서 촘롱의 6천 계단(믿거나 말거나)을 오른 내게 이 정도는 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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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로 트레킹의 묘미 중 하나는 날씨 때문에 올 때와 갈 때 풍경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아까는 회색 비구름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던 바다 쪽의 날씨가 개자 외로운 섬 하나가 나왔다.


글이 너무 길어져 2편으로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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