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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Woo Lee May 25. 2024

설득

공간 PT

임대 관리인 분이랑
미팅 한번 하실래요?


부동산 중개인 분이 전화로 말씀해 주셨다. 임대 관리인 분이 나를 직접 만나 출판전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 상황이었다.


사실상 최종 면접과도 같은 자리였다. 긴장됐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해 볼 기회는 얻었다는 점에서 희망이 생겼다. 중개인 분을 통해 임대 관리인과의 미팅 일정을 잡았다.


알고 보니 임대 관리인 분은 임대인의 자산 관리사였다. 우리는 한남동 부촌에 위치한 프라이빗 라운지에서 만나기로 했고 다행히 중개인 분이 함께 해 주셔서 외롭지 않았다.


미팅 당일, 출판전야의 명운이 걸린 자리이기에 떨리는 마음을 안고 한남동으로 향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근처 카페에서 공간 PT 연습을 하고 라운지 앞에서 중개인 분을 만났다.


동굴과도 같은 입구 통로를 지나니 로비가 나왔다.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조명이 중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고급스러운 로비였지만 그만큼 진중한 분위기가 느껴져 긴장됐다.


얼마 뒤 임대 관리인 분이 맞이하러 나오셨고 우리는 더 깊숙한 곳에 있는 미팅 룸에 들어갔다. 임대 관리인 분과 마주 앉았는데 인상이 참 좋으셨다. 덕분에 떨리던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인사나누며 회사 명함을 드렸다. 평소 명함을 주고 받을 일이 없던 터라 전날에 명함 예절도 찾아봤다. 월세 밀릴 걱정이 없다, 신용할 만한 사람이다라는 걸 조금이라도 어필하고 싶었다.


인사를 마치곤 공간 PT를 시작했다. 이때도 출판전야 기획서가 큰 도움이 됐다. 기획서를 보여 드리며 출판전야가 어떤 곳인지 말씀드렸다.


파티룸처럼 여러 명이 와서 술 마시며 노는 곳이 아니고, 예술가가 홀로 찾아와 진중히 작업하는 곳이다. 그러니까 파티룸처럼 건물을 손상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어필을 이어서 했다.


옆에서 중개인 분도 힘을 보태 주셨다. 오랫동안 준비한 일이고 성실한 분이라 문제 없이 잘 운영할 거라는 얘기를 해 주셔서 감사했다.


다행히도 임대 관리인 분의 반응이 괜찮았다. 임대 관리인 분과 출판전야 관련해서 질답을 주고 받았고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없어 보였다.


또 임대인 분이 내가 제시한 보증금/월세 조건을 승낙했다는 말씀도 해 주셨다. 결국 관건은 업종 문제였는데 임대 관리인 분이 임대인에게 잘 말씀드려 보겠다고 했다.


임대인 분이 최종 오케이를 했을 경우를 고려해 계약 조건에 대한 얘기도 나눴다. 이때는 중개인 분이 힘써 주셨다. 렌트프리, 관리비, 원상 복구 관련 내용을 논의했는데 나보다 중개인 분이 말씀을 많이 해 주셨다.


초보 임차인 입장에서 익숙하지 않은 영역이고, 태어나서 협상이란 걸 해 본 적이 없던 사람인지라 혼자였으면 큰 일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정도의 논의는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결론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확실한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한 보 앞으로 나아갔다는 생각은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며 귀한 경험을 했다고 느꼈다. IT 서비스 기획자가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서 공간 PT를 하다니. 한 달 전만 해도 생각하지 못할 일이었다.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이 다시금 와닿았다.


기다림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듣기로 임대인 분이 원래는 내가 본 매물의 건물을 통임대할 계획이었다고 했다. 만약 통임대 계약을 할 임차인이 나타나면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중개인 분에게 전화가 왔다. 준우님 임대인 분이 계약하시기로 했어요! 이 말을 듣고 정말 뛸듯이 기뻤다. 살면서 이상형은 어디까지나 이상이라 생각했는데 현실에서 연을 맺게 될 줄이야.


계약서를 쓰기로 한 날이 정해졌고 그날 임대인 분을 뵙기로 했다. 왠지 그 날이 최종의 최종 면접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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