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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승 Sep 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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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서 탄생의 변곡점 


 어느 예술분야를 막론하고 발전단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당시에 나타난 위대한 예술가의 등장은 예술사의 중심에서 가장 중요한 일에 속한다. 발레마스터가 댄서에게 가르침을 주는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위대한 예술가와 위대한 춤이 만나는 변곡점이 그 시작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불멸의 춤으로 남거나 불멸의 댄서를 기억한다는 건 일반적인 예술사의 기억의 편린으로 제대로 존재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춤을 사랑했고 누구보다 발레 댄서에게 애정을 가졌던 사람으로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내가 알고 있는 예술가들을 세상에 소개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 숨겨진 댄서 찾기의 가장 큰 핵심은 가치에 두었고 그런 나의 진심이 세상과 잘 소통되는데 일조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늘 조바심이 나거나 불안해도 조금 더 진지하게 이 일에 다가서려는 마음을 다잡을 때도 그때도 예술가 잘 찾아서 무대가 아닌 종이 위에 댄서일지라도 그들의 삶을 독자들에게 잘 전달하는 중간자 역할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그 중간자로서의 선을 잘 지키며 그들과 나 사이의 거리가 언제나 가깝지도 멀지도 않기만을 늘 고대하고 그 마음에 대해 먼저 곱씹곤 했다.

  어느 한 분야에서든 정상에 있는 사람은 분명 남과 다른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예술가들을 찾아서 세상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그들이 걸어온 길을 함께 기뻐하고 박수받으며 축하해 주는일 또한 누구라도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론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결국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이 선택한 일에 사랑해서 그 일을 통한 성장과 기쁨을 자신과 타인을 통해 누리게 되는 것이지 투쟁 끝에 얻는 전리품처럼 그렇게 예술을 대해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내가 만났던 예술가들은 적어도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이득에 맞서 자신을 뽐내고자 하지 않았다. 예술이 빛나고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여러 가지의 고통과 그 힘듦을 이겨낸 사람이 타인에게 보여주는 깊은 기쁨이자 짧지만 함께 나눈 아름다운 이야기이자 기억이고 추억이기 때문에 우리는 예술가를 사랑하고 늘 새로운 스타를 갈망한다. 그래서 내가 살았던 시대에 내가 사랑한 예술과 그 일을 멋지게 해 낸 예술가들을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건 이 밤에 생각만 해도 얼마나 흐뭇한 일이었던가? 단언컨대 춤의 시대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어도 발레의 대중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 현존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보다 훨씬 먼저 그 춤을 추었던 댄서들이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오랜 시간 서랍 안에 기록물로만 남아있는 이 이야기들을 그저 오래된 묵은 포도주처럼 취급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은 손 안의 인터넷 세상에서 조차 클릭만 해도 알게 되는 한국 발레 역사 안에서 실존했던 인물들이었지만 그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주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빛이 아닌 어둠의 그늘에 가려진 있었던 그들에게 선물 같은 소환이 되었으면 싶었고 사람들은 왜 숨은 가수들은 찾으면서 숨은 댄서들은 왜 찾지 않을까? 싶은 아쉬움으로 이 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춤은 생각보다 어렵고 무용에 관한 책을 읽기에는 어렵고 지루하다는 생각 때문에 한때 대중적이지 않았던 때를 지나 지금은 그래도 예전보다는 훨씬 좋아진 환경에서 사랑받는 장르의 예술로 각광받고 있는 이 시점이 참으로 감사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나의 간절함과 절실함으로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제대로 독자들에게 거짓 없이 전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 일까? 싶었다. 또한 이런 글을 쓰게 될 날이 오게 될 거라고 제안받았던 그때에는 당대의 무용가들이 거의 다 생존해계셨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알고자 하는 내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 솔직하게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셨기 때문에  돌이켜보면 그때 써둔 글들은 그때 당시를 바라보고 써야 했던 것이 아니라 결국 미래를 기약하며 타임캡슐처럼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열어볼 수 있는 글로서 버티고 기다려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그 시간들 안에서 지쳐 기록된 그 묵혀진 글들이 이젠 서랍 안에서 투명인간처럼 존재하지 않기를 바랐고 무엇보다 읽고 싶지 않은 책이 아니라 펼쳐보고 읽어보고 싶은 책이 되어 진심 어린 내 마음이  잘 전달될 수 만 있다면 얼마가 좋을까? 싶은 간절함으로 이 글을 썼음을 고백처럼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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