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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아빠, 30대 아들의 페로 여행 21밤 16.2

8/23 맑고 흐리고 맑음

by 페로 제도 연구소

16.1 보러가기 https://brunch.co.kr/@airspace20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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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숙소에 와서 일단 씻고 빨래를 하고 Seven이라는 중식 뷔페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근처에 주차를 하고 식당에 갔는데, 전반적으로 메뉴 가짓수는 많지 않았지만 메인 메뉴들이 꽤 있었다. 맛은 전반적으로 좀 짰는데 현지인이 생각보다 많이 와서 놀랐다. 매대에 불닭볶음면과 신라면이 있어 새삼 한국 음식의 인기가 체감된다. 얼마 전 덴마크에서 불닭볶음이 너무 매워서 퇴출? 됐다는 뉴스를 본 것 같은데, 여기는 괜찮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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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제일 맛있던 건 닭육수 베이스의 표고버섯과 닭고기, 무가 들어간 뭇국이었는데 추워서 그런지 이게 진짜 맛있었다. 중식 먹으러 갔다가 뭇국만 3 그릇을 퍼왔다. 일기 쓰고 있는 지금도 먹고 싶다... 아빠는 순댓국에 무조건 깍두기 국물을 부어야 음식이 넘어가는 사람이다. 주위를 둘러보더니 또 뭔지 모를 빨간 소스를 갖고 와서 국에다 풀어먹었다. 그러다 맛없으면 우짤라고 뭐든 섞노…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뭘 섞든 그건 아빠 마음이잖아. 난 정말 뒤틀린 인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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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친 후 기념품을 사러 아빠가 좋아하는 공구샵에 들렀다. 이것저것을 둘러보더니 아빠는 그... 스프링클러에 호스를 연결하는 부품이 필요했는데 한국에는 없다면서(아마 못 찾으신 거겠지?) 이걸 몇 개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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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은 옆에 있는 Öström이라는 디자이너 샵에 가 이것저것 둘러봤다. 여기서는 우리 집과 처가에 드릴 선물용 텀블러, 컵, 접시 등 페로스러운 것을 몇 개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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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H. N. Jacobsens Bókahandil에 들렀다. 여러 목적이 있지만 오늘 가장 사고 싶은 건 페로 지도인데, 예전에 아이슬란드 지도(축적이 기억이 안 난다)를 프랑스에서 배편으로 직구해 한 달 정도 걸려 받았을 때의 기쁨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다른 도시에서 구매하려고 했을 때 이 동네에는 그런 게 없다고, 토르스하운의 큰 서점에 가면 지도를 팔 거라고 하길래 가서 물어보니 정말 지도가 있었다! 가장 큰 사이즈(120cm*80)의 지도를 사고 싶었는데, 약 9만 5천 원(478 kr.)이기도 하고 비행기에 갖고 타기 애매한 정도의 크기여서 한 사이즈 작은 걸 골랐다. 지도를 담을 통을 별도로 구매해야 하는 건 함정. 어쨌든, 나도 이제 페로 지도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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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엔 서점과 같은 건물에서 운영되는 Paname cafe 카페에 들러 페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인 바나나 케이크를 시켰다. 며칠 전 왔을 땐 케이크가 품절이라 구하지 못하고 되돌아갔던 기억이 있는데, 장기 여행을 오니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다는 점이 좋네. 더불어 이 카페의 아늑하면서도 평온한 분위기 또한 일품이다. 역시나 바나나케이크는 맛있었고, 아내를 갖다 주고 싶어서 포장을 할까 싶었는데 케이크가 이틀이나 버티진 못할 것 같아 아쉬웠다. 다음에 왔을 땐 꼭 이틀 이상 냉동보관할 수 있는 뭔가를 가져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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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선 나름의 랜드마크인 동상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작년에 아내와 왔을 때도 여기서 사진을 찍었지. 숙소로 갈까 했는데, 오랜만에 날씨가 너무 맑아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해저터널을 지나 산도이Sandoy 섬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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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햇볕을 받으며 도로 한복판에서 자고 있는 오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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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좀 안 되게 차를 달려 달어(Dalur) 마을에 도착했다. 이런 날씨를 얼마나 기다렸는가! 트레킹 코스 초입에 도착했는데 'No entry'라는 푯말과 QR이 있어 찍어보니 근처의 구글맵 좌표를 안내한다. 아무래도 여기가 트레킹 코스 입구가 아닌데 사람들이 여기로 잘못 와서 친절하게 안내해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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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려고 했는데 아빠가 안 보여 주변을 둘러보니 망원경을 써보고 있다. 아빠는 어딜 가든 저런 게 있으면 꼭 써본다. 그래도 그림 하나는 끝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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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코스는 Gongutúrur 트레킹 코스다. 난이도가 굉장히 쉬운 편에 속하고, 해가 떠 땅의 물기도 많이 사라져 상태가 좋고 양똥도 별로 없어 걷기에는 완전 최고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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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다 뒤돌아서 본 풍경. 그저 감탄만 나온다. 역광이 이렇게 이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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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가다 보면 THE FISH CAIRN이라는 포인트가 나온다. '물고기 돌무더기'라는 뜻인데, 돌무더기가 어업에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은 사람들이 아침에 돌을 얹고 끈을 배에 던지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돌을 얹으면 무너질 수 있어 더는 안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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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페로에서 본 사다리 중 가장 이쁜 사다리. 본격적으로 트레킹 코스가 시작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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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까지 가는 길.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풍경에 기분 좋음 수치가 Max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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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둘러본 뷰. 맑은 날씨, 선선한 바람. 그 어느 때보다 쾌적하고 신난다. 비가 잔뜩 온 이후라 그런지 만족도도 훨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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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길에 아빠가 양이 있으니까 계속 메에에에에에~~ 거렸는데 속으로는 아빠는 저게 재밌나?라고 생각하면서 내려갔다. 지상에 도착해 차에 시동을 걸려고 했는데, 열쇠가 안 돌아가 당황했다! 순간 아이슬란드에서 겪은 렌터카 회사 '그린모션'의 악몽이 떠오른다. 여차저차 얼레벌레 휘뚜루마뚜루 이것저것 건드리고 돌리다 보니 시동이 걸렸다. 뭐가 문제였지?라고 생각하면서 이유가 궁금해 시동을 다시 꺼보려고 했는데, 아빠가 다시 시동이 안 걸리면 어떡하냐면서 그냥 가자고 했다. 열쇠 꼽아 돌리는 방식 진짜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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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나가는 길에 화장실에 가려고 했는데, 분명 건물에 화장실 표시가 있는데 웬 소파와 먹다 남은 커피컵, 식탁 등이 있어 순간 잘못 봤나?라고 생각했다. 아마 여기는 이 마을의 다목적실정도 되는 것 같다. 참 신기한 동네야. 우리로 치면 관광객에게 개방된 마을회관정도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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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섯 시쯤 됐는데 아직 해가 있어 섬 하나라도 더 가보기 위해 근처의 헤스투르(Hestur) 섬을 목적지로 찍었다. 지도상으론 자동차로 이동 가능한 길이라 섬의 북단으로 차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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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만난 풍경과 무지개. 비가 온다는 건 무지개를 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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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에 취해 차를 이동하다 보니 7시쯤 도착했는데, 길이 없었다. 아무리 봐도 이건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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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가 지형을 살펴봤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해저터널로 연결된 곳이 없어 보여 주변 마트에 가서 물어보려고 해도 마을의 모든 장소가 문을 닫은 상태라 물어볼 수도 없다. 돌아와 안내문을 다시 읽어보니 여기는 페리를 타야 하는 곳이고, 구글맵이 이상했다는 결론을 내고 토르스하운으로 돌아왔다. 오늘 느낀 점은 왜 나는 아빠한테는 불친절하면서, 처음 만난 사람한텐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줄 정도로 친절하게 굴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소중하게 하기로 좀 더 마음을 먹은 날이었다. 아빠 사랑해~~


그렇게 페로의 열여섯 번째 밤이 진다.




페로 제도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airspace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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