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60대 아빠, 30대 아들의 페로제도 여행 21밤 20

8/27 비

by 페로 제도 연구소
IMG_1686.gif
IMG_1802.jpeg

그간 날씨가 며칠 좋았다 싶더니 다시 비가 주룩주룩 온다. 바람도 미친 듯이 불고 비가 하루 종일 예정되어 있어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아점으로 뭘 먹을까 하다 가사달루르 마을의 유일한 식당인 Gásadalsgarður에 가기로 했다.


IMG_1690.jpeg
IMG_1693.jpeg
IMG_1689.gif

차를 주차한 뒤 내렸는데 '지금 영업 중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페로의 식당들이 으레 그렇듯 마을에 위치한 식당들은 밖에서만 보면 감이 잘 안 오는 경우가 있다.


IMG_1700.jpeg
IMG_1702.jpeg
IMG_1709.jpeg

문을 열고 들어가니 모던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의 깔끔한 식당이 나왔다. 우리가 첫 손님인 것 같다. 주인은 원하는 곳 아무 데나 앉으래서 가운데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는데, 다시 오더니 '예약이 있는 걸 까먹었다'라며 미안하지만 자리를 옮겨달라고 했다.


IMG_1723.jpeg

날씨가 좋을 때는 밖의 테라스에서 먹는 식사가 일품일 것 같다.


IMG_1704.jpeg

메뉴판을 보니 주력이 조리보다는 빵과 햄, 해산물 중심인 것 같아 다양한 메뉴를 고루 먹을 수 있는 것을 시켰다.


IMG_1730.jpeg

175 kr.로 3만 5천 원 정도의 식사. 하 역시 비싸긴 해...

IMG_1737.jpeg
IMG_1740.jpeg

190 kr.로 3.8만 원짜리 Fish 플래터. 피시 앤 칩스와 새우, 감자가 나온다.


IMG_1736.jpeg

그런데 먹다 보니 연어 위에 뿌려져 있는 소스가 너무 맛있는 게 아닌가! 머스터드소스 베이스 같긴 한데 좀 더 싱그러운 향이 났다. 그런데 그게 튀김과 생연어에 너무너무 잘 어울려 주방에 가서 소스 이름이 뭔지 물었다.



IMG_1746.jpeg

소스 이름은 '딜'이라고 한다. 시판 소스였어요...?


IMG_1716.jpeg

후식으로 시킨 만 원짜리 당근 케이크. 원래 당근 케이크 안 먹는데 호기심에 시켜봤다가 위에 얹은 소스 때문에 또 한 번 기겁할 뻔했다. 깊으면서도 산뜻하며 우아한 맛이 났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이런 소스를 먹어본 적이 없어 다시 주방으로 가 이건 무슨 소스냐 물어봤더니 크림치즈 소스에 뭔가를 더 섞은 거라고 한다. 뭘 섞었는지 말을 안 해주는 걸 보니 아마 비법소스 같은 건가?


IMG_1758.gif

소스의 정체를 알았으니 마트에 가서 한국에 가져갈 소스를 몇 개 구매하기로 했다. 가사달루르에는 마트가 없기 때문에 공항이 있는 소르바구르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아까보다 안개가 훨씬 심하게 껴서 운전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IMG_1770.jpeg

마트에서 딜소스를 구매해 계산대로 갔는데 비자 카드(아마 외국 카드 결제 시스템 같은 거)를 쓸 수 없다고 한다. 대신 덴마크에서 발행한 카드로는 결제가 된다고 하는데 그런 게 있을 턱이 없지. 페로 올 때 입장료 목적으로 현금을 좀 환전해 둔 것이 있었는데, 마침 그건 내일 이후로는 쓸 곳이 없으니 전부 털기로 했다. 다행히 결제 완료! 그리고 한 가지 더 신기한 거. 오늘도 캐셔는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린 친구가 담당하고 있다. 근데 옆에 부모뻘로 보이는 사람이 함께 있는 걸로 봐선, 업무 경력을 쌓고 있는 것 같다.


IMG_1774.gif

무료 산 터널을 넘어 다시 집으로! 여기는 1차선 터널이지만 짧고 너비도 넓은 편이라 운전에 큰 부담은 없다. 출구 나갈 때만 조심하면 된다.


IMG_1776.jpeg
IMG_1778.gif

돌아와 커피를 내리는데 창 밖으로 갑자기 웬 오리가 땅을 열심히 쪼고 있는 게 보인다. 벌레는 아닐 건데 오리가 원래 풀을 뜯어먹던가? 아니, 새가 원래 풀을 뜯어먹나...?


IMG_1798.jpeg

에어비앤비에서 숙소가 참 고요해 보여 예약했는데, 날씨가 흐리기까지 하니 더 고요하고 적막하게 느껴진다.


IMG_1800.gif

숙소에서 좀 쉬다가 작년에 묵었던 에어비앤비의 주인인 존에게 인사를 하러 혼자 나왔다. 숙소까지 들어오는 길이 비포장도로인 데다 차가 들어오면 비켜줄 곳이 없어 긴장하며 운전대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IMG_1802.jpeg

안개가 끼면 뷰는 없지만 그만큼 신비함이 더해진다.


IMG_1828.gif

존네 집에 도착했다.


IMG_1829.jpeg

존은 쥐덫으로 초인종을 만들었다. 작년에 왔을 때 얘기한 바로는 이것뿐 아니라 집 자체를 본인이 지었다고 했다. 아빠가 목수였다고.


IMG_1833.jpeg

아쉽게도 존은 집에 없었다. 존네 집 사진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숙소로 돌아왔다.


IMG_1846.jpeg
IMG_1865.jpeg

돌아오는 길에 Cafe zorva에 들러 저녁과 맥주를 테이크 아웃 했다. 냉장고의 많은 맥주 중 뭘 마셔볼까 하다가 물라포수르에 있으니까 물라포수르 맥주를 사봐야겠지? 마침 마지막 한 병이라 더 유니크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페로의 맥주는 손님에게 병을 따서 판매를 하도록 되어 있어 음식점에서 맥주만 사 갖고 나오는 게 안 되는데, 그것도 모르고 냅다 맥주를 들고 나와버렸다. (근데 주인도 딱히 제지는 안 했다.)


IMG_1849.gif

식당 앞에서 바라보는 공항 뷰. 안개가 이렇게 껴도 비행기는 뜬다.


IMG_1850.jpeg

딱히 민중가요를 좋아하진 않지만, 내게 아이슬란드와 페로에서 운전할 때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는 이거다.


IMG_1824.jpeg

차를 내일 반납해야 하기 때문에 주유도 가득 채웠다. 40 리터를 주유했고, 가격은 9만 5천 원가량 나왔다. 대략 따져보면 1리터에 2,400원 정도 한다. 정말 비싸다 비싸...


IMG_1854.jpeg
스크린샷 2024-12-15 오전 3.42.45.png

돌아오는 길에 본 Postman's Trail의 시작점. 주차장도 없고 표지판도 낡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게 트레킹 코스라고? 생각되는 곳이다. 일단 경사가 너무 심해 이게 트레킹을 할 수는 있는 곳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곳인데 코스가 지그재그인 것만 봐도 쉽지 않음이 느껴진다. 이 코스는 한 때 고립되었던 가사달루르 마을로 편지를 배달하기 위해 이용했던 고전 루트라고 한다. 아마 여행 중 일반적으로 가는 트레킹 코스 중 난이도로 치면 1~2위를 다투지 싶다.


A44D0597-59B5-4FC4-BF21-CA2D6F8926D7_1_201_a.heic

아니 근데 여기 길이 있는 거 맞아요...? 길이 더 안 보이는데...?


IMG_1863.jpeg
IMG_1870.jpeg

쉬다가 저녁시간이 되어 오랜만에 아빠랑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빠가 제일 좋았던 곳은 드랑가니르, 칼소이라고 한다. 제일 맛있었던 음식은 토르스하운의 Haps Burgerbar였고, 클락스비크의 피시 앤 칩스 푸드트럭이라고 한다. 나한테 서운한 게 있냐고 물어봤는데 하나도 없다고 했고, 나는 두어 가지를 말했다. 작게나마 아빠에 대해 더 알 수 있는 시간이었고, 일생에 다시없을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낸 것 같다는 안도감이 든다.


그렇게 페로의 스무 번째 밤이 진다.




페로 제도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airspace2010/14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