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달라진 건 없다.
아마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도박이었던 '페로에서 파리에 도착 후, 공항 밖으로 나갔다가 4시간 내 다시 체크인해서 인천행 비행기 타기'는 무사히 성공했다. 페로 날씨가 악화되어 두어 시간만 지연됐어도 어려웠을 텐데, 역시 안개가 껴도 이착륙하는 믿음의 Atlantic Airways!
한 번도 아빠랑 둘이 이렇게까지 길게 여행을 가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어 처음에는 기대보다 두려움이 좀 더 앞섰던 것 같다. 물론 그 두려움은 트레킹만 하면 시야에서 사라지는 아빠 덕분에 '아빠 어디 갔어'를 찍으면서 없어졌다. 한편으로는 아직 30대인 나보다 더 쌩쌩하다는 뜻도 되니까 아빠가 건강하다는 뜻이겠지.
언젠가 그런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신의 부모님은 어떤 음악을 좋아하나요?
그때는 이 질문에 한참을 대답하지 못했다. 애초에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주제니까. 하지만 이제는 대답할 수 있다. 아빠는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를 좋아한다. 아빠는 감자튀김은 컬리 프라이보다는 레귤러 컷을 좋아하고, 고기 굽기는 레어보다는 웰던을 선호한다. 아빠는 아침에 나가 동네를 한 바퀴 걷는 걸 즐기고 매일 사과를 먹으려 노력한다. 아빠는 케밥보다는 피자, 진한 커피보다는 연한 커피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이게 아빠에게 어떤 도움이 될 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 스스로 안도감은 들겠지.
여행이 끝나고 우리의 관계가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우리는 원래 사이가 좋았고, 주에 서너 번은 통화를 하며 한두 달에 한 번은 만나 밥을 먹는다. 그저 아빠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됐다는 정도?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은 죽을 때까지 가져갈 추억을 서로에게 만들어줬다는 점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여행을 다녀와 아빠의 생일이 다가왔다. 이번 선물은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우리의 추억을 선물하기로 했다.
페로에서 방문한 장소 순서대로 달력을 만들었다. 매 달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페로에서 함께 보낸 시간도 함께 떠올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제작했다. 페로 사진 많으니까 한 3~4년 정도는 이제 아빠 선물로 뭘 할지 고민 안 해도 되겠다(비용도 저렴하다!). 언젠간 엄마도 같이 페로에 다시 갈 날을 고대하며, 21 밤의 여행기를 마친다.
P.S. 애플에 새로 추가된 편집 기능 '클린업' 진짜 좋다. 두 번 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