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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파걸 Oct 24. 2021

와인 어떻게 시작할까? 일단 쇼핑부터!

명품 쇼핑보다 즐거운 와인 쇼핑



인생 와인을 만난 뒤, 와인이란 게 생각보다 더 맛있고 매력적인 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홀린 듯이 매일 퇴근길에 와인 한 병을 샀다.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매장은 '백화점 와인 코너'였다.

와인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요즘 와인에 푹 빠져서 백화점에서 매일 한 병씩 사고 있다고 말했더니 그녀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한 마디 했다.


야, 너 돈 많아?


그녀는 두 가지 이유로 무척 놀랐다고 한다.


첫 번째, 백화점은 데일리 와인보다 고가의 와인들이 많은 곳인데 와인 초보라는 애가 왜 굳이 거기서 쇼핑을 하지?

두 번째, 행사 기간도 아닌데 무슨 와인을 그렇게 많이 사? 


친구의 말에 번쩍 정신이 들어 카드내역을 살펴보니 2주 동안 결제한 와인 값이 1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한 병에 10만 원 가까이하는 와인을 거의 매일 마셨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어휴, 하마터면 월급을 통째로 와인에 탈탈 털어 넣을 뻔했네. 


그녀는 나에게 일단 대형 마트에서 판매하는 와인부터 시작해보라고 했다. 대형 마트는 다른 와인 판매처에 비해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고, 데일리급 와인부터 고가의 와인까지 구성이 다양하게 있으니 경험할 수 있는 와인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최대한 다양한 와인을 접해봐야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와인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봄/가을에는 대형마트에서 '장터'라는 정기 세일 행사를 하는데, 와인을 최대 50~70%까지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때 몰아서 사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것도 알려줬다. 

그녀는 안 그래도 와인을 마시다 보면 입맛이 점점 높아져서 돈 들어갈 일이 많으니 최대한 행사 기간에 싸게 사야 한다고 열을 올리며 말했다. 내가 어지간히 답답했나 보다. 




그녀의 조언대로 마트에서 와인 쇼핑을 시작했는데, 와인의 가격대가 갑자기 확 낮아지니 구매 욕구가 활활 타올랐다. 겨우 하나 살 수 있을까 말까 하던 돈으로 대여섯 병은 거뜬히 살 수 있으니 이 것도 집어 들게 되고 저 것도 집어 들게 되고.. 그러다 보니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스파클링 와인, 주정강화 와인, 디저트 와인 등 온갖 종류의 와인을 다 사게 되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뭔가 '알찬 구성'을 완성했다는 뿌듯함과 충만함이 느껴졌다. 


와인 쇼핑을 할 때 느끼는 이런 소소한 즐거움은 생각보다 꽤 많다. 


예전에 마셨을 때 맛있다고 생각했던 와인이 세일을 해서 박스채로 구입했을 때도 만만치 않은 뿌듯함을 느꼈다. 맛이 검증된 와인을 두고두고 넉넉하게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어찌나 든든하던지. 
맛있고 가격도 착한 와인을 찾았을 때는 뭔가 보물을 찾은듯한 느낌이 들어 무척 기쁘다. 
레이블이나 병 모양이 예쁜 와인을 사는 것도 참 좋다. 
'탄생빈'(선물 받는 사람과 나이가 같은 와인)과 같이 의미 있는 와인을 구매할 때는 뭔가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탄생빈 와인을 구매한다면 그 와인과 아기는 함께 나이 들어갈 것이다. 성인이 된 날에 개봉해서 함께 마시면 어떤 기분이 들까?
언젠가는 한 번 마셔보고 싶다고 생각한 비싼 와인이 갑자기 어마 무시하게 할인을 해서 득템을 하는 경우도 있다. 행운이 준 선물 같은 느낌이다. 
'5대 샤토'나 '슈퍼 투스칸' 등 명성이 자자한 와인들을 살 때는 뭔가 귀한 명품을 구매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새로운 와인에 도전하는 것도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와인이 궁금하다. '남아공 와인은 한 번도 안 마셔봤는데 도전해볼까?', '미국 카베르네 소비뇽만 마셨는데 이번엔 미국 진판델을 마셔볼까?' 이런 식으로 점점 와인의 세계를 확장해나간다.  


나는 와인을 사는 것이 백화점에서 옷이나 가방을 사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 





마트나 백화점 외에도 와인을 살 수 있는 장소는 꽤 다양하다. 요즘은 편의점의 와인 구성도 무척 다양해졌고, 대형 와인 전문샵, 와인 아울렛, 전통시장 등 새로운 와인 판매처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어디가 가장 와인의 가격이 저렴한가?'에만 집중하면서 이런 와인 판매처들을 힘들게 돌아다녔는데 판매처별로 각각 장단점이 있다는 걸 깨달은 뒤로는 그냥 상황이나 필요에 맞춰서 방문한다. 그럼 와인 판매처들은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 



편의점


요즘 와인 초보자들에게 가장 핫한 판매처가 아닌가 싶다.

편의점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접근성'이다. 게다가 지난해 주세법이 개정되면서 온라인을 통해 와인을 주문하고, 편의점에서 픽업하는 '스마트 오더'가 가능해져 더욱 편리해졌다. 가격은 대체로 마트보다는 비싸고 백화점보다는 저렴한 편이다.

 

예전에는 종류도 빈약하고 주로 1~2만 원대의 저렴한 와인만 판매했는데, 요즘에는 1만 원 이하의 초저가 와인부터 3~5만 원 이상하는 꽤 괜찮은 와인들까지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다.

'투핸즈 엔젤스 셰어(Two Hands, Angel's share)' 같은 인기 와인들이 편의점 진열대에 놓인 것도 종종 볼 수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편의점에는 '디아블로'나 '마주앙'같은 와인 정도만 있었는데 말이다.

특히 '이마트 24'는 거의 와인 전문샵을 옮겨놓은 것처럼 와인 코너의 규모가 크다. 



대형 마트


접근성도 좋고 와인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기 때문에 와인을 사기에 가장 무난한 곳이다.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곳이기에 가끔 미끼 상품으로 현지 가격보다도 저렴한 와인들이 나올 때도 있다. 정기 장터 때에도 '줄 서기'라는 이벤트를 하는데, 선착순으로 유명한 고가의 와인을 놀랄 만큼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한다.


정기 장터 행사 시, 매장 규모별로 와인 종류나 수량은 조금씩 다르다.  A급 매장에는 행사 중인 와인 전품목이 들어가지만, B, C급 매장에는 일부만 들어가게 된다.

예) 이마트 A급 매장 : 여의도, 영등포, 마포, 용산, 성수, 역삼, 자양, 분당, 양재, 죽전
 


단점으로는, 일부 대형 수입사들 와인만 구비되어 있어 내추럴 와인이나 RM 샴페인(기업형이 아닌 부티크형 샴페인) 등 재미있거나 독특한 와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마트 와인은 다소 지루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설/추석 선물 세트 등이 아닌 이상 선물 포장이나 택배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는다.



백화점


백화점은 장점과 단점이 무척 명확하다.


일단 백화점은 주로 '선물용 와인'을 취급하는 곳이다. 그래서 데일리 와인보다는 주로 고가의 와인이나 유명한 와인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와인 구성이 다양하지 않다. 가격도 다소 비싼 편이다.

하지만 그만큼 와인의 보관 상태는 좋은 편이다. 특히 고가의 와인은 따로 셀러 룸에 보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마트에서 구하기 힘든 고가의 와인이나 희귀한 와인을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선물 포장이나 몇 병 이상 구입하면 택배로 배송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처음에 나는 백화점에서만 와인을 구매했기 때문에 모든 판매처에서 택배 서비스를 제공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대형마트 장터에 가서 와인을 한 가득 산 뒤, 택배로 보내달라고 했다가 직원도 나도 당황한 적이 있다.)


참고로 백화점에는 '백화점 소속'이 아닌 '와인 수입사'에서 나온 판매 직원들이 많다.

대부분 자신이 소속된 수입사의 와인을 추천하기 때문에, 추천받는 와인이 한 수입사의 와인으로만 한정될 수 있다.



와인 전문샵


와인 전문샵의 경우 사장님의 취향이 크게 반영되며, 주요 고객층에 따라 특화되는 라인이 생긴다. 즉, 콘셉트가 명확하다는 뜻이다. 마트나 백화점에서 구할 수 없는 독특하고 매력 있는 와인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가격은 샵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와인 수입사나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대형 와인 전문샵도 많다.


와인 앤 모어 : 와인 수입사 '신세계 L&B'에서 운영  
와인나라 : 와인 수입사 '아영 FBC'에서 운영
와인 웍스 : 현대백화점에서 운영 + 다이닝 제공
무학 주류마켓 : 와인 수입사 '무학주류'에서 운영 + 다이닝 제공


개성 있는 와인 전문샵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건 참 반가운 일이다.


'와인 웍스'나 '무학 주류마켓'은 와인 판매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에서 음식도 제공하고 있는데, 구입한 와인을 들고 가면 콜키지 비용 없이 와인과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다.



와인 아울렛


대부분 교외에 위치해 접근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매장 규모가 큰 만큼 품목이 무척 다양한 편이다. 그리고 좋은 빈티지들이 대량으로 입고되기 때문에 구하기 힘든 빈티지를 찾을 때 가장 먼저 찾게 된다.


솔직히 행사 시즌이 아닐 때 방문하면 할인율이 아주 크지는 않다. 보통 와인 전문샵보다 조금 저렴한 정도랄까? 그래서 교외로 차까지 몰고 간 것에 비해서는 실망할 수도 있다.

반대로 행사 시즌에는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주차도 어렵고 계산하는데도 한 시간씩 걸리기도 한다.


국내 유명 와인 아울렛 

- 김포 떼루아 와인 아울렛
- 고양 라빈 리커스토어
- 춘천 세계 주류 마켓
- 양평 와인 픽스 어반 아울렛 (2021년 9월 오픈)


김포에 있는 '떼루아 아울렛'은 지역화폐인 '김포 페이' 사용이 가능해서 가격 메리트가 더 좋아졌다.


양평에 있는 '와인 픽스 어반 아울렛'은 대형 와인 수입사 '나라셀라'에서 올해 새로 오픈한 아울렛이다. '나라셀라'는 프리미엄 미국 와인에 무척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콜긴', '스크리밍 이글' 등 미국 컬트 와인 라인업이 무척 화려했다.



새마을 구판장 


광진구 자양동이니 아울렛에 비해서는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전통시장 내부에 있어 주차도 어렵고, 도보로 이동해야 하는 거리도 꽤 멀어서 와인을 많이 구매했을 경우, 주차장까지 걸어가기 조금 힘들다.

하지만 기본 가격 자체가 무척 저렴한 편인데 '온누리 상품권'까지 사용 가능하니 새로운 와인의 성지로 떠오를 만하다. 특히 묶음 와인 중에 굉장히 저렴한 게 많다.


다만 생각보다 규모가 큰 편은 아니며, 아주 고가의 와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면세점


솔직히 면세점에서 와인을 사는 건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어마 무시한 주류세에 비해 의외로 와인 가격이 크게 저렴하지 않다. 오히려 국내에서 할인 행사하는 것보다 비싼 것도 있다.


샴페인은 간혹 저렴한 편인데, 가격 메리트가 있는 것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돔 페리뇽(Dom perignon)'이다. 국내 판매가는 20만 원대 중후반 정도인데 면세점에서는 약 10~20% 정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면세점 매장에서 직접 구매하는 것보다 사전예약으로 주문하는 것이 조금 더 저렴하다.) 





처음에는 무난한 '대형마트'

와인이 급하게 필요할 때는 '편의점' 

와인을 선물할 때는 '백화점' 

마트에 없는 와인을 구하고 싶으면 '와인 전문샵' 

근교 드라이브하면서 기분전환도 하고 와인도 적당한 가격에 사고 싶으면 '와인 아울렛'


이런 식으로 필요에 따라 적합한 판매처를 찾아가자. 


아, 글을 쓰다 보니 나도 와인 쇼핑이 하고 싶어 진다. 일단 가득 찬 와인 셀러를 조금은 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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