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6 맑다가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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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미키네스로 가는 선착장으로 향했다. 미키네스행 배는 80인승인데 이미 사람들이 꽤 줄을 서있었다. 밖에서 앉아있을 수 있는 자리가 적기 때문에 미리 가서 줄을 서는 편이 좋다.
출발 후 곧 배의 왼편에 어제 본 드랑가니르와 틴드홀무르가 나타났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드랑가니르는 멀리서 보면 전혀 감흥이 없다.
물끄러미 미키네스 쪽을 바라보니 섬 위에는 원반형의 구름이 떠있고, 그 위에는 낮에 뜨는 달이 있었다. 한동안 그 풍경에 매료되어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저쪽은 우리가 가고 있는 곳인데 그 위에 구름이 끼고 있다는 뜻이라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우리가 타고 온 배를 타고 나오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대다수는 오늘 아침에 입도했겠지만, 여기서 1박을 머문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여기 머물면 밤에 혼자 트레킹 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여하튼, 미키네스를 투어 하기 위해서는 이 첫 번째 계단 구간을 통과해야 한다. 크게 어렵진 않다.
올라오면 처음으로 마주하는 뷰. 원래는 저 앞에서 투어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는데, 오늘은 아무도 없다. 뭔가 이상해서 마을을 한 바퀴 둘러봤는데도 아무도 나오지 않아 개인적으로 하는 걸로 바뀌었나?라고 생각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미키네스의 유일한 상점 겸 인포 겸 숙박을 겸하고 있는 'The Locals'.
미키네스의 남녀 공중화장실. 입장료가 인당 8만 원에 육박하는 만큼 관리가 잘 되어있다.
화장실을 다녀왔더니 작년에 본 그 투어 가이드가 황급히 아래쪽으로 내려와 우리를 하얀 집으로 안내했다. 아마 투어 집합소가 밖에서 여기로 바뀐 것 같다.
입구의 문턱을 만든 것 같은데 꼬마들이 장난을 쳐놓은 게 분명하다. 하긴 이렇게 콘크리트에 장난을 남길 수 있는 건 목재가 대부분인 미키네스에서 흔치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내부 분위기는 교실과 비슷하다. 들어가서 반반을 나눠 앉았는데, 40명씩 두 팀으로 나누어 투어를 진행하는 것 같다. 다 같이 우르르 밖으로 나가 트레킹 초입으로 이동했다.
보통 미키네스의 역사, 마을 등을 설명해 주고 시작하는데 작년에 아내와 왔을 땐 땡땡이치는 학생처럼 뒤에서 과자를 먹으며 마을을 따로 구경했다. (가이드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어느 정도의 이탈이 보장되는 분위기임) 이번에는 설명을 좀 들어봤는데 몇 가지 흥미 있는 얘기들이 있었다.
첫째, 이 멋진 아저씨는 이탈리아에서 페로로 옮겨왔는데, 누군가 '드라이한 양고기 맛은 어떠냐?'라고 묻자 '나는 20년간 채식주의자였는데 페로에서는 생선과 고기가 주식이라 잘못 온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둘째, 우리가 여기 있는 건 행운이라고 했다. 기상이 악화되어 어제 미키네스행 배가 취소됐는데, 내일도 배가 취소될 거라고 했고 여름 시즌에 이만큼 비가 온 게 흔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셋째, 여기 있는 우물(?) 같은 게 마을의 수영장이라고 했다. 미키네스는 섬이기 때문에 수영을 못하면 죽고, 그래서 저기서 수영을 배운다고 한다. 섬의 첫 번째 수영대회가 저기서 열렸다고 한다. 우리 동네 매머드 커피 매장보다도 작아 보이는데...
대략적인 마을 소개가 끝나고 트레킹이 시작됐다. 날씨가 조금씩 흐려지지만 비가 올 것 같진 않다. 나름 페로에 3주 가까이 있었더니 구름만 봐도 비가 올지 말지 짬바가 좀 생겼다고 할까?
트레킹은 걸음이 느려도 상관없다. 중간중간 멈춰서 설명해 주는 구간이 있고, 가이드가 항상 사람들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키네스 트레킹은 약간은 가파른 경사로에서 시작한다. 경사각이 20~25도 정도 되려나?
누군가 페로의 날씨를 묻거든 이런 사진을 보여주자! 맑을까 흐릴까?
1차 포인트까지 올라오면 '이 뒤로는 가이드를 통해서만 가능'이라는 푯말이 붙어있다. 그런데 미키네스 자체가 가이드 없이 투어를 할 수는 없는 곳이라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마 미키네스에 묵으며 투어 시간이 종료된 후 혼자 올라가는 사람이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초반에는 길이 넓지만, 뒤로 갈수록 길이 좁아져 주의를 요한다. 한 가지 다행인 건 깎아지른 절벽은 아니라는 점.
퍼핀은 날이 추워 다 이동했고 몇 마리만 남아 있다고 했다. 원래 여기 널리고 널린 게 퍼핀인데, 미키네스 투어 핵심 중 하나는 퍼핀이기 때문에 한 마리 한 마리가 (다른 사람들에겐) 소중하다. 퍼핀을 이미 많이 보기도 했고... 혼자 뒤에서 영상을 찍으며 천천히 걷고 있는데, 퍼핀 한 마리가 주변에 와서 배회한다. 그래도 귀엽긴 하네.
2016년의 퍼핀 사진 투척.
나는 것도 하찮아 보이는 퍼핀. 그렇지만 미키네스의 진짜 매력은 풍경에 있지.
이건 퍼핀의 둥지 흔적이라고 한다.
사진이 없어 예전 것을 갖고 왔다. 이윽고 마지막 투어 스팟에 도착했는데 여기서도 퍼핀은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사람들 얼굴에 실망감이 스쳐가는 게 보인다. 원래 여기가 마지막 스팟이 아니라 1/2 지점쯤 되는 곳인데, 등대까지 가는 코스가 무너져 3년 가까이 출입이 막혀있는데, 언제 개장할지 모른다고 한다. 그런데 그러면 미키네스 투어 입장료는 좀 내려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도 끝에서 보는 뷰가 좋아 혼자 여유를 좀 부리려고 하는데, 가이드가 돌아가니 따라오라고 한다. 작년에는 여기 남아서 혼자 놀 수 있었는데...
그렇지만 가장 아쉬운 건 미키네스의 등대 너머로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미키네스의 진가는 등대가 아닌 그 뒤에 보이는 수평선과 지형에 있다. 여기 앉아서 과자 먹으면, 또 수평선을 멀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인데. (팔에 근육 아니고 살입니다.)
아까 그 푯말이 있던 트레킹 코스 아 다다르자 '나는 오른쪽 길을 따라 내려갈 거고, 꼭 따라올 필요는 없으니 내려가도 좋다. 내 템포에 맞추지 않고 혼자 천천히 와도 된다.'라고 하길래 뒤에서 천천히 따라갔다.
1시간 내외의 완만한 코스로 걷는데 전혀 문제는 없다.
갈수록 섬 위가 반은 구름으로 뒤덮이고 또 반대쪽은 흐린 게 웃겨서 사진을 찍었다. 바다 쪽엔 먹구름이 없던데 땅이 있어서 그 위에만 구름이 생기는 건가? 아니 저건 땅에 있으니 안개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비만 안 오면 됐지. 어차피 볼 하이라이트는 거의 본 것 같으니 슬슬 길을 따라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내려오다 보니 양을 키우는 농가에서 스프레이로 뭘 칠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페로 사람들은 1년에 양을 세 번 모은다고 하는데 예방접종, 털 깎기, 교체가 목적이라고 한다. 그중 '교체'는 무리의 리더가 늙으면 그 리더를 젊은 양으로 교체하고, 스프레이는 그 젊은 리더를 찾기 위해 표시한 거라고 한다. 그럼 그 리더는 왜 찾아야 하냐면, 양은 리더를 따라 무리 지어 다니는 습성이 있는데 빨간 스프레이가 표시된 양의 위치를 알면 무리들의 대략적인 분포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근데 모양을 보아하니 곧 양을 풀어줄 것 같아 10분 정도 배회하다 발길을 돌렸는데, 딱 가장 사진 찍기 좋은 위치에 있다가 자리를 옮기니 양을 방사하기 시작했다.
내려와 잠시 쉬려고 하는데 작년에 봤던 붉은 집이 보였다. 그때는 가족끼리 모여 집에 페인트를 칠하고 있었는데(새로 지은 집인가?), 그때 자기가 살 집을 저렇게 꾸미기도 하는구나라는 걸 보고 꽤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아빠가 단 게 당겼는지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자고 해서 The locals에 들어가 2 스쿱짜리 아이스크림을 하나 주문했는데 가격이 7천 원이었다...
작년에 먹은 이 핫도그가 35 kr.로 7천 원이었는데 아이스크림 가격이랑 똑같은 거 너무한 거 아니냐고~
돌아가는 배까지 시간이 남아 근처 바닷가 쪽에 앉아 아빠랑 파도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밖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가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었다. 나도 노년에 저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이간 내가 기념품으로 살려다가 못 산 기념품처럼 생긴 집!? 트롤의 집이라고 지어놓은 게 아닐까 추측한다.
소르바구르로 돌아갈 배가 들어왔다. 미키네스에서 나갈 짐이 있는 것 같은데, 경사가 높아 이렇게 특별한 리프트를 사용하는 것 같다.
탑승 순서가 다가와 탑승을 하는데 아까 본 보더콜리(?)가 함께 탔다. 아마 양치기를 위해 잠시 들어오는 것 같다. 배를 탔는데 날도 추워지고 체력도 빠져 실내에 안고 싶었는데, 아빠가 밖에 앉자고 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밖으로 갔다. 개 추웠다. 오는 내내 아빠를 원망했다. 물론 춥게 입고 간 내 잘못이긴 한데...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로 진짜 개 추웠다.
소르바구르에는 식당이 많지 않아 저녁에 뭘 먹을까 하다가 마트에 가서 립아이 두 덩이를 구매했다!
저녁을 먹고 2층으로 올라갔는데 도저히 저 상태로는 자기가 어려울 것 같아 침대를 가로로 바꾸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페로의 열아홉 번째 밤이 진다.
페로 제도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