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죽의 종류와 특성
가죽 공예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가죽이겠죠.
종류도 다양하고 용어도 복잡하며 무엇보다 어떤 것이 좋은 가죽인지 알쏭달쏭한데요.
또, 만들고자 하는 것에 따라 맞는 성격의 가죽을 선별도 잘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죽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실제로 해당 가죽을 사용해서 원하는 것을 만들어보면 그 특성과 장단점을 알 수 있을 텐데요.
현실은 경제적, 시간적 제한으로 다양한 가죽을 접해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는 내가 선호하는 가죽만을 사용하게 되기도 하고요.
저 역시도 가죽 공예를 배우고 작업하며 만든 것들의 가죽을 살펴보니 꽤 제한적이더라고요.
맞지 않는 가죽을 맞게끔 보강을 하고, 보다 최적화된 디자인에 맞는 가죽을 취하고, 가죽의 좋고 나쁨을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기 위해서는 직, 간접적으로 많은 경험과 공부가 계속 필요하리라 봅니다.
아래는 가죽의 종류, 제작방식, 특성, 장, 단점과 사용후기들을 나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내용은 앞으로도 공예를 하면서 계속 수정, 보완해 나가겠습니다.
가죽이라고 하면 보통은 소가죽을 말하고 많이 사용해서 작업하지만 가죽 공예에는 소 외에도 여러 동물의 원피를 가공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럼 대표 주자인 소가죽부터 하나씩 살펴볼까요?
1. 소가죽
소가죽이 가죽 공예에서 많이 사용되는 이유는 비교적 경제적인 가격에 넓은 면적을 확보할 수 있어서 일 겁니다. 또, 다양한 가공법으로 원하는 제작에 맞게끔 선택의 폭이 넓기도 하고요.
저 역시 소가죽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소가죽의 생피는 그 자체로는 가방 제작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물이나 습기에 약하고 쉽게 썩으며 수분이 빠져나갈 경우는 딱딱해지고 뒤틀리고 깨지기 때문에 반드시 가공을 해야 합니다. 즉, 바디에는 모이스트 하게 유지하면서 외부로는 오염을 차단하고 스크래치에 강한 내구성, 견고성, 인장성 등을 갖추어져야 가죽 공예에 사용될 수 있겠는데요.
이것을 무두질이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태닝(Tanning)입니다.
이 가공을 거치고 나면 비로소 원하는 컬러감에 무게는 가볍고 열과 습기 등에 강하며 찢어짐도 덜하고 적당한 두께의 가죽이 되겠습니다.
피렌체 가죽학교 때 가죽을 가공하는 공장인 태너리(Tannery)를 견학한 적이 있는데요.
한 장의 가죽이 최종 완성되는 전 과정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먼저 소에서 분리한 생피는 소금에 절여서 부패를 막고 수분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요.
이를 일정한 시간 동안 건조를 시킨 다음에 큰 드럼통에 물과 몇 가지 화학용품을 같이 넣고 3~4일을 돌리며 생피에 있는 여러 불순물들(각질, 지방, 모근)들을 제거합니다.
그리고 가죽으로서 쓸 수 있는 부분만을 피할을 한 후 여기에 염색 처리를 하고 건조하여서 가죽 한 장을 완성하게 됩니다.
이때, 염색 처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크게 두 가지로 나뉘게 되는데요.
1. Tannin이라는 식물성분으로 처리하는 것을 베지터블(Vegetable) 계열의 가죽
2. 화학성분으로 처리하는 것을 크롬(Chrome) 계열의 가죽이라고 합니다.
베지터블 가죽은 크롬보다는 염색의 시간이 오래 걸리고 스크래치나 물, 습기 등에 약하긴 하지만 가죽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고 색상이 자연스러우며 시간이 지날수록 햇볕 등에 에이징 되면서 멋스럽게 변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루이뷔통 가방에 보면 노란색의 가죽이 패치며 파이핑에 사용되는데 바로 이 것이 생지라고 해서 베지터블 가죽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가죽을 쓴 부위는 햇빛에 태닝도 되고 또 물이 묻으면 그 부분이 바로 얼룩 짐을 볼 수 있습니다.
우스개 소리로 명품과 가품의 구분을 비올 때 명품 가방은 품에 안지만 가품은 머리에 인다라는 것은 바로 이런 가죽의 특성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담으로 루이비통의 몸체 부분은 정작 가죽이 아닙니다. 가죽처럼 보이도록 만든 PVC인데요. 고야드의 쇼퍼백에 쓰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죽 공예를 몰랐을 때는 명품회사에서 만드는 가방이니 당연히 천연 가죽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가죽을 접하고 만들면서 아님을 알 수 있더라고요.
그럼 이런 초명품 브랜드 회사에서 왜 인조 가죽을 사용하는 걸까요?
여기엔 많은 장점이 있을 수 있는데요.
제일은 특별한 보강을 하지 않아도 탄탄하고 힘이 있으면서도 뒤집어도 구김이 없고 물, 습기, 스크래치 등에 강하며 무엇보다 작업성, 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브랜드와 디자인의 파워가 있기에 소재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또 엄격히 지켜야 하는 소재에는 철저한 품질을 사용하고요.
제 시선을 봤을 때 예전에는 100%, 천연 소재가 최상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루이비통사의 제품을 보면서 아 이런 콘셉트와 방향을 가지기도 하는구나 놀랐습니다.
즉, 가방을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바로 이런 인조 가죽의 사용이 페이크(Fake)이기보다는 스마트(Smart)함으로 다가왔습니다.
패션과 실용, 경제성을 모두 취하고 천연을 쓰는 파트에서는 또 매우 우수하고 엄격한 관리의 회사 독점적 소재를 멋스럽게 믹스 앤 매치하는 것, 독창적인 패턴, 유니크한 디자인과 정교한 스티칭의 하이퀄리티 제작 기술이 모두 바탕이 되기에 가능하고 고객에게 인정받는 것 같습니다.
다시 가죽 가공으로 돌아와서요.
베지터블 가죽은 장점에 비해서 견고성 등의 단점으로 공산품을 생산하는 회사에서는 주로 크롬 가죽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크롬 가죽은 내구성이 좋으며 색상이 일정하고 동일한 품질을 맞추기가 용이합니다.
또, 베지터블과는 달리 다양하게 안료를 올리거나 표면을 처리할 수 있어 선택의 폭이 보다 넓습니다.
상대적으로 질이 떨어지는 가죽의 경우에는 에나멜, 우레탄이나 합성수지 등으로 코팅을 해서 가죽의 흠들을 가리기도 하고요.
표면이 고르고 좋은 원피의 경우에는 염색만으로 처리하는 풀그레인(Full Grain) 가죽도 있습니다.
또, 이런 풀 그레인의 경우에는 표면에 무늬가 없으면 구김이나 스크래치에 상대적으로 약할 수 있기에 표면을 재처리하기도 하는데요.
인위적으로 가죽을 수축시켜서 주름을 만드는 슈렁큰(Shrunken)도 있고요. 무늬가 있는 동판을 가죽 표면에 찍어서 엠보싱을 만들기도 합니다. 아니면 아예 표면을 갈아서 사용하기도 하고요.
혹시, 싼 가방이나 소파를 보면 표면이 거칠고 갈라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으세요?
가죽은 표피층, 진피층, 피하지방층으로 나뉘는데 지방층은 가죽으로서는 효용성이 없어서 버리는 것을 여기에 두껍게 안료를 올린 가죽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처음에는 두꺼운 안료가 가죽의 나쁨을 바로 알 수 없게 만듭니다. 이런 가죽은 가죽을 뒤집어서 보시면 확인이 가능하겠습니다.
여기서 이제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인 어떤 가죽이 좋을 가죽일까요?
우스개로 잘 모르시면 비싼 게 좋은 것일 수 있습니다만 가방 제작자로서 좋고 나쁨을 파악하는 안목을 길러야겠습니다.
좋은 가죽이라고 하면
1. 표면은 부드럽고
2. 상처가 적으며
3. 촉촉하고
4. 모공은 작고
5. 밀도는 높으면서
6. 가볍고
7. 탄력이 있고
8. 구부려서 펴지는 복원성이 좋아야 하겠습니다.
소는 연령별로 다시 나뉘어서 카우(Cow) 가죽이라고 일반적인 소가죽과 그 보다 비교적 어린 송아지 가죽인 카프(Calf)로 나눌 수 있는데요. 아무래도 어릴수록 위 특성이 많기에 선호도가 더 높고 그래서 가격도 상대적으로 더 고가입니다.
또, 같은 한 마리의 가죽이라도 부위에 따라서 좋고 나쁨을 구분할 수 있는데요.
가죽을 펼쳐 놓았을 때 어깨부터 엉덩이까지 몸통 부분이 가장 좋고 다음으로 어깨 위 목 부분과 배 부위는 가죽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습니다. 만약 한 장을 사셔서 보다 좋은 가방을 만들어야 한다면 가능한 몸통 부분을 사용하시면 되겠습니다.
모든 생물처럼 소도 성장을 하며 그 가죽에 결을 남깁니다. 그 방향이 등에서 배 쪽으로 아치를 그리며 생기게 되는데요. 재단할 때에는 이 결 방향을 고려해서 해 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즉, 가방이 접히는 부분은 가죽 결과 맞서도록 해서 재단하면 되겠습니다.
특이하게 털을 제거하지 않은 아주 어린 송아지를 송치라고 해서 매우 고가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한 번도 사용해 보지 못했네요.
세계 여러 태너리 중 품질이 뛰어난 가죽을 가공, 생산하고 그래서 명품 회사에 전문으로 납품을 하는 곳이 있습니다. 만약 가죽에 대해 잘 모르겠다 하시면 이런 회사의 가죽을 믿고 사시는 것도 좋은 가죽 선택의 한 팁이 되겠습니다. 대신 구입 자금을 더 많이 준비하셔야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의 경우는 좋은 기후와 환경으로 우수한 소가죽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독일의 경우는 철저한 품질관리로 초고가 명품회사에 독점적으로 납품하는 회사들로 유명하며, 일본의 경우는 말의 엉덩이 부위만인 코도반으로 유명합니다.
구찌나 페라가모가 피렌체에서 태생했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니 여기가 토스카나 지방이기 때문이어서 좋은 품질의 가죽을 납품받기가 용이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세계 유수한 태너리들과 명품회사에서는 각자 생산, 사용하는 가죽에 나름 이름을 정해 붙이는데요.
예를 들어 가죽을 수축시켜 만든 슈렁큰 가죽을 에르메스에서는 토고라고 하고 이를 납품하는 바인하이머사는 오데사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동판의 무늬를 찍는 엠보싱 가죽의 경우는 에르메스에서는 엡송으로, 이를 납품하는 바인하이머사는 와프로룩스라고 하고요. 페링거라는 회사에서는 페링거슈렁큰,노블레사라고도 합니다.
제가 써 본 가죽은 베지터블로는 이탈리아산의 다코타, 뷰테로, 영국산으로 브라이들,
크롬 계열로는 오데사, 와프로룩스, 페링거슈렁큰, 노블레사 등을 사용해 보았습니다.
이런 브랜드 가죽들은 한번 사용을 하면 대안을 찾기가 어려울 만큼 품질이 높고 좋아서 재 구매를 계속하게 되더라고요. 가죽 공예에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이유입니다.
조금 특이한 무두질의 가죽도 있는데요. 독일 Hass 사의 바레니아라고, 크롬으로 무두질을 한 후 마지막은 다시 베지터블 탄닌을 처리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니 베지터블 가죽처럼 자연스러운 장점과 크롬 내구성의 장점을 모두 가진 하이브리드한 가죽이 만들어지죠.
또 원래는 신발에 주로 쓰이는 다소 단단한 복스 카프(Box Calf) 가죽도 가방의 손잡이나 패치, 지갑 등에 잘 사용됩니다.
2. 염소가죽
염소가죽의 장점은 얇고 부드러우면서도 표면 내구성이 좋습니다.
인위적으로 엠보싱 처리하는 소가죽과 달리 표면은 자연스러운 엠보싱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의 크리스페 염소 가죽은 그 컬러감과 품질이 가히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상대적으로 소에 비해서 작은 사이즈여서 작은 가방이나 소품, 고급 가방의 안감으로 사용됩니다.
혹시, 어떤 가방이 정말 고급인지 알아볼 수 있는 방법 중 스티칭과 함께 가방 안감의 사용 소재를 보시면 판단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3. 양가죽
양가죽의 장점은 가죽이 유연해서 장갑, 코트, 쟈켓 등 플렉시블 한 곳에 많이 사용됩니다. 단점은 스크래치 등에 약하고 형태를 잡기도 어렵습니다. 좀 어린양은 램(lamb)이라고 해서 Sheep보다 더 부드럽고 탄력이 있습니다. 한번 손 끝으로 느껴보시면 깜짝 놀랄 정도인데요. 그만큼 가격도 깜짝 놀랍습니다.
저는 에르메스사 도곤 지갑의 안감으로 이 것이 사용된 것을 본 적이 있는데요. 저도 기회가 되면 사용해서 한번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4. 악어가죽
악어가죽은 얇지만 튼튼하고 내구성이 좋은 가죽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가죽계의 다이아몬드'라는 별명이 딱 들어맞는데요.
악어가죽은 그 희귀성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는 멸종 위기 동물의 보호 관리 협약에 의해서 생산, 판매,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어를 키우는 공장에서는 배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대리석을 깔아 놓는다고 하더라고요. 그 특별함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 갑니다.
악어는 지역에 따라서 아프리카의 크로커다일, 아메리카의 엘리게이터 등으로 나뉘고 그 특성이 조금씩 틀립니다. 상대적으로 크로커다일이 더 우수한 가죽의 특성을 나타내어서 고급 제품에 선호됩니다.
악어처럼 배를 바닥에 대고 움직이는 동물은 가죽이 보기와 달리 상당히 견고하며 또 배부분을 중심으로 좌우로 문양이 대칭을 이루어서 이것을 살려서 제작하는 것을 많이 선호합니다.
가죽 공예를 하면서 또 그 가죽이 생산, 가공되는 과정을 알면서
과연 내가 가죽이란 소재로 가방을 만드는 것이 맞는가?
인간의 욕심과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마구 잡이식 포획, 살생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을 안 할 수 없더라고요.
그러나 가죽 소재의 장점과 매력이 또한 충분하기에 가죽을 대체할 소재는 역시 가죽밖에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죽은 오랫동안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고요.
그렇기에 단순히 또 무조건 가죽으로 만든 제품을 안 만들고 안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생산과 소비를 철저히 규제하고 관리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엄격하고 투명하게 생산하고 가치 있게 소비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그것이 가죽을 소재로 가방을 만드는 가방 제작자의 의식이지 않는가 합니다.
그래서 우선 저 자신부터 깨끗하게 관리가 되는 가죽을 제대로의 비용으로 구입하고 제작할 때에는 실패가 적으며 로스(loss)를 최소로 해서 가죽을 아끼고, 최고의 제품이 되도록 정성을 다해 제작하며, 이를 드시는 분들이 평생 애용할 수 있는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원대한 그림을 가지게 됩니다.
또, 이것은 나비효과가 되어서 전체 가죽 시장과 공예 시장에도 바람직하게 형성되고 성장하며 인류와 동물이 함께 공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게나마 가죽 공예를 하다 보면 자투리로 생기는 가죽들을 버리지 않고 조그만 팔찌나 목걸이로 재생해서 쓰고, 크게는 가죽을 보완할 소재에 대해서 앞으로도 계속 공부를 해 나가야겠습니다.
가죽 공예를 하면서 이전과 달리 이렇게 인류, 자연과 환경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게 되어서 참 감사함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