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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아빠, 30대 아들의 페로 여행 21밤 19.2

8/26 맑다가 비

by 페로 제도 연구소

19.1 보러가기 https://brunch.co.kr/@airspace20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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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미키네스로 가는 선착장으로 향했다. 미키네스행 배는 80인승인데 이미 사람들이 꽤 줄을 서있었다. 밖에서 앉아있을 수 있는 자리가 적기 때문에 미리 가서 줄을 서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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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후 곧 배의 왼편에 어제 본 드랑가니르와 틴드홀무르가 나타났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드랑가니르는 멀리서 보면 전혀 감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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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끄러미 미키네스 쪽을 바라보니 섬 위에는 원반형의 구름이 떠있고, 그 위에는 낮에 뜨는 달이 있었다. 한동안 그 풍경에 매료되어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저쪽은 우리가 가고 있는 곳인데 그 위에 구름이 끼고 있다는 뜻이라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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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타고 온 배를 타고 나오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대다수는 오늘 아침에 입도했겠지만, 여기서 1박을 머문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여기 머물면 밤에 혼자 트레킹 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여하튼, 미키네스를 투어 하기 위해서는 이 첫 번째 계단 구간을 통과해야 한다. 크게 어렵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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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오면 처음으로 마주하는 뷰. 원래는 저 앞에서 투어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는데, 오늘은 아무도 없다. 뭔가 이상해서 마을을 한 바퀴 둘러봤는데도 아무도 나오지 않아 개인적으로 하는 걸로 바뀌었나?라고 생각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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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네스의 유일한 상점 겸 인포 겸 숙박을 겸하고 있는 'The Loc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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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네스의 남녀 공중화장실. 입장료가 인당 8만 원에 육박하는 만큼 관리가 잘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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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을 다녀왔더니 작년에 본 그 투어 가이드가 황급히 아래쪽으로 내려와 우리를 하얀 집으로 안내했다. 아마 투어 집합소가 밖에서 여기로 바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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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의 문턱을 만든 것 같은데 꼬마들이 장난을 쳐놓은 게 분명하다. 하긴 이렇게 콘크리트에 장난을 남길 수 있는 건 목재가 대부분인 미키네스에서 흔치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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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분위기는 교실과 비슷하다. 들어가서 반반을 나눠 앉았는데, 40명씩 두 팀으로 나누어 투어를 진행하는 것 같다. 다 같이 우르르 밖으로 나가 트레킹 초입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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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미키네스의 역사, 마을 등을 설명해 주고 시작하는데 작년에 아내와 왔을 땐 땡땡이치는 학생처럼 뒤에서 과자를 먹으며 마을을 따로 구경했다. (가이드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어느 정도의 이탈이 보장되는 분위기임) 이번에는 설명을 좀 들어봤는데 몇 가지 흥미 있는 얘기들이 있었다.


첫째, 이 멋진 아저씨는 이탈리아에서 페로로 옮겨왔는데, 누군가 '드라이한 양고기 맛은 어떠냐?'라고 묻자 '나는 20년간 채식주의자였는데 페로에서는 생선과 고기가 주식이라 잘못 온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둘째, 우리가 여기 있는 건 행운이라고 했다. 기상이 악화되어 어제 미키네스행 배가 취소됐는데, 내일도 배가 취소될 거라고 했고 여름 시즌에 이만큼 비가 온 게 흔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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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여기 있는 우물(?) 같은 게 마을의 수영장이라고 했다. 미키네스는 섬이기 때문에 수영을 못하면 죽고, 그래서 저기서 수영을 배운다고 한다. 섬의 첫 번째 수영대회가 저기서 열렸다고 한다. 우리 동네 매머드 커피 매장보다도 작아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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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적인 마을 소개가 끝나고 트레킹이 시작됐다. 날씨가 조금씩 흐려지지만 비가 올 것 같진 않다. 나름 페로에 3주 가까이 있었더니 구름만 봐도 비가 올지 말지 짬바가 좀 생겼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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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은 걸음이 느려도 상관없다. 중간중간 멈춰서 설명해 주는 구간이 있고, 가이드가 항상 사람들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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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네스 트레킹은 약간은 가파른 경사로에서 시작한다. 경사각이 20~25도 정도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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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페로의 날씨를 묻거든 이런 사진을 보여주자! 맑을까 흐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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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포인트까지 올라오면 '이 뒤로는 가이드를 통해서만 가능'이라는 푯말이 붙어있다. 그런데 미키네스 자체가 가이드 없이 투어를 할 수는 없는 곳이라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마 미키네스에 묵으며 투어 시간이 종료된 후 혼자 올라가는 사람이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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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는 길이 넓지만, 뒤로 갈수록 길이 좁아져 주의를 요한다. 한 가지 다행인 건 깎아지른 절벽은 아니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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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핀은 날이 추워 다 이동했고 몇 마리만 남아 있다고 했다. 원래 여기 널리고 널린 게 퍼핀인데, 미키네스 투어 핵심 중 하나는 퍼핀이기 때문에 한 마리 한 마리가 (다른 사람들에겐) 소중하다. 퍼핀을 이미 많이 보기도 했고... 혼자 뒤에서 영상을 찍으며 천천히 걷고 있는데, 퍼핀 한 마리가 주변에 와서 배회한다. 그래도 귀엽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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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퍼핀 사진 투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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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것도 하찮아 보이는 퍼핀. 그렇지만 미키네스의 진짜 매력은 풍경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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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퍼핀의 둥지 흔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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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없어 예전 것을 갖고 왔다. 이윽고 마지막 투어 스팟에 도착했는데 여기서도 퍼핀은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사람들 얼굴에 실망감이 스쳐가는 게 보인다. 원래 여기가 마지막 스팟이 아니라 1/2 지점쯤 되는 곳인데, 등대까지 가는 코스가 무너져 3년 가까이 출입이 막혀있는데, 언제 개장할지 모른다고 한다. 그런데 그러면 미키네스 투어 입장료는 좀 내려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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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끝에서 보는 뷰가 좋아 혼자 여유를 좀 부리려고 하는데, 가이드가 돌아가니 따라오라고 한다. 작년에는 여기 남아서 혼자 놀 수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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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가장 아쉬운 건 미키네스의 등대 너머로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미키네스의 진가는 등대가 아닌 그 뒤에 보이는 수평선과 지형에 있다. 여기 앉아서 과자 먹으면, 또 수평선을 멀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인데. (팔에 근육 아니고 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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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그 푯말이 있던 트레킹 코스 아 다다르자 '나는 오른쪽 길을 따라 내려갈 거고, 꼭 따라올 필요는 없으니 내려가도 좋다. 내 템포에 맞추지 않고 혼자 천천히 와도 된다.'라고 하길래 뒤에서 천천히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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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내외의 완만한 코스로 걷는데 전혀 문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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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섬 위가 반은 구름으로 뒤덮이고 또 반대쪽은 흐린 게 웃겨서 사진을 찍었다. 바다 쪽엔 먹구름이 없던데 땅이 있어서 그 위에만 구름이 생기는 건가? 아니 저건 땅에 있으니 안개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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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비만 안 오면 됐지. 어차피 볼 하이라이트는 거의 본 것 같으니 슬슬 길을 따라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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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다 보니 양을 키우는 농가에서 스프레이로 뭘 칠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페로 사람들은 1년에 양을 세 번 모은다고 하는데 예방접종, 털 깎기, 교체가 목적이라고 한다. 그중 '교체'는 무리의 리더가 늙으면 그 리더를 젊은 양으로 교체하고, 스프레이는 그 젊은 리더를 찾기 위해 표시한 거라고 한다. 그럼 그 리더는 왜 찾아야 하냐면, 양은 리더를 따라 무리 지어 다니는 습성이 있는데 빨간 스프레이가 표시된 양의 위치를 알면 무리들의 대략적인 분포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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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모양을 보아하니 곧 양을 풀어줄 것 같아 10분 정도 배회하다 발길을 돌렸는데, 딱 가장 사진 찍기 좋은 위치에 있다가 자리를 옮기니 양을 방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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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와 잠시 쉬려고 하는데 작년에 봤던 붉은 집이 보였다. 그때는 가족끼리 모여 집에 페인트를 칠하고 있었는데(새로 지은 집인가?), 그때 자기가 살 집을 저렇게 꾸미기도 하는구나라는 걸 보고 꽤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아빠가 단 게 당겼는지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자고 해서 The locals에 들어가 2 스쿱짜리 아이스크림을 하나 주문했는데 가격이 7천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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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먹은 이 핫도그가 35 kr.로 7천 원이었는데 아이스크림 가격이랑 똑같은 거 너무한 거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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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배까지 시간이 남아 근처 바닷가 쪽에 앉아 아빠랑 파도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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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가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었다. 나도 노년에 저런 삶을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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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간 내가 기념품으로 살려다가 못 산 기념품처럼 생긴 집!? 트롤의 집이라고 지어놓은 게 아닐까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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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바구르로 돌아갈 배가 들어왔다. 미키네스에서 나갈 짐이 있는 것 같은데, 경사가 높아 이렇게 특별한 리프트를 사용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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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 순서가 다가와 탑승을 하는데 아까 본 보더콜리(?)가 함께 탔다. 아마 양치기를 위해 잠시 들어오는 것 같다. 배를 탔는데 날도 추워지고 체력도 빠져 실내에 안고 싶었는데, 아빠가 밖에 앉자고 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밖으로 갔다. 개 추웠다. 오는 내내 아빠를 원망했다. 물론 춥게 입고 간 내 잘못이긴 한데...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로 진짜 개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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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바구르에는 식당이 많지 않아 저녁에 뭘 먹을까 하다가 마트에 가서 립아이 두 덩이를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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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2층으로 올라갔는데 도저히 저 상태로는 자기가 어려울 것 같아 침대를 가로로 바꾸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페로의 열아홉 번째 밤이 진다.




페로 제도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airspace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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