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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수저' 만난 이야기-페로 제도 여행 18.1

8/25 맑음

by 페로 제도 연구소
18일 차 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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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날씨를 보며 오늘 미키네스와 드랑가니르 투어 중 어디를 할지가 최대 고민이었는데, 드랑가니르 투어가 2인 40만 원 돈이라 여기에 좀 더 힘을 쏟기로 했다. 날씨가 맑은 걸 보니 오늘 아주 끝내주는 여행이 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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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아웃을 하고 마지막 마을인 소르바구르로 차를 향했다. 구름이 덮였지만 색이 맑고, 뒤에 파란 하늘이 보이는 걸로 보아 적어도 당분간은 맑은 날씨가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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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인 토르스하운과 공항이 있는 소르바구르 마을을 연결하는 유료 터널. 페로의 유료 터널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쓰리지만 유일한 통로라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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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는 11시에 시작하는데, 새로운 마을도 둘러볼 겸 10시쯤 도착했다. 미키네스로 가는 페리를 타려면 쭉 더 걸어가야 하고, 차는 이곳에 주차해야 한다. 그런데 앞으로 더 차를 가지고 가면 주차할 곳이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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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로의 고양이는 목줄(?)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애초에 고양이를 밖에 풀어놓고 기르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딱히 장치도 없어서 페로의 고양이는 뭔가 다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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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아파 미키네스 선착장 근처에 있는 인포 겸 상점에 갔는데 화장실 상태가 너무 별로라서 참아야겠다고 생각하다가, 30분 정도 뒤에 이건 아니다 싶어서 황급히 구글 맵에 화장실을 검색했다. 다행히 2분 거리에 어린이 놀이터에 화장실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차를 몰고 달려갔다. 최소한 공공 화장실이면 깨끗하겠지...라는 심정으로 화장실 상태가 좋다는 쪽에 도박을 했는데 천운인지 화장실 상태가 아주 좋았다. 페로 와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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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50분이 되어 투어 사무실로 가 부킹넘버를 확인하고 구명조끼를 받았다. 보통 이런 투어의 구명조끼는 상반신을 전부 덮는 형태에 젖어있어 축축하고 꿉꿉한 경우가 많아 우의를 따로 챙겼는데, 이번 투어에서 주는 조끼는 상태가 깔끔하고 착용도 간편하며 심플한 구명조끼가 있어서 우의를 다시 차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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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는 10명 정도가 타는 소형 보트로 진행되는데, 보통 맨 앞자리가 물을 가장 맞는 자리다. 그걸 아는 사람은 먼저 빠르게 탑승해 이미 뒷자리부터 좌석이 찼고, 나는 맨 앞자리에 타게 됐다. 젖을 것 같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막상 출발하고 나니 파도가 거의 없는 곳이라 오히려 앞을 가리는 사람이 없어 개이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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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는 더할 나위 없었고 한 손에는 스마트폰용 짐벌, 다른 한 손에는 인스타360의 셀피 스틱을 길게 뽑아 올렸다. 아마 뒷자리 사람들은 그 좋은 뷰에 내 인스타360 막대기를 같이 봐야 해서 내가 좀 싫었을 수도 있다. 근데 뭐 어쩌겠어. 그래도 최대한 배려해서 반만 뽑았다. 이윽고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드랑가니르(Dranganir)가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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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랑가니르 뒤에 있는 뾰족한 섬 이름은 틴드홀무르(Tindhólmur)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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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랑가니르의 진가는 가까이 가야만 알 수 있다. 멀리서 보면 그렇게 작고 하찮을 수 없는데, 가까이 갈수록 '이게 이렇게 컸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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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는 드랑가니르를 한 바퀴 돌고 난 뒤, 소르바구르 섬의 끝자락 뷰포인트에 내려 걷는 것으로 시작한다. 두 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가이드가 주의사항 3가지(쓰레기 갖고 가기, 등대 쪽 트레킹 하지 않기, 절벽에서 1미터 이상 떨어지기)를 안내해 준 후 자유 트래킹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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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시작! 초반의 길은 경사도가 낮아 꽤 걸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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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첫째, 여기 양 똥이 너무 많다. 진짜 지뢰밭 수준이었어. 둘째, 카메라에 안 담기는 경사가 있다.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나)이라면 뒤를 돌아보기 힘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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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엉거주춤 올라가다 보니 첫 번째 뷰포인트가 나왔다. 앞에서 보니 정말 웅장 그 자체구만. 웬 코끼리 한 마리... 아니 매머드나 고대 공룡이 있는 것 같아.


맨 꼭대기의 뷰포인트까지 올라가는 길은 훨씬 가파르다. 어느 현자께서는 트래킹 폴도 가져오셨는데 이 순간 저것만큼 부러운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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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는 길에 뒤돌아한 컷. 먹구름 형님이 조금씩 몰려오는 걸 보니 분위기가 심상찮지만 아니길 바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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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경사가 나온 영상만 올리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그게 기억에 남았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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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저지대의 뷰포인트가 드랑가니르를 위한 무대라면, 고지대의 뷰포인트는 틴드홀무르를 위한 곳이다. 드랑가니르가 매머드라면, 틴드홀무르는 등의 모양 때문인지 고질라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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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하다 웅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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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여기가 지금까지 페로에서 와본 곳 중 가장 좋고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간의 피곤함과 고생이 싹 가시는 것 같은 뿌듯함, 그리고 아빠에게 좋은 시간을 만들어줬다는 안도감이 같이 들었다. 아마 한국인 최초(?)로 이 정보를 전하게 될 것 같은데, 오늘 가이드로 함께 한 18살 소녀와 이야기를 하다가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이 섬 우리 가족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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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수저들이 난무하는 세상이라지만 섬수저라니? 웹툰도 이렇게 쓰면 사람들이 안 봐요. '태어나 보니 관광명소가 내 것?' 뭐 이런 웹툰쯤 되려나. 날 놀린 게 아니라면 자기도 정확한 사연은 모르지만 3~4 세대 이전의 대에서 섬의 소유와 관리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세상에 이럴 수도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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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로의 섬수저는 좀 편하게 살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친구의 첫 알바는 13살에 카페에서 커피를 만들고 서빙하는 것이었단다. 안 그래도 푸글라피요르드에서 인포센터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페로에서는 어린애들이 일을 하는 게 매우 흔한 일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섬수저도 예외는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드랑가니르에 절벽을 탈 수 있는 클립 같은 게 있다고 했다. 저기서 암벽등반도 하냐고 물어봤더니 씩 웃으며 그런데 그 클립이 너무 낡아서 교체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길래 몇 명이나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10, 20명이라고 한다. 드랑가니르와 틴드홀무르는 멋있고, 가이드의 얘기는 흥미로웠다. 도중에는 트레킹 코스를 이탈한 사람을 데리러 운동화 하나 신고 산등성이를 뛰어가는데 고라니가 따로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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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시간이 지나 보트를 타러 내려갔다. 그런데 보트가 하나만 접근해 10명을 태우더니 바다로 가버렸다. 머리 위에 물음표를 5개 정도 띄우고 가만 지켜보고 있었는데, 바다 위에서 다른 보트로 먼저 탄 10명을 옮기고 다시 남은 사람을 태우러 돌아오는 것이었다. 오늘 운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출발할 때 먼저 가서 줄을 섰으면 맨 앞자리에 앉지 못했을 거고, 돌아올 때 먼저 가서 줄을 섰다면 바다에서 환승을 해야 했을 테니까.


글이 길어져 2부로!




페로 제도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airspace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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