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5 맑음
18.1일 차 보러 가기 https://brunch.co.kr/@airspace2010/52
드랑가니르 투어가 끝나고 밥을 먹을까 하다가 일요일이라 여는 식당도 없고, 그나마 한 식당이 오후 2시에 열어 근처에 있는 마녀의 손가락(Witch`s finger trail)을 걷기로 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트레일을 걷기 시작한다. 끓는 물처럼 보글보글한 구름이 환상적이다.
여행 말미가 되니 그래도 하루는 완전 맑은 페로를 보여주려고 하는구나. 감사합니다 페로의 트롤 신이시여~~~
무료인 데다가 트레킹 코스도 잘 닦여있고, 양 똥도 없으니 이렇게 걷기 좋을 수가 없다.
트레킹 코스에서 빠지면 섭한 중간 문. 여길 넘어가면 곧 코스가 끝난다는 소리다.
문 뒤를 넘어 조금씩 걷다 보면...
우뚝 솟은 마녀의 손가락이 보인다! 멀리서 보면 그렇게 커 보이지 않지만, 저것도 가까이서 보면 엄청나게 클 게 분명하다.
아빠의 뒷모습은 사람을 아련하게 만드는 게 있다. 내가 아들이라 그런가?
풍경을 충분히 즐기고 되돌아오는 길에 하트 모양 구름 속 닭살 같은 구름이 보였다. 실제로 보면 진짜 징그럽다.
그래도 날씨 좋~~다~~ 이제 밥을 먹을 시간이 되어 Cafe Zorva로 차를 향했다.
인도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와서 장사를 하는 것 같은데, 메뉴의 폭과 식당이 넓어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곳이다. 또, 대부분의 메뉴가 2~4만 원 내외라서 가격 부담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고. 하지만 로컬의 감성을 기대하기는 좀 어려운 곳이다.
나는 양고기 스튜를, 아빠는 치킨 랩을 시켰다. 양고기 스튜는 225 kr.로 약 4.5만 원인데, 그만큼 음식이 풍족하게 나왔다. 특히 사진의 분홍색 양파는 약간 물릴 때쯤 입맛을 환기시켜 주는 킥 역할이라 좋았다. 아빠가 한입 먹어보더니, 누린내가 나서 아빠 취향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양고기 누린내를 정말 좋아하는데, 아쉽다.
아빠가 시킨 치킨 랩은 98 kr.로 약 2만 원. 근데 팔뚝만 한 크기의 랩이 나왔다. 만약 돈을 아끼고 싶은 여행자라면, 하루 식사는 여기서 포장해 점심 저녁으로 먹어도 될 것 같은 크기다. 아빠는 한 입 먹어보더니 김치찌개 소스 맛이 난다고 했는데, 내가 먹어보니까 살짝 매콤한 바비큐 소스 맛이 났다. 김치찌개라니! 평소에 주변에 재료만 있으면 싹 다 넣고 끌여버리니까 김치찌개 그런 맛이 나지…!
식사를 마치고 나왔는데도 날씨가 너무 좋고 체크인까지 시간이 좀 남아 쇠르보그스바튼 호수 트레킹을 하기로 한다. 페로 하면 떠오르는 스폿 1~2위를 다투지만, 원래는 여기 올 생각이 없었다. 2016년에 왔을 때 트레킹 기억 때문인데... 그때는 변변찮은 트레킹 코스도 없고, 진흙똥밭에 뼈만 남은 죽은 양의 사체가 있을 정도로 관리가 되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아빠한테 한번 보여드리긴 해야 할 것 같아 별다른 정보도 없이 트레킹 코스로 향했다.
그런데 이번에 갔더니 원래 트레킹 코스로 쓰던 곳은 새 보호와 사유지로 변해 막혀 있고, 새로운 곳으로 안내하는 표지판이 있길래 차를 돌려 안내하는 곳으로 향했다.
주차장이 굉장히 넓은 편인데, 그런데도 남은 주차 자리가 많지 않아 보여 내심 당황했다. 그러면서도 꽉 찬 차를 보니 페로의 대표 관광지라는 게 실감 난다. 그러면서도 들어가는 길의 차선이 또 1개뿐이라 헛웃음도 났고.
매표소 안에는 간단한 간식과 음료를 구매할 수 있고, 화장실도 이용할 수 있다. 입장료는 1인당 200 kr.로 약 4만 원이다. 그래서 이곳은 아름다운 풍경에도 불구하고 구글 평점이 매우 낮은 편이다.
늠름한 댕댕이가 우수에 찬 눈빛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어 귀여운 마음에 발걸음을 떼기 어려웠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보더콜리인가?
트레킹 시작!
잘 닦인 트레킹 코스를 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양 똥도 없고, 중간중간 신발을 닦을 물이 흐르는 곳도 있다. 이 정도면 돈 받을 만 하지~
첫 번째 휴식 또는 뷰포인트에 도착했다. 벤치도 하나 있고, 갈라진 바위 사이로 보이는 절벽 뷰가 끝내주는 곳이다.
여기 있는 계단을 올라가면...
드디어 호수와 바다가 이어진 것처럼 보이는 뷰포인트에 도착했다. 그런데 정작 그 구도는 사진으로 안 찍은 게 함정...
날씨 조오타~~~ 지금 와서 보니 수많은 영상을 찍으면서 왜 그 대표적인 뷰는 안 찍었지?를 생각해 보니, 그 대표 뷰가 아무래도 나한테 큰 감흥을 주진 못했나 보다. 그래도 살짝 아쉬움은 남으니 16년에 고프로로 찍은 화질구지 사진이라도 한 장.
내려가는 길.
내가 트레킹 코스에서 제일 좋아하는 물이 흐르는 구간! 신발을 깨끗하게 닦을 수 있다. 곧 지나 다시 더러워지겠지만...
몽글몽글한 구름. 끝이 귀여워 찍었는데 일부분만 보면 정말 포근한 느낌이 들지만, 전체를 보면 인디펜던스 데이의 우주선이 생각난다. 트레킹을 마치고 거리를 대략 계산해 보니 한 13km 정도 되는 것 같다.
트레킹도 무사히 마쳤고, 가사달루르 마을의 에어비앤비에 체크인하기로 했다. 가는 길에 공항에 들러 택스 리펀을 미리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공항에 도착하니 인포센터는 물론 보안 검색대도 닫혀 있다. 아무리 그래도 한 나라의 메인 공항인데 이래도 돼요...?
아빠와 나의 마지막을 장식할 아늑한 코티지! 거실에서 보는 뷰가 멋진 곳이다. 그런데 2층까지 올라가는 사다리의 경사가 상당히 가팔라 정말 위험한 곳이다.
그리고 2층의 높이도 너무 낮아 잠을 자기 힘든 정도.
그래도 커피 가루와 프렌치 프레스 머신이 있어 남은 시간 동안 아메리카노는 엄청나게 마셨다! 커피 한 잔에 4~9천 원 하는 페로 물가를 고려하면 오히려 좋아.
숙소 앞에 타임랩스를 돌려놨는데 웬 꼬마가 어슬렁거리는 게 찍혔다. 슬슬 해가 지니 저녁은 대충 컵라면으로 때우고 물라포수르의 일몰을 보러 가기로 했다. 페로를 한국에서 널리 알린 1등 공신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아마 갤럭시노트 8의 광고라고 할 수 있지 싶다.
일몰 명소라 그런지 2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인데 차가 꽤 있었다. 바람도 선선하고 다 좋았는데 아쉬운 건 해가 지는 쪽에 구름이 너무 많아서 해를 보기가 어려웠던 거. 그래도 작은 희망은 남겨주려는지 수평선과 하늘 사이에 작은 틈이 있다.
지는 해가 잘 보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페로의 석양은 아름답다. 영상으로 보니 해가 뜨는 것처럼 보이는데, 지는 게 맞다. 해도 지고 날도 차 더 있기는 어려울 것 같아 숙소로 들어와 내일 스케줄을 점검하고 기록을 마친 후 잠이 들었다.
그렇게 페로의 열여덟 번째 밤이 진다.
페로 제도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