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단어로 소설 써보기] 1. 키스, 냄비, 탄생

부제 : 나의 탄생 설화

by 김주렁

내가 나로서 오롯이 탄생하게 된 것은 탯줄이 잘려나간 생물학적 탄생 이후 이십 년은 족히 지난 후의 분식집에서였다. 탄생 이전의 나는 옅은 사람이었다.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도, 그렇다고 특출 나게 빛나지도 않는, 주변 사람들과 딱 필요한 정도로만 가깝게 지내는 존재. 그것이 나라는 사람에게 주어진 사명인 양 살아오는 데에 나는 별다른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 옳은 표현 이리라.


"사람들은 키스에 왜 그렇게 깊고 진한 의미를 담게 된 걸까? 서로의 손이, 볼이, 이마가 맞닿은 것처럼 입술과 입술이 맞닿은 것뿐이잖아."

변변한 간판도 없는 시장 골목의 분식집에서 라면과 주먹밥을 먹으며 다희는 나에게 물었다. 다희는 이런 시작점 없는 대화의 귀재였다. 여기저기 찌그러져 되레 완만한 곡선을 그리게 된 양은냄비와 여느 분식집에나 있는 정체모를 초록색 접시에 놓인 주먹밥을 앞에 두고 그녀는 대뜸 키스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입술은 결국 내 안으로 들어오는 입구 역할이니까. 물론 생물학적으로 엄밀히 따지자면 신체 내부는 아니고 소화계 내부지만 말이야. 아무튼 추상적으로 생각하면 서로의 깊은 내면까지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됐다는 합의나 약조 같은 게 아닐까? 사람은 결국 사회와 관계의 동물이니까"

다희는 주먹밥을 집으려는 나를 보고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한 논리지만, 너한테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어. 너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로 관심 없는 거 아니었어?"

맞는 말이었다. 지금까지의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것이 삶의 신념이자 사명인 양 살아왔다. 이제 와서 사회와 관계라는 단어에 늦바람 들 이유도 없었다. 혼자 느긋하게 학교 수업을 듣고, 강의 시간이 끝나면 집에 오고, 이따금 다희에게 붙잡혀 밥을 먹거나 카페에 끌려가 하릴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다.

그런데 내가 내 일상을 떠올리는데 언제부터 다희가 이렇게 한 장면을 차지하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일순간 온몸이 저릿했다. 손에 힘이 축 빠지더니 젓가락이 경종을 울리는 것 마냥 맑은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너 또 다른 생각 했지? 이모. 여기 젓가락 하나만 더 주세요."

혼자 조용히 살아오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도록 나를 가두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먹지 같던 인생에 다희는 실금을 그었다. 그 실금은 소리도 나지 않을 만큼 서서히 종이를 찢더니 그날 분식집에서 마침내 내 마음의 먹지를 부욱하고 찢었다.

"그러게. 다희 너라서 그런가?"

이번엔 다희가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아주 쌍으로 난리라고 이모님이 한소리 하시며 숟가락을 다시 가져다주셨다. 후에 다희에게 분식집에서의 그날에 대해 물어보니, '차근차근 다가갈 생각으로, 닫혀있는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자물쇠를 하나씩 풀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문이 달려있던 벽이 와르르 무너지더니 안에 있던 네가 웃으며 인사를 건네더라'라고 그날의 혼란했던 감상을 전했다.


박혁거세는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탄생하고, 예수님은 탄생하신 후에 동방박사들에게 경배를 받았다고 하는데, 나의 탄생 설화는 분식집 이모와 양은냄비와 주먹밥이 배경이라니. 하지만 뭐 그럼 어떠리, 주먹밥과 라면은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그때가 돼서야 마음을 알아차린 나에게 있을 따름이다. 그렇게 분식집 사건이 지나고 며칠 후, 우리는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