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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Woo Lee May 04. 2024

매물 찾기

발품 팔기

처음엔 부동산에 통화하는 게 무서웠는데 몇 번 하니 익숙해졌다. 나중엔 부동산 중개인 분이 전화를 받으면 원하는 조건을 줄줄 읊었다.


보증금 1,500만 원 이하

월세 100만원 이하

10평 내외

저층(2~3층) 선호


우선은 내가 사는 석촌 위주로 찾았다. 익숙한 동네고 집이랑 가까우면 관리하기도 쉬울 것 같았다. 근처에 석촌호수나 석촌고분처럼 산책할 곳도 있고.


발품을 파니 네이버 부동산에 올라오지 않은 매물들을 볼 수 있었다. 알짜배기 매물은 나오면 바로 나가니 보통 네이버에 올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석촌에는 마음에 드는 곳이 딱히 없었다. 교묘한 밸런스 게임처럼 아쉬운 점이 하나씩 있었다.


금전적인 조건이 맞으면 너무 좁거나 지하였다. 반대로 마음에 든다 하면 월세가 200만 원을 가볍게 뛰어 넘었다. 내 눈에 이쁘면 다른 사람한테도 그렇겠지.


한 가지 더 마음에 걸린 점은 동네 분위기였다. 과연 출판전야가 석촌과 어울리는가? 이 질문을 했을 때 마음 한구석에서 괴리감이 고개를 내밀었다.


출판전야는 예술가가 많은 지역과 어울려 보였다. 그들을 위한 장소니까. 석촌은 좋은 동네지만 예술가의 동네는 아니었다.


롯데월드, 석촌호수, 송리단길로 대표되는 잠실과 석촌 일대는 창작보다는 소비에 치중되어 있는 곳이었다. 예술가를 품기엔 석촌 부근의 월세가 너무 높았다.


레이더의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을지로, 성수, 망원, 서촌. 어디까지나 내 주관으로 예술가가 많은 것 같은 동네를 함께 살폈다.


회사 생활을 하며 매물을 보러 다니는 게 쉽지 않았다. 좋은 물건일수록 금방 나가기에 토요일까지 기다리기 어려웠다.


휴가를 내거나 부동산 중개인 분에게 양해를 구해 평일 이른 오전 시간을 활용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더 부지런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오전 10시 다 되어 일어나던 사람이 6~7시에 일어나려니 쉽지 않았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을지로, 성수, 망원에 매물을 보러 갔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며 나의 의지를 가늠했다. 출판전야를 운영하게 되면 이 거리를 자주 오갈 수도 있을 텐데 할 수 있으려나.


마지노선은 을지로였다. 그 이상의 거리는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부담이 됐다. 한 두 번 가는 건 괜찮지만 일주일에 몇 번을 가야 하면 몸살이 날 것 같았다.


을지로는 석촌 다음으로 출판전야의 주요 후보지가 되었다. 집과의 거리는 물론 보증금/월세 조건도 괜찮았고 인쇄소가 모여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출판과 인쇄는 가까운 사이니까.


내 눈에 들어온 매물도 인쇄소 바로 앞에 있었다. 나에게 특별한 인쇄소였다. 독립출판을 할 때 내 책을 인쇄한 곳이었으니까. 그것도 두 권이나.


내 책이 태어난 곳 앞에 출판전야가 열리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운명처럼 다가온 매물을 놓치고 싶지 않아 바로 부동산에 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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