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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Woo Lee Jun 29. 2024

취향

좋아하는 이유

디자인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필요한 것들이 정해졌다. 전체적인 인테리어와 선반, 책장과 같은 맞춤 가구는 데이데이에서 봐 주셨지만 내가 챙겨야 할 것들도 있었다.


우선 출판전야에 들일 물건 중 시중에서 구매 가능한 건 내가 준비하기로 했다. 의자, 조명, 스피커, 거울 등. 필요한 물건들을 스프레드시트에 정리해서 하나하나 알아봤다.


생각보다 사야 할 게 많았는데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았다. 특히 재고 문제로 배송이 늦어질 수 있는 의자나 조명 그리고 스피커는 미리미리 주문을 넣어야 했다.


보통은 시간이 날 때 쇼핑을 했지 시간을 내서 쇼핑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퇴근하고 자정이 넘어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수많은 웹사이트를 둘러봤다.


꿈에 그리던 서재를 만드는 만큼 좋은 것들로 채우고 싶었다. 단지 이쁘기만 해서는 안 됐다. 책상을 찾을 때처럼 출판전야의 의도를 잘 담을 수 있는 물건을 찾았다.


비주얼은 합격이어도 출판전야라는 서사에 잘 녹아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 왜 하필 이걸 놓은 거야라고 물었을 때 이유를 댈 수 있는 물건만 구매하기로 했다.


대표적인 게 스피커였다. 좋은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는 게 로망이었던지라 열심히 찾았다. 음향 관련 유튜브를 보며 오디오 기기에 대해 알아봤다.


듣던 대로 오디오의 세계는 심오했다. 올인원 스피커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앰프, 소스/출력 기기의 세계가 있었다. 조립 컴퓨터처럼 각 요소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수많은 조합이 나왔다.


뱅앤올룹슨, 제네바, 뮤조, JBL 등 괜찮은 스피커가 참 많았다. 그 중 특히 JBL 스피커는 아름다우면서도 소리가 좋다는 평이 자자해 혹했다.

JBL 스피커

근데  JBL 스피커 외에 앰프, 소스 기기까지 사면 금액대가 높아졌다. 유튜브에서 추천 받은 조합으로 사면 500만 원은 넘길 것 같았다. 높은 가격에 마음을 접었다가도 디자인이 잊혀지지 않아 다시 주문서에 들어가길 반복했다.


이상적인 서재를 만드는데 이 정도는 욕심낼 수 있지 않을까. 웅장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를 들으며 글을 쓰는 몽상가를 떠올렸다.


근사한 그림이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조연이 되어야 할 스피커가 주연처럼 느껴졌다. 내가 본 JBL의 스피커는 주연이 될 만큼의 존재감을 갖고 있었다.


출판전야가 들어설 공간에 대입해 상상해 보니 문제가 선명해졌다. 7평 정도 되는 방에서 책상과 스피커가 어우러지지 못하고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출판전야에선 책상이 단독 주인공이 되어야 했다. 이를 위해 다른 요소는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뒤에서 받쳐 주는 게 맞았다.


매력적인 배우라고 아무 이야기에나 어울리는 게 아니었다. 생각을 바로잡고 조연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스피커를 찾기로 했다.


우선은 올인원 스피커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출판전야에 나 외에도 다양한 손님이 온다는 걸 생각하면 스피커의 조작성이 중요했다. 오디오 기기에 서툰 사람도 쉽게 음악을 틀 수 있어야 됐다.


나조차도 앰프, 소스 기기 등에 익숙하지 않은데 손님은 오죽할까. 글 쓰는 서재에 와서 스피커 만지느라 시간을 보내지 않길 바랐다.


올인원 스피커로 결정한 후엔 제품의 가격대도 함께 정해졌다. 음향 기기 전문 유튜브 채널에서 올인원 스피커는 가격이 150~200만 원을 넘어서면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기에 책상에 돈을 더 쓰고 스피커에선 아끼는 게 좋아 보였다. 이에 따라 스피커엔 최대 200만 원 안쪽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다음으로 붙은 조건은 CD 재생을 지원해야 한다는 거였다. CD가 재생되는 동안 작업에 몰두하고, 음악이 끝나면 CD를 갈아 주며 휴식을 취한다. CD를 작업 타이머(뽀모도로 타이머)로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이 조건을 붙이니 후보군이 많이 좁혀졌다. 최근에는 CD 수요가 줄어 CD 재생을 지원하는 올인원 스피커가 줄어드는 추세라 했다.


CD가 재생되는 200만 원 이내의 올인원 스피커를 찾았고 두 브랜드가 최종 선택지에 남았다. 제네바(GENEVA)와 테크닉스(Technics)라는 브랜드였다.

제네바(좌)와 테크닉스(우)

제네바는 평소 카페에서도 자주 본 터라 익숙했는데 테크닉스는 아니었다. 알아보니 턴테이블 분야에서 유명한 일본 음향 기기 브랜드였다.


두 스피커 모두 요건을 충족하고 디자인적으로도 마음에 들어 음악을 들어보고 싶었다. 찾아보니 성수에 에디토리 홈라는 청음샵이 있었다.


예약을 하고 방문하니 원하는 스피커로 청음할 수 있도록 직원 분께서 세팅해 주셨다. 스피커를 직접 만져 보고 다양한 음악을 틀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직접 보니 테크닉스의 제품이 끌렸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수려한 디테일을 가진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묵직하고 마감도 깔끔하니 만듦새도 좋아 보였다.


CD, 블루투스뿐만 아니라 AirPlay, 타이달, 라디오 등 다양한 소스를 지원하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특히 애플 제품을 쓰는 입장에서 AirPlay 지원되는 게 반가웠다.


가장 중요한 음향에 대해선 내가 막귀이기 때문에 유튜브 전문가와 에디토리 직원 분의 의견을 참고했다. 둘 모두 테크닉스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렇게 길고 긴 여정을 거쳐 결국 스피커는 테크닉스의 오타바라는 올인원 스피커로 정해졌다. 출판전야의 서사에서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해 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전에는 좋아하는 데 이유가 있나라는 말대로 취향을 선천적으로 주어진 재능이라 생각했다. 세련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나에겐 그런 재능이 없다고 느낀 적도 있다.


출판전야를 준비하며 생각이 달라졌다. 취향, 즉 좋아하는 것엔 이유가 있다. 그것들이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작용하다 보니 없다고 느껴지는 것일 뿐.


취향을 키우려면 취향의 이유를 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내가 어떤 게 왜 좋은지, 구체적인 이유를 알아야 어떤 쪽으로 파고들어야겠다는 방향성이 생긴다. 그런 식으로 취향이 예리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서 많은 돈을 지불했지만 그만큼 취향이라는 자산이 쌓였으니 아깝지 않다. 전처럼 그냥 좋아를 거듭했다면 내 취향이 그냥저냥한 수준으로 남았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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