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감
돈을 목적으로 출판전야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투자보다는 자아실현을 위한 소비에 가까웠다.
이런 생각 때문에 들인 돈을 회수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지는 않았다. 데이데이와 계약서를 쓰고 통장에서 돈이 본격적으로 새어나가기 전까지는.
생각보다 지출이 많았다. 부가세 10%가 이렇게 부담된 적이 없었다. 나중에 신고해서 돌려받을 수 있다지만 당장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겼다.
예산을 초과해서 발생하는 금액을 메꾸기 위해 적금을 깨고 비트코인을 팔았다. 어떤 물건은 할부로 살 수밖에 없었다. 자금이 쪼들리는 상황이 이어졌다.
비용이 딱 계획한 만큼 나갈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돈 때문에 밤을 지새우는 날이 이어졌다.
돈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처음엔 출판전야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돈만 생각했는데 이후 계속해서 나갈 월세, 인터넷비도 걱정됐다.
돈을 이렇게 많이 쓰는데 손님이 안 오면 어떡하지. 출판전야에 대한 회의감을 품게 됐다. 심할 때는 상가 계약서를 쓰기 전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마음을 굳게 먹었다 생각했는데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돈이 통장에서 빠져나가니 흔들렸다. 누구나 맞기 전까지는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는 타이슨의 말이 옳았다.
당시에 주위의 응원이 없었다면 그대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맘 급해 하지 말고 길게 보자!
넌 글 쓰는 사람이니까.
첫 작업실 갖는다 생각하면 되지.
- 어머니
준우 님의 서재인데,
다른 분들이 월세를 함께 내주는 거네요!
이렇게 생각하면 부담이 덜하지 않을까요?
- 친구
이 말을 듣고 돈 걱정에 매몰되었던 생각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담은 장소를 만드는 게 애초의 목표였는데 돈 생각만 하다 보니 그걸 잊었다.
성공의 기준을 손님이 얼마나 드냐, 돈이 얼마나 벌리냐에 두지 말자. 대신 출판전야에 내 취향을 얼마나 담아내냐에 두자.
만약 내 서재로 썼을 때 스스로 만족할 수준이면 성공이라 보기로 했다. 주위에서 해 준 말처럼 내 서재로 쓰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테니까.
최악은 어중간한 거였다. 내 마음에도 들지 않고 손님들에게도 그저 그런 곳. 그럼 아무도 쓰지 않을 서재를 위해 매달 백만 원 넘게 써야 한다.
출판전야를 만들며 큰돈이 나가는 문제에 대해서도 관점을 바꿨다. 그 돈을 출판전야에 안 쓰고 아꼈다면 어디에 쓸 것인가? 회의감이 고개를 들 때마다 이 질문으로 답했다.
먹고사는 데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벌고 있다. 차, 집에 대한 욕심도 없다. 당장 결혼할 사람도 생각도 없다. 출판전야를 안 했다면 그 돈을 통장이나 주식 어딘가에 묵혀 뒀을 게 분명하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대비를 해야 되지 않겠나.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그 말에 주문을 걸린 채 30년을 살았다. 중국 교환학생에 가서도 취준을 생각하며 책상 앞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오히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에 내 인생의 황금기가 담보로 잡히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 나온 말처럼 그때는 그때, 지금은 지금이다.
결국 초심으로 돌아와 지금의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서재를 만들기로 했다.
(이 뒤로는 결제 버튼을 누를 때의 죄책감이 좀 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