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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Woo Lee May 18. 2024

교환

보증금과 월세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75만 원. 내 이상형 매물의 조건이었다. 월세는 가능한 범위 안에 들어왔지만 보증금은 최대 예산 1,500만 원의 두 배였다.


매물이 마음에 들어 2,000만 원까지는 무리를 해 보려 했지만 3,000만 원은 감당이 안 됐다. 나보다 먼저 보고 간 다른 손님도 보증금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고 했다.


총 예산이 5,000만 원인데 보증금에 3,000만 원을 쓰면 2,000만 원이 남았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내 구상을 실현하기엔 충분하지 않은 돈이었다.


그래도 포기하기 싫었다. 이미 이상형을 봤기에 다른 매물을 보더라도 눈에 차지 않을 것 같았다. 내부를 다 둘러봤음에도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문득 어딘가에서 보증금과 월세를 교환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게 떠올랐다. 마침 월세는 75만 원으로 생각보다 괜찮았다.


중개인 분에게 월세를 20만 원 올리는 대신 보증금을 2,000만 원 낮출 수 있는지 여쭤봤다. 중개인 분은 협상은 가능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내가 하려는 서재가 공간 대여 사업이라 임대인이 선호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몰랐는데 공간 대여는 건물을 손상할 우려가 있어 임대인 입장 비선호 업종이었다.


실제로 임대인 분은 이전에 파티룸을 운영하는 임차인에게 데인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무인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만큼 사건 사고도 많은 듯했다.


출판전야는 파티룸처럼 여럿이 모여 술을 마시는 곳이 아니었다. 혼자 사용하는 서재에서 파티룸 같은 난장이 벌어질 리는 없어 보였다.


이 점을 중개인 분에게 말씀드렸고 나름 건실한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깨알 어필도 했다. 월세는 월급을 털어서라도 낼 거라 밀릴 걱정은 없다고 하며.


간절함이 눈에 보였는지 중개인 분이 임대 관리인에게 전화를 한번 해 보겠다고 말씀하셨다. 임대 관리인 분을 통해 임대인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중개인 분이 통화하는 동안 매물을 구석구석 살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곳에는 비단결 같은 내 꿈을 얼룩지게 할 무언가가 없었다.


그렇게 꿈에 빠져 있던 중 중개인 분이 통화를 마치고 돌아왔다. 임대 관리인 분이 임대인과 논의해 보는 걸로 이야기가 됐다고 했다.


그 날은 아쉬운 마음을 안고 나의 이상형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중개인 분이 준비한 뚝섬의 다른 매물을 보러 갔는데 역시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이상형이 눈에 밟혔다. 매물을 둘러볼 때 찍은 영상을 돌려보며 여기엔 책상 저기엔 책장을 놓으면 되겠다하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을까. 중개인 분에게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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