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Woo Lee Jun 08. 2024

도약

첫 발자국

계약이 되고 건축 디자인 팀인 데이데이에 곧바로 연락했다. 출판전야가 들어설 곳이 정해졌으니 이제 본격적인 협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우선 현장을 보고 이야기하기로 했다. 사진과 영상을 보내드리긴 했으나 직접 보고 느끼는 게 제일 좋으니까. 마침 데이데이의 사무실도 뚝섬에 있었기에 나와 디자이너 세 분이 함께 걸어서 현장으로 갔다.


눈이 펑펑 쏟아진 날이었다. 건물에 도착하니 계단에 눈이 잔뜩 쌓여 있었다. 한 계단, 한 계단 눈을 치우며 올라갔다.


가게하는 사람들은 눈이 오면 제설 걱정부터 한다던데 나도 그렇게 되려나. 눈이 반갑지 않은 날이 오려나. 출판전야를 찾아 오다가 눈길에 넘어진 손님이 있으면 어떡하나.


쌓인 눈만큼 가게 주인이 느껴야 하는 책임도 무거워지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가게뿐만 아니라 가게까지 오는 길도 신경써야 하는 거였다.


4층 테라스에도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새하얀 백지 위로 첫 걸음을 옮겼고 선명한 발자국이 남았다. 누군가 보기에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었다.

눈 내린 현장

이제부터는 한 번도 밟아 본 적이 없는 땅을 누비게 될 것이었다. 함께 해 주는 데이데이 디자이너 분들이 있다 보니 이때부터는 걱정보다는 설렘이 컸다.


디자이너 분들은 공간의 너비와 구조, 사방에 뚫린 창, 창문 프레임 색상 등을 보고 열띤 토의를 벌이셨다. 브레인스토밍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테라스로 나와 기다렸다.


잠시 후 디자이너 분들이 나오며 해가 진 후에 다시 와 봐야 되겠다고 말씀하셨다. 출판전야를 주로 이용하는 시간은 밤일 테니 그때 이곳이 어떤 모습일지도 살펴봐야 했다.


나는 이미 여러 차례 현장을 본 터라 디자이너 분들에게 출입문 열쇠를 맡겼다. 이 분들의 오감을 거쳐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기대하며.


며칠 뒤 데이데이에서 질문지를 보내 주셨다. 출판전야와 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디자이너 분께서 진행하는 인터뷰 방식의 사전 조사였다.


출판전야뿐만 아니라, 출판전야를 만드는 나라는 근원에서 출발하시는 게 느껴져서 좋았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쓰며 내 생각이 정리되기도 했고.


인터뷰가 내게는 출판전야를 준비하는 마음을 한 차례 갈무리하는 마침표였고, 디자이너 분에게는 출판전야 기획의 시작점이었다.


출판전야에 대한 나와 데이데이 간의 이해도를 맞추는 랑데부 포인트인 만큼 성심성의껏 답변하고자 노력했다.



팀 데이데이 - 이준우 인터뷰



Q1.

안녕하세요! 준우님. ‘출판전야’는 어떤 곳인가요?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출판전야는 창작자를 위한 1인 예약제 서재입니다. 자기 자신 그리고 작품에 오롯이 몰입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을 제공합니다. 마침표를 찍기까지의 긴 밤. 그 설레면서도 고된 시간을 함께 하는 곳이라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2.

‘출판전야’의 지리적 위치를 선정할 때 많은 고민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많은 곳을 둘러보셨을 텐데, 이 장소를 선정하신 결정적 이유가 있을까요?

이곳의 어떤 면이 특히 마음에 들었나요?


출판전야가 자리할 곳을 찾기 위해 몇 가지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1) 창작자가 있는 지역이어야 할 것
- 창작자를 위한 장소이기에 창작자의 문화가 깃든 지역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2) 주위에 산책할 만한 장소가 있어야 할 것
- 창작을 하다가 환기가 필요할 때 산책만큼 좋은 게 없기 때문입니다.

3) 너무 외진 곳이 아니어야 할 것
- 늦은 시간 이용하는 곳이기 때문에 치안이 중요합니다.

4) 인근에 주거 지역이 있어야 할 것
- 막차에 대한 걱정 없이 출판전야의 매력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분들이 있었으면 합니다.


이런 기준에서 보았을 때 망원과 뚝섬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두 지역 모두 위의 조건을 충족하였기 때문입니다. 두 곳 위주로 부동산에 문의를 하였는데 결국 뚝섬을 선택했습니다.


일단 망원은 금액 조건에 맞는 곳도 없었고 제가 거주하는 석촌과 너무 멀기도 했습니다. 출판전야를 직접 관리해야 하고 저도 사용하고 싶기에 거리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반면 뚝섬은 석촌과 가깝기도 하고 제 마음에 딱 드는 공간이 있었기에 최종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창작자가 많아 항상 새로운 게 만들어지는 곳, 그러다 보니 산책하며 구경할 것도 많고 서울숲도 마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 역 근처이고 주위에 아파트 단지도 있어 유동/거주 인구가 있는 곳, 신축이라 깔끔한 것은 물론 채광이 좋으며 안심하고 쓸 수 있는 내부 화장실도 있는 공간.


위에서 말한 조건도 모두 충족하고 공간 자체의 매력도 많아 보자 마자 계약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Q3.

요즘은 필요한 도구만 갖추어져 있다면 카페, 집, 하물며 공원에서도 작업할 수 있을 만큼 장소의 제약이 사라진 것 같아요. ‘출판전야’도 그 다양한 공간 중의 하나가 되겠죠.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다른 공간과는 다른 어떤 차별적인 경험을 하게 될까요?


오롯이 혼자 와서 이용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크게 물리적 환경, 정신적 환경으로 차별점을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리적 환경면에서 출판전야는 몽상가 1명에게 최고의 몰입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기본적으로 오랜 시간 작업하기에 적합한 책상과 의자 그리고 모니터가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작업에 알맞는 음악을 틀 수 있는 스피커도 지원합니다. 이외에도 작업과 환기(리프레쉬)를 돕는 여러 가지 장치가 몽상가를 기다립니다.


정신적 환경면에서 출판전야는 고독에 빠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줍니다. 출판전야에는 타인의 간섭이나 개입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독은 창작의 원천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고독 속에서 몽상가는 자기 자신을 보다 깊게 들여다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길어낸 마음의 정수를 작품에 담게 되길 바랍니다.


이런 출판전야의 차별점이 몽상가가 마침표를 찍는 과정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4.

마감 혹은 야간작업은 준우 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그리고 이곳에 머무르는 몽상가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습니다. 창작 또한 마찬가지라 생각하는데요. 창작물이 세상에 나오기 전, 즉 마감 전에 우리는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때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밖으로 꺼내야 하고 퇴고도 마무리해야 합니다. 이 고된 시간을 잘 헤쳐나가기 위해선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이런 일이 꼭 밤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전야에서 말하는 밤(夜)도 사실 비유적인 의미를 가진 거기도 하구요. 창작의 과정을 하루라 생각하면 마감 시간은 어쨌든 자정 전, 밤 시간이 될 테니까요.


그럼에도 출판전야에서 야간 작업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는 합니다. 저는 몽상가 분들이 출판전야에 와서 자신의 일을 하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영혼이 담긴 일.


그런데 전업 예술가가 아닌 저와 같은 직장인에게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로 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전에는 보통 회사 일을 해야 되니까요.


밤에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몽상가들에게 야간 작업 시간은 귀중하며, 그만큼 소중히 다뤄져야 한다도 생각합니다.


출판전야가 그 소중한 시간을 잘 품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Q5.

‘출판전야’라는 공간을 완성하기 위해 가장 우선되는 요소 세 가지는 무엇일까요?

추상적인 개념도 좋고 매우 현실적인 물품이어도 좋아요.


키워드로 나누면 몰입, 환기, 흔적이 되지 않을까 해요.


우선 출판전야에 가면 작업에 몰입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길 정도의 환경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좋은 책상과 의자, 모니터와 스피커. 만약 예산을 쓰는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위 네 가지가 가장 중요할 거예요. 그외 조명, 채광 등도 포함하여 공간의 지향성이 몰입에 맞춰져 있으면 좋겠어요.


다음으론 작업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며 환기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장시간 몰입해서 작업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편안한 소파, 잠깐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책, 신선한 공기와 산책로. 팽팽해진 마음을 풀어 주며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떠오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몽상가들의 흔적이 잘 남으면 좋겠어요. 여러 몽상가가 다녀가며 쌓이는 작품, 방명록이 출판전야에겐 중요한 매력이자 자산이 될 거라 생각해요. 먼저 다녀간 몽상가의 흔적을 보고 나도 남기고 싶다라는 마음이 생기길 바라요.


세 가지 특징이 잘 어우러져서 멋진 결과물이 나오면 좋겠어요.



Q6.

준우님에게 있어서 ‘출판전야’가 성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궁금해요.

성공한다는 것이 있을까요? 만약 있다면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출판전야의 성공 기준은 자급자족할 수 있냐 없냐로 생각하고 있어요. 출판전야에서 발생하는 수익만으로 출판전야가 충분히 운영되는 것. 그래서 제가 따로 사비를 들이지 않아도 되는 것.


이러기 위해선 충분한 수의 몽상가가 출판전야의 매력을 알아보고 찾아와 주셔야 되겠죠. 1회 이용 비용이 7~8만원이라 했을 때 적어도 한 달 중 15일은 예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Q7.

‘출판전야’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런 단어들이 떠올랐어요.

‘창작, 고독, 몰입, 휴식, 환기, 완성..’

각각의 단어들에 대한 준우님의 정의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주세요.


1) 창작 : 자신의 취향과 영혼을 담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

2) 고독 : 자신과 깊게 대화하는 일이자 혼자 있는 즐거움
- 어떤 책에서 본 정의도 인상 깊어 남깁니다 : 고독은 혼자만의 시간을 우아하게 보내는 방법이자 사람에게 무언가를 안겨주는 시간

3) 몰입 : 우주에 나와 창작 대상만 남아 있는 무아지경의 상태

4) 휴식 : 피로에 지친 몸과 마음을 녹이는 시간

5) 환기 : 창작의 바통을 잠시 무의식에 건네고 긴장된 의식을 풀어주는 정신적 스트레칭

6) 완성 : 세상에 꺼내놓을 수 있겠다고 인정한 창작물의 상태



Q8.

몽상가의 입장에서 ‘출판전야’를 어떤 이유에 ‘재’방문하였으면 하나요?


위에서 차별점을 얘기했는데요. 그 차별점을 바탕으로 출판전야에 가면 확실하게 몰입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다시 출판전야에 찾아 주면 더할나위 없겠습니다. 깊은 몰입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가 되길 바랍니다.



Q9.

지금으로부터 1년 후, ‘출판전야’는 어떤 모습일까요?


지금으로부터 1년 후엔 출판전야가 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어요.


우선 출판전야가 금전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라요. 제 인건비는 바라지 않고.. 관리비, 월세 등이라도 무리 없이 안정적으로 벌 수 있으면 저도 부담 없이 운영할 수 있을 거예요.


다음으로 출판전야에서 많은 창작물이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잘 아카이빙되면 좋겠어요. 출판전야에 모인 창작물을 보면 참 뿌듯할 거예요. 그것들을 보고 새로운 몽상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찾아올 수도 있겠죠. 그 분들이 또 창작물을 남기고. 이런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길 바라요.


또 출판전야의 지기(知己)가 더 생기면 좋겠어요. 제가 없을 때에도 출판전야가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은 거죠. 낮 시간에 출판전야에서 자신의 작업을 하다 저녁에 찾아올 몽상가를 맞이할 제 2, 제 3의 지기를 열심히 찾아보려고 해요.



Q10.

준우님의 첫 오프라인 공간, ‘출판전야’를 시작으로 어떤 꿈을 꾸시나요?


대학 졸업하고 IT 서비스 기획자로 쭉 일해왔어요.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스스로를 IT 서비스 기획자로 한정지어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다른 영역에서도 새로운 걸 만들면 좋겠다 생각했고 오프라인 공간이 그중 하나였죠. 공간은 우리와 아주 오랜 시간 함께 한 매체라 아늑하게 느껴졌거든요. 또 누군가의 취향을 가장 잘 담아내는 매체이기도 하구요.


출판전야를 시작으로 제 취향을 드러내고 더 발전시켜 나가고 싶어요. 처음엔 부족한 부분이 많겠지만 잘 갈고 닦아 언젠가는 취향만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되면 참 좋겠어요. 아직은 요원하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출판전야로 첫 발은 디뎠다고 생각해요.



이전 25화 계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