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전야를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
이상한 손님이었다.
강은빈. 매주 화요일마다 서재를 예약하는 얼마 안 되는 단골손님.
그 손님이 다녀가고 서재를 청소할 때마다 예상치 못한 흔적을 발견했다. 하루는 검은색 모래와 오각형 조개껍질, 다른 날엔 보랏빛 잎사귀. 흔적은 때마다 달라졌다.
그것들이 뭔지 손님에게 물어보려다 그만두었다. 내향인이 주로 찾는 고독의 서재. 괜히 말을 걸었다 다시 안 올 수도 있다. 다른 손님과 비교했을 때 정리 시간도 비슷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 손님이 다녀가고 다음 날 오전이었다. 서재를 청소하러 뚝섬역으로 향했다. 찜통더위에 몸이 무거워져 꼭대기인 4층에 오르는 일이 평소보다 힘겨웠다.
괜히 서재를 열어 고생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손님의 흔적을 기대하며 계단을 올랐다. 오늘은 어떤 특이한 흔적을 남겼을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책상 위에 노트북과 핸드폰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직 서재를 떠나지 않은 건가 싶어 화장실 문도 열어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CCTV 녹화본을 훑어봤다. 서재에 들어오는 건 찍혔는데 그 뒤로 한 번도 출입문이 열리지 않았다. 오류 때문인지 영상이 중간에 7초 정도 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 떠난 건가 싶었다.
기묘한 일이었지만 오후에 예약이 있어 정리를 시작했다. 책상에 올려진 노트북과 휴대폰을 손님의 가방에 넣고 출입문 옆에 챙겨 두었다.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 출입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가 보니 경찰 두 명이 문 앞에 서 있었다. 남경이 출입문 옆에 난 창으로 서재 안을 살폈다. 문을 열고 그들을 맞았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여기가 출판전야라는 곳 맞죠?”
여경이 물었다.
“네 맞아요. 무슨 일이시죠?”
“실종 신고가 들어왔는데요. 여기가 마지막 행선지라고 해서요. 강은빈이라는 분 아시나요?”
“아 네. 어제 저희 서재 이용하셨어요. 일단 들어오시겠어요?”
두 경찰은 서재로 들어와 안을 둘러봤다.
“좀 좁죠. 여러 명이 오는 곳은 아니라..”
“신기한 곳이네요. 뭐 하는 데예요?”
“작가 분들이 와서 글 쓰는 1인 서재예요.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어요.”
“실종된 강은빈 분도 작가셨는데요. 유명한 웹소설 작가. 필명이 뭐였더라..”
“오도자.”
남경이 답했다.
“아. 맞다. 오도자가 필명이에요.”
“몰랐어요. 여기서 웹소설을 쓰셨나 보네요.”
“안에는 CCTV가 없는 건가요?”
남경이 둘러보다 와서 물었다.
“네. 아무래도 손님이 불편해할 것 같아서 출입문에만 달았어요.”
“CCTV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근데 저도 봤는데 들어오는 건 찍혔는데 나가는 게 안 찍혔더라고요.”
두 경찰과 함께 녹화본을 훑어봤다. 다시 봐도 나가는 모습이 안 보였다. 경찰도 화면이 잠시 나갔을 때 떠났을 거라 추측했다.
“뭐 남기고 간 건 없나요?”
남경이 물었다.
“안 그래도 청소하면서 저기 가방에 챙겨 뒀어요. 아무래도 갖고 온 짐을 그대로 두고 간 것 같아요.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협조 감사합니다. 이건 저희가 증거품으로 챙기겠습니다.”
경찰은 서재를 몇 분 간 더 살피다 강은빈이란 사람의 가방을 갖고 떠났다.
그날부로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출판전야가 실종자의 마지막 행선지라니. 괜히 실종 사건에 버물린 느낌이었다.
오도자 작가의 데뷔작인 Beyond the Cave를 읽었다. 주인공 ‘무니’가 미지의 동굴을 탐험하다 ‘이디아’라는 이세계를 발견하는 이야기였다. 생생하고 잘 짜인 세계관 덕에 몰입도가 높았다. 댓글을 보니 이디아가 실제로 존재할 것 같다는 평이 많았다.
밤을 새워서 최근에 올라온 편까지 다 읽었다. 댓글에선 왜 다음 편이 올라오지 않는지 원성이 자자했다. 작품을 제시간에 올린 적도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작가의 실종 소식을 알리는 댓글도 있었다. 다음 편이 연재되지 않을 거라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답글이 이어졌다.
Beyond the Cave를 읽으니 오도자 작가의 행방이 더 궁금해졌다. 구글에 오도자라고 검색하니 위키가 떴다.
오도자라는 키워드로 두 개의 문서가 나왔다. 하나는 중국 화가 오도자(吳道子)에 대한 문서, 다른 하나가 실종된 작가 오도자를 다룬 문서였다.
위키 문서에도 작가의 실종 소식이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만화 베르세르크처럼 결말을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는 사설이 덧붙었다.
문서는 작가의 필명에 대해서도 다뤘다. 작가 스스로는 밝힌 적이 없어 여러 추측이 오갔다.
오도자(誤導者) 즉 그릇된 길로 이끄는 자를 의미한다는 추측, 중국 화가 오도자(吳道子)에서 따왔다는 추측
중국 화가 오도자(吳道子)에 링크가 걸려 있어 클릭했다. 오도자는 백대화성(百代畫聖)으로 불릴 정도로 이름을 날린 당나라 시절의 화가였다. 주로 부처의 인물화나 풍경화를 그렸다고 쓰여 있었다. 그 아래로 그의 화풍이나 작품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지만 별다른 단서는 찾지 못했다.
한낱 개인이 실종 사건을 파헤치는 게 우스웠지만 호기심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단서가 될 만한 걸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 서재 예약 내역이 떠올랐다. 오도자 작가의 예약 정보를 살폈다.
wudaozi@naver.com
예약자 이메일 앞에 붙은 아이디를 검색하니 강은빈의 기록이라는 블로그가 하나 나왔다. 오도자 작가의 위키 문서엔 블로그 링크가 안 보였기에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걸로 보였다.
블로그엔 여러 개의 쪽글이 올려져 있었다. 그중 출판전야라는 제목이 눈에 띄어 클릭했다.
2024.02.06
지긋지긋한 층간소음.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윗집의 뻔뻔한 아저씨 얼굴이 생각나 열이 오른다. 아파트 살면 그 정도 소리는 서로 양해하면서 살아야 한다나 뭐라나. 그쪽은 대체 뭘 양해하고 있는 건데.
집중은 안 되는데 마감은 다가오니 작업할 곳을 찾다가 출판전야를 발견했다. 1인 서재라는 말에 혹해 예약하고 가 봤는데 마음에 든다. 다른 건 둘째치고 일단 마음 편히 점프를 할 수 있다. 나오는 길에 다음 주 예약도 잡았다.
오도자 작가가 처음으로 서재를 이용한 날에 쓴 글이었다. 그는 이때부터 매주 화요일마다 서재를 예약했다. 점프가 뭔지 궁금해 다음 글을 이어서 읽었다.
2024.02.13
출판전야에선 점프가 잘 된다. 방해 요소가 없으니 점프에 실패하는 일도 없다. 전에는 아예 점프를 하지 못하고 글을 써야 할 때도 있었는데 이젠 걱정을 덜었다.
오늘도 무니의 여정을 지켜봤다. 마을을 떠날 땐 혼자였지만 이제는 동료가 늘었다. 무니, 나띠, 산토, 후몬은 서로에게 부족한 걸 채워 준다.
나도 언젠가 무니의 동료가 될 수 있을까.
점프의 의미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는 건지, 아니면 그만큼 몰입해서 글을 쓴다는 건지 헷갈렸다. 그러다 문득 오도자 작가가 서재에 남긴 흔적이 떠올랐다.
서재 운영 일지를 펼쳐 오도자 작가가 다녀간 날짜를 찾았다. 뒷정리를 하며 발견한 특이한 흔적을 일지에 적어 놓은 게 다행이었다.
흔적을 날짜별로 메모장에 적었다. 다음엔 날짜 순으로 웹소설을 다시 읽었다. 묘한 관계성이 드러났다.
2월 20일 서재에 남긴 흔적 : 검은 모래, 오각형 조개껍질
2월 25일 연재된 편의 배경 : 화산섬 해변
2월 27일 서재에 남긴 흔적 : 보랏빛 잎사귀
3월 3일 연재된 편의 배경 : 빌란테스 숲
서재에 남긴 흔적이 있을 법한 장소가 다음 편의 배경이 되었다. 점프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도자 작가는 아직 이디아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는 나오지 않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블로그에 이어진 글을 읽으며 답을 찾았다.
2024.03.12
독자들의 고나리질에 질린다. 처음엔 글 쓰는 즐거움이자 동력이 되었던 댓글도 이젠 두렵다.
독자와의 약속이라는 연재 주기도 이야기를 갉아먹는다. 마감에 쫓겨 쓰니 이디아에서 경험한 걸 제대로 남기지 못한다.
점프 - 글쓰기 - 연재. 매주 반복되는 일상에서 행복한 때는 점프를 하는 화요일뿐이다. 처음엔 글을 쓰기 위해 점프를 했는데 이제는 점프를 하기 위해 글을 쓴다. 언제부터인가 돌아갈 곳이 헷갈린다. 이젠 이디아가 더 집 같다.
⋯
2024.04.16
원래는 내가 이야기에서 나오면 무니의 세계가 멈췄다. 점프해서 다시 들어가면 마지막으로 본 장면부터 이야기가 다시 흘러갔다.
저번 주에 점프를 했을 때 어딘가 낯설었다. 무니의 표정이 묘하게 달라진 것 같았다. 기분 탓인가 하면서도 혹시나 하여 이야기에서 나오기 전 시간을 기록해 두었다.
오늘 점프를 하고 곧바로 시간을 확인했다. 5초가 지나 있었다. 나 없이도 이야기가 흘러갔다는 얘기다.
드디어 이야기가 자생한다.
⋯
2024.05.07
떠났을 때와 다시 돌아갔을 때의 시간 차이를 기록하고 있다. 처음엔 5초였는데 10초, 20초, 36초… 점점 늘어난다.
나 없는 사이 일어나는 일들이 생긴다. 아쉬우면서도 뿌듯하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를 보는 듯하다. 언젠가 나와 같은 보폭으로 걷게 되는 때가 오겠지.
⋯
2024.05.28
병 안을 들여다보는 자는 전지(全知)적이었습니다. 그는 병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을 구경하며 즐거워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놓치는 게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바로 미지(未知)에서 오는 설렘이었습니다. 그는 동굴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그곳에서 누구를 만나게 될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미지에 이르려면 전지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병 안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그 안으로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병 안으로 뛰어들면 다시는 병 밖으로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는 고민하지 않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블로그에 마지막 글이 올라온 5월을 끝으로 오도자 작가의 웹소설도 연재되지 않았다. 경찰은 6월부터 그가 실종된 7월 30일까지의 행적을 쫓았다.
그 기간에도 오도자 작가는 전처럼 매주 화요일마다 출판전야에 방문했다. 그가 서재를 예약한 내역과 CCTV 녹화본을 경찰에 제공했지만 수사에 진전은 없었다.
실종 사건은 웹소설을 좋아하는, 상상력이 풍부한 독자들의 입을 타고 내렸다. 미스터리 전문 유튜브 채널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그들도 오도자 작가의 블로그를 찾았고 불가사의한 이야기는 점점 살을 찌워 갔다. 그의 위키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내용이 올라왔다.
관심이 쏟아지자 ‘오도자’라는 필명도 주목을 받았다. 한 설화가 알려지며 작가의 필명이 중국 화가 오도자(吳道子)에서 유래했다는 게 기정사실화됐다.
오도자(吳道子)는 황궁의 벽에 그린 풍경화를 황제에게 설명했습니다.
오도자는 그림 안의 동굴을 가리켰습니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아름다운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오도자는 말을 끝낸 후 그림 안으로 들어가 동굴로 걸어갔습니다.
오도자가 동굴 안으로 자취를 감추자 그림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출판전야는 뜻밖의 유명세를 치렀다. 갑자기 예약자가 늘어 기뻤는데 그럴 일이 아니었다. 글을 쓰기보다는 사건 현장을 구경하러 온 손님이 많았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매체도 많았지만 모두 거절하고 서재 예약도 내렸다. 소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영업을 잠정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밤이 되면 인적이 드물어져 서재에 갔다. 오도자 작가가 자리했던 의자에 앉아 마지막 두 달 간 그가 무엇을 했을지 생각했다.
그동안 그는 이야기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이야기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 되었을까, 아니면 1인칭 관찰자 시점이 되었을까. 무엇이든 그곳에서 이야기가 이어지길 바랐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됐다. 서재의 테라스에 나무를 한 그루 심고 이디아라는 이름을 지어줬다.