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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Woo Lee Jun 01. 2024

계약

첫걸음

계약 당일 저녁 긴장되는 마음으로 뚝섬의 부동산으로 향했다. 최종의 최종 면접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점잖게 차려 입고 갔다. 또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에 독립출판한 책도 챙겼다.


부동산에 들어가니 중개인 분이 각종 서류를 책상에 올려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자리에 앉아 살펴보니 부동산 계약서였다. 여기다 싸인을 하면 내 인생이 다음 막으로 넘어가게 된다.


5분 정도 기다렸을까 임대인 분이 오셨다. 부부였는데 두 분 다 인상이 좋으셨다. 인자한 미소에 떨렸던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임대 관리인 분을 만났을 때처럼 명함을 드리며 인사했다. 두 분도 내게 명함을 주셨는데 한 분이 예술가셨다. 예술가를 위한 장소를 만들려고 해서일까 괜히 반가웠다.


중개인 분 덕분에 계약은 순조로이 진행되었다. 몇 가지 특약이 추가되긴 했지만 합리적인 수준이었다. 임대인 분과 난 돌아가면서 계약서에 필요한 내용을 적고 마침내 싸인을 했다.


계약으로 맺어지긴 했지만 인연은 인연이라며, 임대인 분에게 독립출판한 책을 선물로 드렸다. 소설 한 권과 에세이 한 권.


책을 계기로 임대인 분과의 대화 물꼬가 트였다. 두 분은 나와 출판전야를 신기해 하셨다. 출판전야를 어쩌다 준비하게 됐는지, 돈이 될 것 같은지, 결혼은 했는지 이것저것 물으셨다.


1인 서재라는 생소한 장소, 돈도 적지 않게 쓴다고 하니 홀몸이 아니고서야 도전하기 어려울 거라 보셨던 것 같다. 나는 돈보다는 자아실현을 위해 하는 거라고 말씀드렸다.


차 산다고 생각하고 하려구요.
둘 다 견문을 넓혀 주는 건 같으니까요.


임대인 분과의 대화가 마무리되고 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약 다음 날부터 임차가 시작되었지만 임대인 분의 양해로 열쇠를 먼저 받을 수 있었다.


중개인과 임대인 분에게 인사를 드리고 꿈에 그리던 매물로 달려갔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채워지길 기다리는 도화지가 날 반겼다.


늦은 밤이라 그런지 고독한 섬처럼 느껴졌다.

30대. 그렇게 나는 차 대신 서재를 계약했다.


계약 후 올린 게시글

출판전야가 뚝섬에서 첫 발을 내딛습니다.

2022년 출판전야를 시작하기로 마음 먹고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2024년 오픈하는 것을 목표로 준비를 해 왔는데요. 그동안 참 다양한 책을 읽고 장소를 방문하고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저 책도 읽어 봐야 하는데, 나는 저 분만큼 잘할 자신이 없는데. 준비를 할수록 갖춰야 할 게 눈에 더 많이 들어왔습니다.

이러다간 평생 못 열겠다고 느꼈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2024년에는 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를 위해 초기 숙소로 계획했던 출판전야를 서재로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서재로 방향을 바꾸니 부담이 줄었습니다. 또 출판전야의 핵심인 서재에 집중해서 고민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작년 연말에 그동안의 생각을 갈무리하여 출판전야 기획서를 만들었고 올해 초부터 상가를 보러 다녔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석촌은 물론 뚝섬, 성수, 을지로, 망원 등 여러 지역을 살폈습니다. 제가 원하는 조건이 많다 보니 마음에 딱 드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결국 어느 정도는 타협을 해야 하나 싶었는데.. 기적적으로 마음에 드는 곳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뚝섬역 인근의 빛이 잘 드는 4층 공간. 처음 들어선 순간부터 이곳에 출판전야를 열고 싶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본 4층 공간이 아래의 3층과 통임대로 묶여 있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4층만 따로 임대를 하기 위해서는 설득이 필요했습니다. 건물을 관리하시는 분을 찾아뵈어 출판전야가 어떤 곳인지 PT도 하고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는지도 말씀드렸습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고.. 다행히 출판전야를 좋게 봐 주셔서 4층만 따로 임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임대가 결정된 후에는 빠른 속도로 진도가 나갔습니다. 전부터 같이 일하고 싶던 건축 디자인 팀과 미팅을 하며 출판전야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세심하게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열쇠를 받고 출판전야가 들어설 곳을 다시 살피니 실감이 났습니다. 진짜 시작이구나.

여태까지는 발만 담그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부턴 바다에 온 몸을 던지는 겁니다. 각오해야 할 일이 많고 걱정도 되지만, 이렇게 해야만 시작할 수 있는 도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흠뻑 젖은 후엔 더 이상 젖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출판전야는 다가오는 3월 동안 열심히 준비하여 4월에 몽상가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출판전야가 어떤 식으로 나아갈지 더 열심히 남기려고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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