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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아빠, 30대 아들의 페로 여행 21밤 15.2

8/22 흐리다 맑음

by 페로 제도 연구소

15.1 보러가기 https://brunch.co.kr/@airspace2010/49

15일차 동선
토르스하운 선착장 > [선착장] Krambatangi > [트레킹] 흐반하기(Hvannhagi) > [점심] Matstovan Garðslon > [뷰포인트] Akraberg Lighthouse > [트레킹] Ásmundarstakkur trailhead > [저녁] Thai Style Take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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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돌아오니 비가 조금씩 내리고 먹구름이 짙어진다. 한바탕 트레킹을 했으니, 이제 밥을 먹어야지. 오늘의 점심 식사는 페로의 가정집에서 흔하게 먹는 음식을 파는 곳으로 간다. 굳이 따지자면 함박스테이크정도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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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분을 달려 도착했는데 어... 분명 영업시간을 확인하고 왔는데 폐업을 했나...? 입구가 어딘지... 하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웬 문을 하나 발견했다. 근데 간판도 없고 들어가도 되는 곳인가? 민가인가 고민하다가 슬쩍 문을 열어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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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는 이쁜 식당이 있었고, 오래 된 영화 포스터들로 꾸며진 아늑한 공간이 나왔다! 주인은 식사는 가능하지만 메뉴는 하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게 내가 여기 있는 이유'라고 했더니, 주인이 웃으며 음식을 준비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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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를 각각 시켰는데, 페로의 음식점 음식은 늦게 나오는 반면 탄산은 병을 따서 갖다주거나 얼음을 넣은 채로 갖다주는 경우가 많아 맛이 밍밍해져 처음부터 시키는 것은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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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나왔다! 페로 전통식은 아니고 일반적인 가정식이며 샐러드와 찐감자, 파프리카가 올라간 함박스테이크가 나왔다. 나는 파프리카를 정말 좋아하지 않는데, 고기 위에 올라간 파프리카에서 엄청나게 달달한 맛이 나 맛있게 먹었다. 가격은 총 DKK 340으로, 약 6만 8천 원.


한접시를 뚝딱하고, 계산하며 우리가 먹은 고기가가 뭐냐고 물어봤는데 주인이 영어를 잘 못 하는지 대답은 못하고 무~~~이러길래 카우? 이랬더니 '예스'라고 했다. 만 아저씨네 초대받았을 때도 이걸 먹었는데, 그때는 당근이 있어 조금은 먹기 힘들었지만 이번엔 모든 재료가 입에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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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목적지는 섬의 최남단에 있는 Akraberg Lighthouse 등대로 향했다. 근데 갈수록 파란색이 사라지고 먹구름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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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에 도착했지만 바람이 너무 쌔고, 등대쪽으로 가는 길이 울타리로 막혀 있어 더 가진 못했다. 한 가지 다행인 게 있다면 우리가 먹구름보다는 빨리 도착했다는 거? 시원한 바람, 맑은 공기, 따사로운 햇볕과 광활하게 펼쳐진 수평선의 조화가 참 아름답다. 거기에 붉은 색 민가는 화룡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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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까지 넘어갈 수 없으니 더 이상 머물 이유는 없고, 마침 비구름도 거의 다 왔다. 토르스하운으로 돌아가는 페리 출항까지 한 시간 반밖에 남지 않았지만, 휘뚜루마뚜루 보고 오면 될 것 같아 북쪽까지 한번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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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 도착해서 이중 문을 열고 들어가 트래킹을 시작했는데 한 5분만 더가면 뷰가 보일 것 같았다(실제로는 30분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력으로 빠르게 뛰어 갔는데도 안 되길래 그만 돌아가자고 했다. 그때가 4시 40분이었고 출항 시간은 17시 30분이니, 돌아가는 시간 10분과 운전해 돌아가는 시간 20분을 고려하면 여유시간이 20분밖에 없었다. (사실 이 정도도 충분하지만 난 ENFJ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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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번 여행 최대의 문제가 발생했다! 구글맵을 따라 선착장으로 가고 있는데, 10여분 남은 시점에 갑자기 공사중이라 막힌 터널이 등장했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물음표 5개가 머리 위로 떠올랐고, 지금 타러 가는 페리가 토르스하운으로 가는 마지막 페리라는 게 생각났다. 뇌에서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지체할 시간도 없어 주변을 둘러보니 아래쪽에 큰 직선도로가 하나 있어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스필버그의 쥬라기공원 1에서 데니스 네드리가 훔친 공룡 수정란(?)을 가지고 선착장으로 뛰어가는 느낌이 이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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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그 길이 맞았고, 우리는 20분 전에 도착해 마지막에서 3번째로 탑승할 수 있었다. 온 몸의 긴장이 쫙~~풀린다... 이거 못 탔으면 오늘 차박이든 1박이든 여기서 해야 했으니까... 너무 긴장한 탓인지 페리에서는 쪽잠을 잤고, 숙소에 돌아와서 씻고 저녁을 뭘 먹을지 논의했다. 이번엔 새로운 중식당을 가려고 했는데, 아빠가 팟타이를 먹고 싶다고 해 테이크아웃해 숙소로 돌아왔다. 아빠는 두꺼운 국수가 더 좋다고 했다.


오늘 일정이 좀 길었어서 그런지 아빠는 곧 잠이 들었다. 아빠가 침대가 너무 푹신하다며, 좀 더 단단한 소파에서 자겠다고 했다. 혹시 내가 편하게 침대에서 혼자 자라고 그런 건 아니겠지...?


뒷정리를 하고 기름을 채우러 주유소에 갔다. 주유를 마친 후 계산이 됐는지 확인하려고 들어간 김에 과자랑 슬러시컵을 들어 계산대로 갔다. 근데 직원이 과자값만 계산하길래 '슬러시 컵은?'이라고 물어봤더니 '슬러시 컵은 공짜야.'라길래 오 땡큐~라고 생각했는데 혹시 몰라 '나 슬러시 먹을건데?'라고 했더니 '아 그래? 컵만 가져가려는 줄 앎 ㅎ'하고 슬러시를 계산했다. 아무래도 페로에서 저런 컵은 공짜인가봐. (혹시 이 글 보고 컵 잔뜩 챙겨가시는 분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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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주유 영수증이 안 나와 가서 물었더니 한참을 헤매다가 수기로 써줬다. 왜 안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페로는 참 이상한 나라야. 숙소로 돌아와 고프로 타임랩스를 설치하고 내일 날씨를 보다가 삭순(Saksun)으로 행선지를 정했다.


그렇게 페로의 열다섯 번째 밤이 진다.




페로 제도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airspace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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