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와 함께 하는 작가 자의식 생성기
"생각해보면, 굳이 자기표현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사람은 보통으로 당연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뭔가 표현하기를 원한다. 그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자연스러운 문맥 속에서 우리는 의외로 자신의 본모습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10p)
5. 무엇을 써야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쓰고 싶다. 이 이야기를 말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들면 그걸로 쓴다. 모든 걸 다 담으려고 애쓰기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꺼내둔다.
"좋은 세상. 더 나은 세상."을 내가 만들겠다고 이것도 넣고 저것도 넣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말하고 싶다라고 하며 소설을 쓴다.
이건 이제 웹소설이 아닌 경우이고, 웹소설은 또 말이 다르다. 원하는 바가 뚜렷하다 보니까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상업소설이지 않은가.
흥분감! 재미! 사이다! 유쾌! 선정적인 것!
이렇게 있다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이미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흥분감! 모험!'은 좋아하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다. 흥분되는 것, 판타지, 모험 이런 것들을 더하기 보다는 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거는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건 도전해보고 싶다. 이건 써보고 싶다. 이런 마음을 가지니 쓸 거리가 착 앞으로 나왔다.
무엇을 쓸지 생각하기 전에 나라는 인물을 보게 되는데 그러면 정말 뒤죽박죽이다. 어디까지가 밑바닥인지도 모를 깊은 내면에는 너무 어두워서 들여다보기 어렵다. 또 윤리적 안전선도 없다. 그럼 누군가를 상처주는 글을 쓰게 된다. 그게 내가 되기도 하고 남이 되기도 한다.
이때 하루키는 탁월하다.
"생각해보면, 굳이 자기표현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사람은 보통으로, 당연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맞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뭔가 표현하기를 원한다. 그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자연스러운 문맥 속에서 우리는 의외로 자신의 본모습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결론적으로, 무엇을 써야 하나?
- 아무것도 안/못 쓰는 나를 상상해본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